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그리움 718

한잔의 커피에서 / 도지현

한잔의 커피에서 차가운 회오리바람이 분다얼마 전만 해도 뜨거운 바람으로심장을 데일 것 같았는데 언제까지나온대 기류 속에 안주해따뜻함으로 아늑한 기분이마약처럼 몸속에 스며들어한없이 좋을 줄 알았다 그런데무슨 연유에서 인지한발 삐끗 수렁에 빠졌다 허우적거리다 정신을 차렸더니단풍이 드는 계절이 오고눈 내리는 계절이 와버렸다 그러하더라도 꽃피고새 노래하는 아름다운 계절이 오면다시 따뜻해지려니 했는데 그 시간은 다시 오지 않았다 입술에 닿는 커피는 식고커피잔 속에서는 토네이도 같은회오리바람이서릿발처럼 차갑게 소용돌이친다.

사랑 그리움 2024.06.29

그리움이 나를 인도하고는 / 도종환

그리움이 나를 인도하고는 / 도종환          그리움은 아무 말도 없이나를 여기에 홀로 놓고 가 버리네나는 어디로 가지참 많은 사람들이 있네근데모두가 자기 길만 총총히 가네그럼 난 어디로 가지그냥서 있잖아요언제나 그 자리에내가 사랑하는 당신도언제나 그 자리에 있으면 해즐거운 편지처럼당신이 서있는 배경에서바람이 불고 해가 지는 것 처럼..

사랑 그리움 2024.06.29

내 가슴 한쪽에 / 이정하

내 가슴 한쪽에 / 이정하 세상의 울타리 안쪽에는그대와 함께 할 수 있는 자리가 없었습니다.스쳐갈 만큼 짧았던 만남이기도 했지만세상이 그어둔 선 위에서건너갈 수도 건너올 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그 이후에쓸쓸하고 어둡던 내 가슴 한쪽에소망이라는 초 한 자루를 준비합니다.그 촛불로힘겨운 사랑이 가져다 준 어두움을조금이라도 밀어내 주길 원했지만바람막이 없는 그것이 오래갈 리 만무합니다.누군가를 위해서따뜻한 자리를 마련해 둔다는 것.아아 함께 있는 사람들은 모를 겁니다.오지 않을 사람을 위해의자를 비워둘 때의 그 쓸쓸함을.그 눈물겨움을세상이라 이름 붙여진그 어느 곳에도그대와 함께 할 수 있는 자리는 없었습니다.하지만,그대가 있었기에 늘 나는내 가슴 속에 초 한 자루 준비합니다.건너편 의자도 비워 둡니다.

사랑 그리움 2024.06.29

낯선 편지 / 나희덕

낯선 편지 / 나희덕오래된 짐꾸러미에서 나온네 빛바랜 편지를나는 도무지 해독할 수가 없다​건포도처럼 박힌 낯선 기호들사랑이 발명한 두 사람만의 언어를어둠 속에서도 소리내어 읽곤 했던 날이 있었다​그러나 어두운 저편에서네가 부싯돌을 켜대고 있다 해도나는 이제 그 깜박임을 알아볼 수 없다​마른 포도나무 가지처럼내게는 더 이상 너의 피가 돌지 않고온몸이 눈이거나온몸이 귀가 되어도 읽을 수 없다​오래된 짐꾸러미 속으로네 편지를 다시 접어넣는 순간나는 듣고 말았다검은 포도알이 굴러떨어지는 소리를

사랑 그리움 2024.06.19

먼발치에서 / 이정하

먼발치에서 / 이정하당신을 사랑해도 되겠습니까?굳이 당신에게 물어볼 건 없지만나 혼자서 당신을 사랑하고,나 혼자서 행복해 하고,나 혼자서 아파하고 그리워하면 그뿐이겠지만내 허전한 마음이 당신에게 물어보라는군요.당신을 사랑해도 되겠습니까?당신이 허락하지 않는다 할지라도당신을 이미 사랑하는 나는당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하루에도 수십 번씩 당신을 만났다가하루에도 수백 번씩 당신과 이별하곤 합니다.당신의 대답도 있기 전에벌써 당신을 사랑하고 만 나를 용서해 주세요.행여 당신에게 짐이 되진 않을까,내 성급하고 서툰 사랑에 당신이 곤란하지는 않을까늘 걱정스럽긴 해도 그것만 허락해 주세요.당신을 사랑하게만,당신을 내 마음에 간직하게만.당신을 사랑합니다.비록 가까이 있진 않지만설혹 당신이 모르고 있다 할지라도나는 사랑하..

사랑 그리움 2024.06.19

그리움 때문에 삶엔 향기가 있다 / 이정하

바람이 부는 것은누군가를 갈망하고 있기 때문이다.내가 너에게,혹은 네가 나에게 보내는 바람엔향기가 묻어 있다.삶이란 게 그렇습니다.기쁨보단 슬픔이 더 많지요.또한 사람이란 것도 그렇습니다.같은 양이라 할지라도기쁨보단 슬픔을 더욱 깊게 느끼지요.뿐만 아니라 기쁨은 순간적이지만슬픔은 그렇지 않습니다.슬픔의 여운은 기쁨의 그것보다훨씬 오래인 것입니다.왜 그렇겠습니까?아무리 생각해도전 그 해답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그러나 전 이제는그 까닭을 알 수 있게 되었지요.비바람을 겪은 나무가 더욱 의연하듯사람도 슬픔 속에서더욱 단련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사랑이라는 것도 그렇습니다.헤세가 얘기했듯이사랑이라는 것은 우리를 행복하게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우리가 고뇌와 인내에서얼마만큼 견딜 수 있는가를보이기 위해서..

사랑 그리움 2024.0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