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글 좋은시 524

빗소리 듣는 동안 / 안도현

빗소리 듣는 동안 / 안도현 1970년대 편물점 단칸방에 누나들이 무릎 맞대고 밤새 가랑가랑 연애 얘기하는 것처럼 비가 오시네 나 혼자 잠든 척 하면서 그 누나들의 치맛자락이 방바닥을 쓰는 소리까지 다 듣던 귀로 나는 빗소리를 듣네 빗소리는 마당이 빗방울을 깨물어 먹는 소리 맛있게, 맛있게 양푼 밥을 누나들은 같이 비볐네 그때 분주히 숟가락이 그릇을 긁던 소리 빗소리 삶은 때로 머리채를 휘어 잡히기도 하였으나 술상 두드리며 노래 부르는 시간보다 목 빼고 빗줄기처럼 우는 날이 많았으나 빗소리 듣는 동안...... 연못물은 젖이 불어 이 세상 들녘 다 먹이고도 남았다네 미루나무 같은 내 장단지에도 그냥, 살이 올랐다네.

좋은글 좋은시 2021.05.16

내가 고맙다 / 신지혜

내가 고맙다 / 신지혜 자기 자신에게 사랑을 고백해본 적 있으신지요 애썼다 고맙다 말해본적 있으신지요 자신을 격려하고 등 토닥여본 적 있으신지요 자신에게 두 무릎 꿇고 자신에게 절해본적 있으신지요 누가 뭐래도 자기 자신만큼 가까운 베스트 프랜드는 없지요 병실에 누운 사람들이 가장 먼저 후회하는 것, 자신을 사랑할걸 그랬다고 자신을 공경할 걸 그랬다고 자신에게 함부로 이야기하지 말걸 그랬다고 자신을 함부로 대하지 말걸 그랬다고 나만큼 나를 아는 사람 또 지상에 보셨나요 우주를 연 것도 나이며, 우주를 닫는 것도 나인데요 내 육신에게 늘 고맙다는 칭찬 한마디 해준 적 없어, 내 심장아, 위장아, 간아, 허파야, 신장아. 비장아. 대장아, 소장아, 두 팔다리야, 안이비설신眼耳鼻舌身아, 애썼다고. 나는 난생 처..

좋은글 좋은시 2021.05.09

아들의 운동화 / 유상옥

아들의 운동화 / 유상옥 비오는 날 교문에서 고삼 아들 기다리던 김씨 아저씨 아들 운동화 젖는다고 자기 슬리퍼 신기고 아들 운동화는 품에 안고 간다 우산은 아들 위에 있고 아버지는 엇비슷하게 걷는다 맨발로 걷는 아버지는 아들 운동화를 아기 안듯 안고 간다 장화 한 켤레 사주지 못한 죄인이 땅 밟을 자격 없다고 투덜대는데 아들은 아빠 어깨를 껴안는다 질퍽거리는 거리를 두 사람이 한 몸처럼 날고 있다 둘은 운동화 한 켤레 타고 하늘을 나른다 집 한 채 없고 변변한 직장 없어도 비행기 한 대쯤 있다 꿈 조종사 운전하고 항해지도 없어도 갈 곳은 안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쉬지 않고 날라서 꿈이 닿은 곳이면 내릴 것이다 운동화 비행기 타고 멀리 멀리 날 것이다 西北美 문인협회 詩부문으로 등단 현재 美 오리건 Or..

좋은글 좋은시 2021.05.09

오늘처럼 햇살이 눈부신 날엔 / 한효순

오늘처럼 햇살이 눈부신 날엔 / 한효순 오늘처럼 햇살이 눈부신 날엔 훌훌 털어버리고 빈 강정처럼 허한 가슴 햇살 쪼여 보자 어쩌면 곰팡이 핀 가슴 한 켠 들추어 햇살 불러 들이면 어둠 속에서 웅크린 채 속앓이 하던 자잘한 알갱이들 풀내음 들이 마시고 봄 볕에 취하지 않을가? 오늘처럼 산자락에 햇살 고운 날엔 하늘 가득 꽃향기 채워지고 풀내음 흩어지며 가라앚은 마음 흔들어 찌프린 얼굴에 웃음 꽃 피우고 주름진 마음에 희망 한 줌 채울 수 있을거야 오늘처럼 햇살이 눈부신 날엔

