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지 / 임은숙 둥지 / 임은숙 안아주는 것보다 안기는 것에 길들여지고 내어주기보다 받는 것에 익숙했었다 네 안에 내 집을 짓고서 나는 왜 너의 집이 되지 못했을까 하늘에 살고 있는 별처럼 반짝이기라도 할 것을 바람을 이고 사는 나뭇잎처럼 미소라도 보내줄 것을 서로에게 닿는 마음의 길을 버려두고 기대려고만 하는 나에게 언제면 너의 둥지가 만들어질까 사랑 그리움 2020.10.11
어떤 날 / 전혜린 어떤 날 / 전혜린 나의 운명이 고독이라면, 그렇다, 그것도 좋다. 이 거대한 도회의 기구 속에서 나는 허무를 뼛속까지 씹어보자. 몇 번씩 몇 번씩 나는 죽고 죽음 속에서, 또 새로운 누에게 눈뜨듯 또 한번, 또 한번! 하면서 나는 고쳐 사는 것이다. 다시 더! 하고 소리치며 나는 웃고 다시 사는 것이다. 과거는 그림자 같은 것, 창백한 것, 본질은 나이고 현실은, 태양은 나인 것이다. 모든 것은 나의 분신, 자아의 반사에 불과했던 것이다. 사랑 그리움 2020.10.02
당신의 눈물 / 우련(祐練)신경희 젖었던 36년 당신이 은하수를 넘어 여기까지 왔으니 눈물인들 오죽 하셨겠습니까. 망망해진 마음과 울렁임은 또 얼마나 하셨겠습니까. 당신의 피어린 눈물꽃으로 서울이 화려하게 변신하였습니다. 러시아가 오래전 분열되었고, 독일의 장벽이 무너졌습니다. 은둔한 한민족이 일어섰습니다. 이렇게도 당신의 뜨거운 눈물은 지금 별처럼 여기에서 빛나고 있습니다. 사랑 그리움 2020.08.16
가끔은 / 청원 이명희 가끔은 / 청원 이명희 햇살과 하늘이 서로에게 얽혀 눈이 부신 날은 투명한 마음 한 자락 밖으로 꺼내놓고 싶다 뿌리내릴 수 없어 포실포실한 숨결로 유리창에 입금 불어 쓴 이름 불러내 차라도 한잔 나누고 싶다 아무리 낯설어도 두려움 없이 밖으로 걸어 나온 고독과 손을 잡고 사랑을 나누고 싶다 비밀 스런 가슴 열어 마음도 부스고 영혼도 부숴 가며 흉도 허물도 껴안은 그런 하루를 보내고 싶다 사랑 그리움 2020.07.12
기차 타고 싶은 날 / 김재진 기차 타고 싶은 날 / 김재진 이제는 낡아 빛바랜 가방 하나 둘러메고 길을 나선다. 반짝거리는 레일이 햇빛과 만나고 빵처럼 데워진 돌들 밟는 단벌의 구두 위로 마음을 내맡긴다. 누군가를 기다리거나 떠나는 친구 하나 배웅하고 싶은 내 마음의 간이역 한번쯤 이별을 몸짓할 사람 없어도 내 시선은 습관에 목이 묶여 뒤돌아본다. 객실 맨 뒤칸에 몸을 놓은 젊은 여인 하나 하염없는 표정으로 창 밖을 보고 머무르지 못해 안타까운 세월이 문득 꺼낸 손수건 따라 흔들리고 있다. 사랑 그리움 2020.06.15
너를 만나고싶다 / 김재진 나를 이해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사소한 습관이나 잦은 실수 쉬 다치기 쉬운 내 자존심을 용납하는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 직설적으로 내뱉고선 이내 후회하는 내 급한 성격을 받아들이는 그런 사람과 만나고 싶다 스스로 그어 둔 금속에 고정된 채 시멘트처럼 굳었거나 대리석처럼 반들거리며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사람들 헤치고 너를 만나고 싶다 입꼬리 말려 올라가는 미소 하나로 모든 걸 녹여버리는 그런 사람 가뭇한 기억 더듬어 너를 찾는다 스치던 손가락의 감촉은 어디 갔나 다친 시간을 어루만지는 밝고 따사롭던 그 햇살. 이제 너를 만나고 싶다 막무가내의 고집과 시퍼런 질투 때로 타오르는 증오에 불길처럼 이글거리는 내 못된 인간을 용납하는 사람 덫에 치여 비틀거리거나 어린아이처럼 꺼이꺼이 울기도 하는 내 어리석음.. 사랑 그리움 2020.05.24
나는 외로웠다 / 이정하 나는 외로웠다 / 이정하 바람 속에 온 몸을 맡긴 한 잎 나무잎 때로 무참히 흔들릴 때 구겨지고 찢겨지는 아픔보다 나를 더 못견디게 하는 것은 나 혼자만 이렇게 흔들리고 있다는 외로움이었다. 어두워야 눈을 뜬다 때로 그 밝은 태양은 내게 얼마나 참혹한가 나는 외로웠다 어쩌다 외로운 게 아니라 한순간도 빠짐없이 외로웠다 그렇지만 이건 알아다오 외로워서 너를 사랑한 건 아니라는 것 그래 내 외로움의 근본은 바로 너다 다른 모든 것과 멀어졌기 때문이 아닌 무심시 서 있기만 하는 너로 인해 그런 너를 사랑해서 나는 나는 하염없이 외로웠다. 사랑 그리움 2020.05.24
어제 / 천양희 어제 / 천양희 내가 좋아하는 여울을 나보다 더 좋아하는 왜가리에게 넘겨주고 내가 좋아하는 바람을 나보다 더 좋아하는 바람새에게 넘겨주고 나는 무엇인가 놓고 온 것이 있는 것만 같아 자꾸 손바닥을 들여다본다. 너가 좋아하는 노을을 너보다 더 좋아하는 구름에게 넘겨주고 너가 .. 사랑 그리움 2020.05.03
안기기 , 안아 주기 / 이병철 안기기 , 안아 주기 / 이병철 세상의 가슴 가운데 시리지 않은 가슴 있더냐 모두 빈 가슴 안아 주어라 안기고 싶을 때 네가 먼저 안아라 너를 안는건 네 속의 나를 안는 것 네 가슴속 겁먹고 수줍던 아이 허기져 외롭던 아이를 무엇이 옳다 누가 그르다 어디에도 우리가 던질 돌은 없다 포.. 사랑 그리움 2020.0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