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가 오기 전날 / 나희덕 그대가 오기 전날 / 나희덕 그동안 나에게는 열망하는 바가 얼마나 많았더냐 오랜 줄다리기, 그 줄을 내려놓고 이제 두 손을 털면 하늘마저 가까이 내려와 숨을 내쉰다 그러나 나에게는 망설이던 적이 얼마나 많았더냐 진흙탕 속을 걸어가면서도 발목 하나 빠지지 않으려고 버둥거리다가.. 좋은글 좋은시 2016.06.19
첫사랑 / 고재종 첫사랑 / 고재종 흔들리는 나뭇가지에 꽃 한번 피우려고 눈은 얼마나 많은 도전을 멈추지 않았으랴 싸그락 싸그락 두드려 보았겠지 난분분 난분분 춤추었겠지 미끄러지고 미끄러지길 수백번, 바람 한 자락 불면 휙 날아갈 사랑을 위하여 햇솜 같은 마음을 다 퍼부어 준 다음에야 마침내 .. 좋은글 좋은시 2016.06.13
뒷모습 / 나태주 뒷모습 / 나태주 뒷모습이 어여쁜 사람이 참으로 아름다운 사람이다. 자기의 눈으로는 결코 확인이 되지 않는 뒷모습 오로지 타인에게로만 열린 또 하나의 표정 뒷모습은 고칠 수 없다.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 물소리에게도 뒷모습이 있을까? 시드는 노루발풀꽃,솔바람 소리 찌르레기 울.. 좋은글 좋은시 2016.06.13
아직 / 유자효 아직 / 유자효 너에게 내 사랑을 함빡 주지 못했으니 너는 아직 내 곁을 떠나서는 안 된다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내 사랑을 너에게 함빡 주는 것이다 보라, 새 한 마리, 꽃 한 송이도 그들의 사랑을 함빡 주고 가지 않느냐 이 세상의 모든 생명은 소진됐을 때 재처럼 사그라져 사.. 좋은글 좋은시 2016.06.12
포용 / 김행숙 포용 / 김행숙 볼 수 없는 것이 될 때까지 가까이. 나는 검정입니까? 너는 검정에 매우 가깝습니다. 너를 볼 수 없을 때까지 가까이. 파도를 덮는 파도처럼 부서지는 곳에서. 가까운 곳에서 우리는 무슨 사이입니까? 영영 볼 수 없는 연인이 될 때까지 교차하였습니다. 그곳에서 침묵을 이.. 좋은글 좋은시 2016.06.12
아버지의 나이 / 정호승 아버지의 나이 / 정호승 나는 이제 나무에 기댈 줄 알게 되었다 나무에 기대어 흐느껴 울 줄 알게 되었다 나무의 그림자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 나무의 그림자가 될 줄 알게 되었다 아버지가 왜 나무 그늘을 찾아 지게를 내려놓고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셨는지 알게 되었다 나는 이제 .. 좋은글 좋은시 2016.06.12
찬비 내리고 / 나희덕 찬비 내리고 / 나희덕 우리가 후끈 피워냈던 꽃송이들이 어젯밤 찬비에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합니다 그러나 당신이 힘드실까 봐 저는 아프지도 못합니다 밤새 난간을 타고 흘러내리던 빗방울들이 또한 그러하여 마지막 한 방울이 차마 떨어지지 못하고 공중에 매달려 있습니다 떨어지.. 좋은글 좋은시 2016.06.12
기다림 / 곽재구 기다림 / 곽재구 이른 새벽 강으로 나가는 내 발걸음에는 아직도 달콤한 잠의 향기가 묻어 있습니다 그럴 때면 나는 산자락을 타고 내려온 바람 중 눈빛 초롱하고 허리통 굵은 몇 올을 끌어다 눈에 생채기가 날 만큼 부벼댑니다 지난 밤,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내 낡은 나룻배는 강.. 좋은글 좋은시 2016.05.31
노을 / 최영철 노을 / 최영철 한 열흘 대장장이가 두드려 만든 초승달 칼날이 만사 다 빗장 지르고 터벅터벅 돌아가는 내 가슴살을 스윽 벤다 누구든 함부로 기울면 이렇게 된다고 피 닦은 수건을 우리 집 뒷산에 걸었다 -시집『찔러본다』(문학과지성사, 2010) 좋은글 좋은시 2016.05.31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 심순덕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 심순덕 하루 종일 밭에서 힘들게 일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덩어리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 겨울 냇물에서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 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좋은글 좋은시 2016.0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