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교육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교회의 삶에 대한 참여로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의 심원한 선물을 함께 나누며 수세기에 걸쳐 전승된 전통을 이어 받는다. 그러나 성경에 대한 성숙한 이해와 풍부한 전통과 교회의 다양한 표현에 대한 각성은 신앙교육으로 가능하다. 그러므로, 교회는 수세기 동안 교인들에게 신앙의 모든 면을 가르쳐 왔다. 이 교육 사역은 또한 예배자들이 어떻게 더 의미 있게 예배드릴 수 있는지를 가르치는데 중요하다. 이와 같이 예배는 교육의 한 중요한 수단이다. 교회는 자체가 지닌 어설픈 교육 커리큘럼을 가지고 교육하는 것보다 예배행위를 통해 더 많은 것을 가르친다. 이 장에서는 예배와 교육이 서로를 위해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가를 밝히면서 예배와 교육의 관계를 고찰하겠다. 1. 예배와 교육의 다섯 가지 역할 모델 교회의 중심사역인 예배는 직접적으로 기독교교육과정과 연계되어 있다. 진정한 교육은 예배를 그 자체의 최종열매로 삼을 것이다. 본 장은 교회에서 행하는 사역들에 대한 하나의 개념화를 제공하는데, 교회의 사역에서는 예전이 교제, 도전, 선포 그리고 봉사와 연결된 그물망의 중심이다. 교회의 중심사역은 지금과 영원히 그 독특한 역할을 유지할 것인데, 그것은 예배(레이투르기아, leitourgia), 축제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창조성의 표현이다. 이 사역은 그 어떤 목회를 위한 모델에 있어서도 그 사역의 우선 순위를 나타내기 위하여 원의 중심이나 중추에 자리해야 하며 잠재적으로 교회 안에서 예배가 가질 수 있는 통합기능이다.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가능하게 된 구속(救贖)을 통하여 모든 피조물을 위해 하나님이 의도하신 기쁨과 성령의 임재를 사람들이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예배와의 관계 안에서이다. 그러한 예배는 물론 연합예배에서 절정을 이루지만 반드시 그러한 경우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예배와 하나님의 임재하심에 대한 감각은 모든 삶 가운데 이뤄질 수 있고, 두 세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서도 분명할 수 있다. 예배의 중심 사역은 직접적으로 기독교 신앙을 가르치는 교육과 관련되어 있다. 기독교신앙을 가르치는 자들은 우선 순위를 예배에 둔 교회의 주요 사역과 그 이론과 실제를 연계시킬 수 있어야만 한다. 그러한 연계가 없다면 목회사역에 대한 그 어떤 논의라 할지라도 하나의 지적 노력으로 남게 될 수밖에 없다. 기독교교육의 과제 기독교교육은 기독교적 가치와 태도 그리고 인생스타일(형성)과 함께 기독교적 이야기와 진리의 특징을 공유하고 취득하는 과정으로 정의될 수 있고, 또한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하나님의 통치를 보다 충분히 표현하기 위하여 성령의 능력에 의해 개인과 공동체와 사회 그리고 구조의 갱신(변화)을 육성하는 과정으로 정의될 수 있다. 이 과정은 하나님과 가르치기 위해 부름 받고 은사를 받은 사람들 사이의 협력(동역관계)을 포함한다. 이 과정은 또한 갱신이나 변화의 가능성에 대하여 사람들이 개방적일 것을 요구한다. 이 정의는 내용이나 정보, 사람이나 형성(formation), 그리고 공동체/사회나 변화(transformation)같은 일반적으로 수용된 세 가지 교육의 요소들과 연계한다. 기독교교육의 포괄적인 비전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이 속해 있는 공동체와 사회의 상황 안에서 교육적 내용을 가르침 받는다고 인식하게 하므로써, 내용, 사람들 그리고 공동체나 사회라는 "교육적 삼위일체"(educational trinity)를 정교화하는 것이다. 특히 예배에서 경험되는 내용은 인식적 감각적 차원과 인생스타일 혹은 행동적 차원들을 내포한다. 세 가지 요소들(내용, 사람들, 혹은 상황) 가운데 한 가지 또는 두 가지 요소들에 대한 배타적 강조는 포괄적 비전을 육성하지 못하고 사역과 인생에 있어서 미숙한 행위나 부적당한 환원주의(還元主義)로 끝날 수 있다. 제한된 비전에서 생성되는 교육의 질은 기독교교육의 역사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수 세기동안 공동체와 사회생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유사한 위험은 교육과 학습이 그리스도교 교회가 지닌 다섯 가지 주요 과제들과 이 과제들과 연관된 사역형태와 연결되지 못할 때 생긴다. 교회가 지닌 다섯 가지 주요 과제들을 거미줄이나 방송망(네트워크)의 관점에서 볼 수 있다. 이 거미줄은 그 바깥둘레에 네 개의 점이나 과제들을 지닌 원이나, 다섯 번째 과제를 중추나 중심으로 삼는 원으로 생각될 수 있다. 원의 네 과제들은 ?선포(케리그마, kerygma) ? 공동체(코이노니아, koinonia) ? 봉사(디아코니아, diakonia) ? 도전(프로페테이아, propheteia)을 포함한다. 중추 또는 중심은 축제 혹은 예배(레이투르기아, leiturgia)이다. 거미줄 비유는 교회의 교육사역에서 이 모든 것들이 육성되려면 상호간 친밀히 연결되어야 함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인생의 많은 부분은 사람들에게 창조주에게로 관심을 기울일 시간을 별로 주지 않으면서 이미 만들어진 것에 자신을 빼앗기도록 강요한다. 이러한 몰입은 사람이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이 창조된 것들에게서 자신을 분리시킬 때에만 파괴될 수 있다. 