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속에서 - 김 은경 집으로 향하는 성내천길 우산 없이 비를 맞는다 토끼풀과 나란히 비바람에 시시때때 꽃잎과 결별 중인 찔레나무와 나란히 눈 뜨고 잠든 돌멩이와 나란히 나란히 돌아보니 빗속을 이렇게 맨몸으로 걸은 기억이 없다 어느 저녁 피치 못할 소낙비를 맞으며 눈물로 한 사내를 기다린 적 있었으나 불손하게도 인생은 어차피 장마기의 연속이라고 생각한 때 있었으나 빗방울을 생애 단벌로 껴입은 토란잎처럼은 아니었다 황사 비에도 어김없이 제 초록을 키워 가는 청미래 이파리처럼은 아니었다 (슬픔의 연주 방식에도 고수와 하수가 있다니!) 눈 뜬 채 비 맞는 모든 맨몸은 매혹적이다 오디나무의 맨손 사마귀의 맨발 눈 먼 해바라기의 맨얼굴 그리고 나의 맨 처음, 그대 결코 회귀할 수 없는 물고기 같은 말 맨 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