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그리움 725

빗속에서 / 김 은경

빗속에서 - 김 은경 집으로 향하는 성내천길 우산 없이 비를 맞는다 토끼풀과 나란히 비바람에 시시때때 꽃잎과 결별 중인 찔레나무와 나란히 눈 뜨고 잠든 돌멩이와 나란히 나란히 돌아보니 빗속을 이렇게 맨몸으로 걸은 기억이 없다 어느 저녁 피치 못할 소낙비를 맞으며 눈물로 한 사내를 기다린 적 있었으나 불손하게도 인생은 어차피 장마기의 연속이라고 생각한 때 있었으나 빗방울을 생애 단벌로 껴입은 토란잎처럼은 아니었다 황사 비에도 어김없이 제 초록을 키워 가는 청미래 이파리처럼은 아니었다 (슬픔의 연주 방식에도 고수와 하수가 있다니!) 눈 뜬 채 비 맞는 모든 맨몸은 매혹적이다 오디나무의 맨손 사마귀의 맨발 눈 먼 해바라기의 맨얼굴 그리고 나의 맨 처음, 그대 결코 회귀할 수 없는 물고기 같은 말 맨 처음.....

사랑 그리움 2023.07.24

막막한 날엔 / 복효근

막막한 날엔 / 복효근 왜 모르랴 그대에게 가는 길 왜 없겠는가 그대의 높이에로 깊이에로 이르는 길 오늘 아침 나팔 덩굴이 감나무를 타고 오르는 그 길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속도로 꽃은 기어올라 기어이 울음인지 웃음인지 비밀한 소리들을 그러나 분명 꽃의 빛깔과 꽃의 고요로 쏟아놓았는데 너와 내가 이윽고 서로에게 이르고자 하는 곳이 꽃 핀 그 환한 자리 아니겠나 싶으면 왜 길이 없으랴 왜 모르랴 잘 못 디딘 덩굴손이 휘청 허공에서 한번 흔들리는 순간 한눈팔고 있던 감나무 우듬지도 움칫 나팔덩굴을 받아낸다 길이 없다고 해도 길을 모른다 해도 자 봐라 그대가 있으니 됐다 길은 무슨 소용 알고 모르고가 무슨 소용 꽃피고 꽃 피우고 싶은 마음 하나로 절벽에 길을 내는 저기 저 나팔덩굴이나 오래 지켜볼 일이다.

사랑 그리움 2023.06.15

뿌리 / 김복수

뿌리 / 김복수 어버이날이라고 회갑을 낼 모래 바라보는 딸아이가 신사임당 넉 장을 꽃봉투에 넣어 좋아하는 책을 사 보란다 아들 손녀가 백일도 안 된 증손자를 보듬고 찾아왔다 정겨움과 기쁜 마음을 온통 주었건만 그래도 또 무엇인가 주고 싶다 책상 서랍을 열어보니 딸아이가 주고 간 신사임당이 그대로 있다 ~ 장군이 옷 한 벌 사 주어라 ~ 감사 감사 손주 내외가 넙죽넙죽 절을 한다 문득 쿤디판다의 뿌리가 와 있다 입가에 함지막한 웃음을 걸고

사랑 그리움 2023.05.29

마음 / 이동진

마음 / 이동진 가슴에 늘 파도치는 사람이고 싶다 작은 말로 사랑한다 해도 처얼썩 밀려오는 웅장한 파도소리처럼 느끼면 좋겠다. 작은 손으로 살짝 잡아도 심벌즈가 쨍하고 울리듯 뜨겁게 그 손을 잡으면 좋겠다 먼길을 함께 걷지 않아도 수평선에 올라선 범선의 돛대처럼 고향같은 마음이면 좋겠다 나는 가슴이 늘 그렇게 감동하는 사람이면 좋겠다

사랑 그리움 2023.0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