좋은글 좋은시 2021.04.18

성공은 작은 데서 출발한다

성공은 작은 데서 출발한다 1923년 3월 3일. 20대 청년 두 명이 미국과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시사 문제에 대해 체계적이고 간결한 형식의 정보를 전달하는 잡지를 만들고자 시사주간지 타임지를 창간했습니다. 타임지는 미국 뉴욕시에서 발행되는 3대 주간지로 손꼽히며 매년 연말 '올해의 인물'과 '타임100(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을 선정하는 거로 유명합니다. 창간을 했던 두 젊은 청년의 이름은 헨리 R. 루스와 브리튼 해든이었는데 처음 그들이 창간 계획을 주위에 말했을 때 사람들은 냉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그게... 되겠어요?" 그러나 두 청년은 전혀 위축되지 않았고, 할 수 있다는 이상을 가지고 일을 추진해 나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은 뉴욕시 지하도 벽에 붙어있는 포스..

좋은글 좋은시 2020.10.24

다음은 없다

다음은 없다 한 남자가 과녁을 향해 활을 겨누고 있었습니다. 그의 손에는 화살이 두 개가 있었지만, 집중이 되지 않았습니다.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던 백발의 스승은 남자에게 냉정하게 말했습니다. "화살 하나는 버리거라!" 남자는 스승의 말에 납득이 되지는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화살 하나에만 모든 정신을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그 결과, 남자는 평소보다 더 좋은 실력으로 과녁의 가운데를 맞출 수가 있게 되었는데 남자는 물론 주변에서 구경하던 사람들도 깜짝 놀랐습니다. 스승은 맑은 미소를 지은 채 말했습니다. "다음에도 기회가 있다고 생각하면 아무리 화살이 많아도 과녁을 제대로 맞히기 어렵지." 중석몰촉[中石沒鏃] 돌에 화살이 깊이 박혔다는 뜻으로, 정신을 집중하면 때로는 믿을 수 없을 만한 일도 이룰 수 ..

좋은글 좋은시 2020.10.16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위대함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위대함 2006년 3월, 미국 로스앤젤레스 대중교통국(MTA) 직원 아서 윈스턴이 100세를 맞아 모든 직원들의 축하를 받으며 퇴직했습니다.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아서는 어린 10살 때부터 목화밭에서 일하기 시작했으며 18살이 되어 버스 운전사가 되고 싶어 교통국 직원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인종차별이 극심하던 1920년대에 흑인에게 운전대를 맡기는 일은 절대 없었습니다. 아서가 교통국에서 맡은 일은 정비실에서 버스를 닦고 기름 치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정비실에서 76년을 일했습니다. 76년 동안 아서는 매번 새벽 6시에 칼같이 출근했습니다. 결혼 직후 다른 회사에서 6년간 일했던 시기를 포함해서 아서의 출근 기록부에는 단 하루의 병가만 있었습니다. 단 하루의 병가는 198..

좋은글 좋은시 2020.10.13

그 그리운 시냇가 / 김용택

그 그리운 시냇가 / 김용택 흐르는 시내 모래 위에 물무늬처럼 이는 사랑이 있었습니다 흐르는 물 속에는 자리잡지 못한 모래알들이 그 작은 몸짓으로 빈 곳을 찾아가 반짝이며 자리잡기도 하는 몸짓들을 오래오래 보고 있었습니다 물가로 밀려난 잔 물결들은 강기슭 풀밭에 가닿으며 사라지기도 하지만 허물어지지 않은 산도 저쪽 강기슭엔 있었습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눈에 어리다가 내 가슴 어딘가에 닿아 거짓말같이 번지는 물무늬 같은 사랑이 그 그리운 시냇가에 있었습니다

좋은글 좋은시 2020.0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