막막한 날엔 / 복효근 왜 모르랴 그대에게 가는 길 왜 없겠는가 그대의 높이에로 깊이에로 이르는 길 오늘 아침 나팔 덩굴이 감나무를 타고 오르는 그 길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속도로 꽃은 기어올라 기어이 울음인지 웃음인지 비밀한 소리들을 그러나 분명 꽃의 빛깔과 꽃의 고요로 쏟아놓았는데 너와 내가 이윽고 서로에게 이르고자 하는 곳이 꽃 핀 그 환한 자리 아니겠나 싶으면 왜 길이 없으랴 왜 모르랴 잘 못 디딘 덩굴손이 휘청 허공에서 한번 흔들리는 순간 한눈팔고 있던 감나무 우듬지도 움칫 나팔덩굴을 받아낸다 길이 없다고 해도 길을 모른다 해도 자 봐라 그대가 있으니 됐다 길은 무슨 소용 알고 모르고가 무슨 소용 꽃피고 꽃 피우고 싶은 마음 하나로 절벽에 길을 내는 저기 저 나팔덩굴이나 오래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