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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편지 / 나희덕

낯선 편지 / 나희덕오래된 짐꾸러미에서 나온네 빛바랜 편지를나는 도무지 해독할 수가 없다​건포도처럼 박힌 낯선 기호들사랑이 발명한 두 사람만의 언어를어둠 속에서도 소리내어 읽곤 했던 날이 있었다​그러나 어두운 저편에서네가 부싯돌을 켜대고 있다 해도나는 이제 그 깜박임을 알아볼 수 없다​마른 포도나무 가지처럼내게는 더 이상 너의 피가 돌지 않고온몸이 눈이거나온몸이 귀가 되어도 읽을 수 없다​오래된 짐꾸러미 속으로네 편지를 다시 접어넣는 순간나는 듣고 말았다검은 포도알이 굴러떨어지는 소리를

사랑 그리움 2024.06.19

먼발치에서 / 이정하

먼발치에서 / 이정하당신을 사랑해도 되겠습니까?굳이 당신에게 물어볼 건 없지만나 혼자서 당신을 사랑하고,나 혼자서 행복해 하고,나 혼자서 아파하고 그리워하면 그뿐이겠지만내 허전한 마음이 당신에게 물어보라는군요.당신을 사랑해도 되겠습니까?당신이 허락하지 않는다 할지라도당신을 이미 사랑하는 나는당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하루에도 수십 번씩 당신을 만났다가하루에도 수백 번씩 당신과 이별하곤 합니다.당신의 대답도 있기 전에벌써 당신을 사랑하고 만 나를 용서해 주세요.행여 당신에게 짐이 되진 않을까,내 성급하고 서툰 사랑에 당신이 곤란하지는 않을까늘 걱정스럽긴 해도 그것만 허락해 주세요.당신을 사랑하게만,당신을 내 마음에 간직하게만.당신을 사랑합니다.비록 가까이 있진 않지만설혹 당신이 모르고 있다 할지라도나는 사랑하..

사랑 그리움 2024.0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