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무 살 / 곽재구 길 가다 꽃 보고 꽃 보다 해 지고 내 나이 스무 살 세상이 너무 사랑스러워 뒹구는 돌눈썹 하나에도 입맞춤하였다네. * 사십대 중반이라는 나이 / 오경옥 혹 하지 않는다는 마흔 중간쯤 하는 나이 바람으로 떠돌기 쉬운 여린 나이 그리고 싶은 고운 꿈 어여쁜 색깔과 향기에 물들고 싶은 하얀 물감 같아 생의 한가운데서 무겁게 내딛는 이쪽과 저쪽의 경계선 살얼음 위를 걷는 것 같아 가을 강물 같이 아름다운 파문에 출렁이기 쉬운 사십대 중반이라는 나이 현실과 이상처럼 삶과 사랑의 기교 사이에서 열병처럼 아프기 쉬운 나이 * 쉰 살 즈음에 / 임성춘 늙어 가는 것이 서러운 게 아니라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 게 더 서럽다. 내 나이 쉰 살 그 절반은 잠을 잤고 그 절반은 노동을 했으며 그 절반은 술을 마셨고 그 절반은 사랑을 했다. 어느 밤 뒤척이다 일어나 내 쉰 살을 반추하며 거꾸로 세어 본다 쉰, 마흔아홉, 마흔여덟, 마흔일곱... 아직 절반도 못 세었는데 눈물이 난다. 내 나이 쉰 살 변하지 않은 건 생겨날 때 가져온 울어도 울어도 마르지 않는 눈물샘뿐이다. * 육순의 문턱에서 / 문종수 아주 낯선 처음 찾아온 손님같이 육순이 문지방을 넘어섭니다. 어쩐다 허나 얼른 마음 고쳐먹고 중얼거리듯 말합니다. "어서 오시게나 오실 줄 알았네" * 노년의 입구 / 최병무 아름다운 곡선이 靜物로 보였을 때 노년의 입구에 당도하였다 가령 아내의 가슴이 여인들의 다리가 실물보다 아름다운 그림으로 보였을 때 나는 노인이 된 것이었다 아직 세상에 오지 않은 손자가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논리는 양비론으로 바뀌고 세상의 어린것들이 사랑스러워지는 것이었다 노년의 시는 일용할 양식이다 몽상은 달콤했다 꿈은 부정기적인 그리움을 재연하고 진실한 것은 생몰의 연대뿐, 새는 길을 지우며 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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