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영토를 한 바퀴 도는 코리아둘레길 개통이 임박했다. 장장 4550㎞의 대장정이 3개월 뒤면 마무리된다. 강원도 고성에서부터 인천 강화도까지 해안을 두른 길은 이미 수많은 사람이 걷고 있고, 철책선 따라 이어지는 ‘DMZ 평화의길’이 오는 9월 개장할 예정이다. 대장정의 끝은 알겠는데, 시작은 기억하는 사람이 드물다. 그 시원을 찾으러 강원도 강릉으로 갔다.
강릉바우길 12구간과 겹쳐
지난 3일 오전 10시 강릉여행안내센터 ‘강릉수월래’ 앞. 코리아둘레길 쉼터 걷기여행 프로그램에 참여한 25명이 모였다. 이들 25명은 생태환경교육센터 ‘포!레스트’에서 나온 숲·나무 해설가와 함께 해파랑길 40코스의 주요 구간을 걸었다.
해파랑길 40코스는 강릉 사천진해변에서 주문진해변까지 해안을 따라 난 12.4㎞의 트레일이다. 강릉바우길 12구간과 고스란히 겹친다. 해파랑길 40코스는 잠깐 야산을 올랐다가 내려올 뿐, 코스 대부분이 해변을 따라 이어진다. 길지 않은 데다 어려운 구간이 없어 인기가 높은 코스다. 종점 직전 주문진 수산시장은 동해안 대표 관광명소다.
이 길에 한류 명소가 두 개나 있다. 주문진항 바로 앞 작은 방파제가 ‘도깨비 방파제’다. 한류 드라마 ‘도깨비’의 여자 주인공이 이 방파제에서 남자 주인공으로부터 꽃을 받는 장면을 촬영했다. 이후로 이 이름 없는 방파제에 ‘도깨비 방파제’란 이름이 붙었고, 전 세계에서 찾아온 관광객이 저마다 드라마 주인공인 양 포즈를 잡고 인증사진을 찍었다.
또 다른 한류 명소는 ‘도깨비 방파제’보다 더 긴 줄이 늘어선다. 2019년 해외 한류 팬이 ‘가장 가보고 싶은 방탄소년단 관련 여행지’로 꼽은 ‘주문진 향호 버스정류장’이다. 이 국제 명소는 2017년 방탄소년단의 ‘유 네버 워크 얼론’ 앨범 재킷을 촬영한 장소다.
허허벌판 해변에 버스정류장 세트를 설치한 뒤 촬영하고 철거했었는데, 전 세계에서 방탄소년단 팬클럽 ‘아미’가 몰려들자 강릉시가 뒤늦게 여름 세트를 복원했다. ‘해파랑 강릉 쉼터’가 자리한 주문진 해변과 가깝다.
3일 행사 참가자들은 4시간 넘는 시간 동안 해파랑길을 걸었고, 한류 명소에서 기념사진을 찍었고, 솔숲에서 해설을 들었고, 강릉여행안내센터에 돌아와 원두를 볶으며 강릉 커피 체험을 했다. 여느 걷기여행 행사와 별 차이가 없는 듯 보이지만, 이날 행사는 의미가 깊다. 정부의 걷기여행길 사업이 문화 콘텐트와 결합해 진화하는 첫걸음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트레일은 헷갈린다. 길은 하나인데 이름이 여러 개다. 3일 걷기여행 행사에서도 길이 세 개나 등장한다. 해파랑길, 강릉바우길, 코리아둘레길. 뭐가 어떻게 다를까.
우선 강릉바우길. 2010년 이순원 (사)강릉바우길 초대 이사장을 비롯한 강릉 출신 인사들이 주도해 조성한 강릉 지역 트레일이다. 정규 코스 17개와 부속 코스 4개로 구성된다. 이기호 사무국장은 “제주올레처럼 강릉에도 걷기 좋은 길이 있다는 걸 알리기 위해 스스로 시작한 일이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해파랑길은 동해안 종주 트레일이다. 부산에서 시작해 동해안을 따라 강원도 고성에서 끝난다. 50개 코스 770㎞에 이른다. 문체부는 2010년 해파랑길 조성사업을 시작하면서 지역 트레일을 최대한 활용했다. 이를테면 경북 영덕 구간은 ‘영덕 블루로드’를, 강릉 구간은 강릉바우길의 해안 코스를 그대로 갖다 썼다. 하여 해파랑길 강릉 구간 6개 코스(35∼40코스)는 강릉바우길 6개 코스와 같은 길이다. 2010년 당시 문체부 담당 사무관이었던 (사)한국의길과문화 홍성운 이사장의 회고를 옮긴다.
MB 정부 시절 문체부가 해파랑길을 내려고 했을 때 반대가 있었습니다. 문체부에 소속된 땅도 없고 행정적 권한도 없었으니까요. 그러나 길은 역사와 문화가 어우러지는 것입니다. 오히려 문화를 중심으로 각기 다른 민간단체와 행정기관, 자치단체를 모을 수 있었습니다.”
해파랑길을 열고 보니 예상했던 것보다 반응이 뜨거웠다. 정부는 남해안과 서해안도 잇고 철책선 따라 길도 만들어 대한민국을 한 바퀴 도는 코리아둘레길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2016년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발표했다.
‘DMZ 평화의길’은 3개월 뒤 개통
코리아둘레길 사업은 착착 진행됐다. 2016년 해파랑길이 정식 개통했고, 2017년 코리아둘레길 사업이 공식 시작됐다. 2020년엔 남파랑길(90개 코스 1470㎞)이, 2022년엔 서해랑길(109개 코스 1800㎞)이 차례로 열렸다. 이제 철책선을 따라 ‘DMZ 평화의길(36개 코스 524㎞)’만 이으면 대장정이 마무리된다.
개통을 앞둔 코리아둘레길은 현재 콘텐트 강화에 집중하고 있다. 대표 사업이 쉼터 조성사업이다. 전국 18개 기초단체에 코리아둘레길 쉼터를 마련하고 걷기여행 프로그램도 만들어 지역 관광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게 목표다.
한국관광공사 강영애 전문위원은 “코리아둘레길 쉼터는 현재 해파랑길 5개, 남파랑길 6개, 서해랑길 8개가 조성됐다”며 “쉼터를 거점으로 지역별 프로그램을 배치하고 있다”고 말했다.
3일 해파랑길을 걸을 때 여러 번 외국인 관광객과 마주쳤다. 한류 명소를 찾아온 외국인도 있었고, 이름 없는 작은 백사장을 찾은 외국인도 있었고, 이정표를 따라 길을 걷는 외국인도 있었다. 길이 열리니 이야기가 쌓였다. 이 긴 이야기는 이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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