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그리움 725

늙어가는 아내에게 / 황지우

늙어가는 아내에게 / 황지우 내가 말했잖아 정말.. 정말... 사랑하는... 사랑하는...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들은 너, 나 사랑해? 묻질 않어 그냥, 그래, 그냥 살지 그냥 서로를 사는 게야 말하지 않고, 확인하려 하지 않고, 그냥 그대 눈에 낀 눈꼽을 훔치거나 그대 옷깃의 솔밥이 뜯어주고 싶게 유난히 커 보이는 게야 생각나? 지금으로부터 14년전,늦가을, 낡은 목조 적산 가옥이 많던 동네의 어둑어둑한 기슭, 높은 축대가 있었고, 흐린 가로등이 있었고 그대의 집, 대문 앞에선 이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바람이 불었고 머리카락보다 더 가벼운 젊음을 만나고 들어가는 그대는 내 어깨 위의 비듬을 털어 주었지 그런거야, 서로를 오래 오래 그냥, 보게 하는 거 그대가 와서, 참으로 하기 힘든, 그러나 속에서는 ..

사랑 그리움 2022.11.21

흔들리는 가을 / 이수익

흔들리는 가을 / 이수익 앞으로 또 다시 추운 겨울이 오리라는 예감 때문에 스스로 옷을 벗는 나무들, 물이 마르는 강바닥, 추수로 비어가는 들판, 하늘마저 끝없이 맑고 푸르니. 잠시 무슨 전야의 등불처럼 우리들 마음 어수선히 흔들리고, 나는 무한정 네가 그립고, 바람따라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고, 하얗게 밤을 새워 나누고 싶은 얘기도 많으니. 오는 겨울에는 눈 막고 귀 막고 입 막고 그저 깜깜하게 어둠으로만 살자, 아무것도 가진 것 없으면 뼈를 깎는 형벌도 두렵지 않으리니.

사랑 그리움 2022.11.21

흐린 날 쓰는 그리움의 편지 / 藝香 도지현

흐린 날 쓰는 그리움의 편지 / 藝香 도지현 검은 하늘은 까치발을 해서 잡으려 하면 잡힐 듯 내려앉았습니다 금방이라도 방울방울 떨어질 비라도 올 것 같은 날씨입니다 이런 날은 당신 생각이 나서 응혈 덩어리가 하나 차지하고 있는 듯 가슴이 미어지듯 응어리가 져서 한바탕 울고 나면 조금 나아질 것 같아요 실컷 울고 나면 카타르시스가 되어 마음이 조금이라도 풀리지 않을까 싶네요 스스로 연민이 생겨 그리움이 더해지고 언제나 당신을 만날 수 있을까, 기다려져요 결국엔 비가 방울방울 내리네요 하늘이 내 마음을 알아버렸나 봐요 좍좍 내려서 가슴속 응어리를 풀어준다면 조금은 더 당신을 기다릴 수 있을 거예요.

사랑 그리움 2022.11.07

끝끝내 / 정호승

끝끝내 / 정호승 헤어지는 날까지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하지 못했습니다 헤어지는 날까지 차마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하지 못했습니다 그대 처음과 같이 아름다울 줄을 그대 처음과 같이 영원할 줄을 헤어지는 날까지 알지 못하고 순결하게 무덤가에 무더기로 핀 흰 싸리꽃만 꺾어 바쳤습니다 사랑도 지나치면 사랑이 아닌 것을 눈물도 지나치면 눈물이 아닌 것을 헤어지는 날까지 알지 못하고 끝끝내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하지 못했습니다 끝끝내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하지 못했습니다

사랑 그리움 2022.11.03

사랑하는 것은 / 이성진

사랑하는 것은... 이성진 사랑하는 것은 마주앉아 있는 당신에게 예쁜 추억을 선물하는 일입니다 동화 속 주인공처럼 감미로운 노랫말처럼 늘 당신과 함께하는 일입니다 비 오는 날 장미 한 송이와 따듯한 커피 한잔에 흐뭇해하시는 당신을 봅니다 햇살 좋은 어느 날은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에 당신은 해님이 되고 나무가 되고 산과 들이 됩니다 조금의 배려가 조금의 관심이 사랑을 만들고 그 사랑을 키워 갑니다 서로에게 좋은 것만 주고 싶고 서로를 바라보는 눈에는 늘 안쓰러운 것이 사랑입니다 진실되고 믿음직스럽게 마음이 마음에게 말을 합니다 서로를 위해 노력하고 서로를 위해 평생을 아끼며 그렇게 이 사랑을 예쁘게 지켜나가요

사랑 그리움 2022.10.31

멀리 보다는 가까운 곳에서 / 오광수

멀리 보다는 가까운 곳에서 / 오광수 보고픔이 산이 되면 산봉우리까지 훨훨 날아가고 싶습니다 두 손을 펼쳐서 이마에 대면 멀리 있는 그대의 모습일지라도 까마득 작게나마 볼 수 있을 테니까요 그리움이 바다가 되면 작은 배라도 노저어 다가가고 싶습니다 파도가 나를 도와 밀어주면 작은 돌들 소리가 씻겨가는 저곳을 까마득 멀지만은 갈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러나 그대는 먼먼 하늘이 되어 내가 못 견디게 보고플 때도 내가 사무치게 그리울 때도 언제나 어제와 같이 보이질 않습니다 멀리 있는 게 싫습니다 멀리 떨어져 있는 게 정말 싫습니다 멀리 보다는 가까운 곳에서 손잡고 마주보며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이젠 가까운 곳에 있고 싶습니다

사랑 그리움 2022.09.05

비 내리는 날의 오후 / 藝香 도지현

비 내리는 날의 오후 / 藝香 도지현 똑똑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가슴을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아프다 세월은 훌쩍 갔지만 그날을 생각하면 피눈물이 흘렀지 운명이란 서로 만나서는 아니 될 인연이 있어 악연으로 변하기도 하지 아름다운 연연으로 만나 없으면 죽을 것 같은 생각을 했었어 그것은 한때의 환상에 불과했고 환각 속에서 착각했다고 생각한다 한 때의 치기에 불과해, 사랑한다 사랑하기 때문에 이 사람 없으면 나도 없지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날도 이렇게 비가 왔지 쏟아지는 빗속에서 기차의 레일 위를 너는 저쪽으로 가고 나는 반대쪽으로 갔어 오늘 꼭 그날 같아서 詩액이 거꾸로 솟는 듯하다.

사랑 그리움 2022.09.05

잎이 지는 계절에는 / 임은숙

잎이 지는 계절에는 / 임은숙 익숙한 바람결에 묻어오는 기억 한 자락에 괜히 싱숭생숭하다 ​ 잎이 지는 계절에는 어디론가 떠나볼 일이다 ​ 너무 멀리도 아주 가까이도 말고 흐르는 마음 따라 물처럼 떠나볼 일이다 ​ 슬픈 기억은 그 자리에 놓아두고 아쉬운 그리움은 뭉텅 잘라 주머니에 넣고 희미한 옛 시간 속에 바람처럼 머물러 볼 일이다 ​ 새벽별의 긴 한숨에 귀를 기울이며 잊히지 않는 시간 속에 머물러 볼 일이다

사랑 그리움 2022.0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