분리의 행동은 일상적인 활동, 요구 그리고 상황의 중심에서 재배치를 전제하지 않는다. 분리의 행동은 일상사와 삶의 상호작용 안에서 기꺼이 하나님을 만나고자 하는 의지를 요구한다. 사람들은 또한 그들의 삶에서 안식할 자리를 필요로 하는데, 안식 안에서 갖는 성스런 시간과 장소는 재창조의 기회를 제공하며 하나님의 은혜로 활성화된다. 이런 사실은 하나님에 의해 지음 받은 사람들은 창조물로서 그 자신들 또한 창조적이라는 사실을 확증해 준다. 예배에는 사람들이 모든 삶에서 자신들이 지닌 다양한 창조능력과 에너지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활용하도록 하나님으로부터 힘을 부여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한다. 1) 예배와 디다케(교육) 예배(레이투르기아, leiturgia)와 관련된 교의 이중적 과제는 ?모든 삶을 포함하는 예배에 대한 의식을 육성하는 것이며, ? 창조적 표현을 통해 통합을 위한 길을 추구하는 것이다. 교육과정에 있는 모든 참여자들이 창조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을 때, 축제 감각은 최고조에 달하며 예배를 위한 상황이 제공된다. 부언하면, 개인이 드리는 예배와 공동으로 드리는 예배경험들은 개인으로 하여금 그들 개인과 공동체의 삶이 요구하는 바를 전망 속에 함축하도록 한다. 기독교교육이나 형성(formation)의 사역을 위한 예배의 중심성은 교육의 세 요소 즉 내용, 사람들 그리고 상황(컨텍스트)과의 관련성안에서 가시화 될 수 있다. 예배는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신앙의 본질적인 내용인 하나님, 하나님의 계시, 그리고 인간의 응답에 초점을 맞추는 기회를 부여한다. 인간의 응답은 전체 인격이 하나님의 놀라우심과 위엄에 대해 개방되는 것이며 바로 그 개인의 창조주이시며 구속주이시며 유지자이신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되는 것이다. 둘째로, 예배는 인간적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기쁨과 슬픔, 소원 그리고 꿈에 직면하도록 한다. 셋째, 예배는 나이, 성, 종족, 문화 혹은 능력의 차이를 초월하므로써 공동체를 보강한다. 그렇게 하므로써 예배는 창조의 다양성과 그리스도안에서 가능케 되는 연합과 일치를 반영한다. 전체 회중이 함께 드리는 예배는 교육목적을 위해 다양한 집단으로 나뉘어짐으로써 조화를 유지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예배와 교육의 통합은 환경이 신앙에 적대적일 때 가장 효과적이다. 그 한 예는 유대인 회당인데, 회당은 포로기간동안 예배와 교육을 효과적으로 통합하였다. 다른 예는 무신론적 철학으로부터 심한 압박을 받던 시기에 소비에트 연방국가에 있던 정교회와 프로테스탄트 교회이다. 교회는 그 자체의 학교교육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기독교 전통속에 있는 교육은 예배나 예전을 통해 이뤄져야 했다. 예배는 상황(the occasion)을 제공하며, 그 상황 안에서 사람들은 만남의 결과로서 학습에 개방된 마음과 새로운 방식으로 살려는 심령을 가지고 교사이신 하나님 앞으로 나올 수 있다. 2) 예배, 교육과 케리그마(선포) 기독교교육이 지닌 과제 하나는 그리스도교 이야기(christian story)를 나누어 개인의 삶에 적절히 적용하도록 하는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진리의 선포 안에 포함되어야 할 것은 선택, 헌신 그리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개인적 응답이다. 성서적 의미에서 하나님을 아는 것은 머리와 마음과 손이 복음에 응답하는 것이다. 이 앎에 있어서 사람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들에게 제공된 새로운 삶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려고 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기독교교육은 인간의 상황에 대한 하나님의 견해와 직면하여 회개와 회심에 대한 분명하고도 명확한 부르심을 받아들이는 선택과 헌신의 문제이다(막1:15; 행2:38-39). 이 회심에 대한 부르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믿음으로 응답하는 자들에게 제공된 구원의 은총에 근거한다. 비록 이 구원의 선물이 하나님의 은혜에 근거하지만, 구원의 선물은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여 사는 새로운 삶을 요구한다. 케리그마(kerygma)와 관련된 교육과제는 하나님과 그리스도, 그리고 인간의 딜레마에 관한 지식을 나누는 것이다. 만일 사람이 자기에게 제시되고 또한 요구하는 바를 포착하려 하면 이 지식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3) 예배, 교육과 코이노니아(교제) 코이노니아(koinonia)의 과제는 자신과 가족 혹은 집단에 중심을 둔 삶으로부터 인간성과 연관된 모든 장벽을 무너뜨리는 공동체의 삶으로 전향함으로써 구체화된다. 사도바울이 갈라디아서 3장 28절에서 선언하였듯이,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모두 다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하나이다." 개인과 공동체와 사회를 소외시키고 분할하는 종교적, 문화적, 언어적, 성적, 사회적 차별은 그리스도와 함께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의 가치와 존엄성을 긍정하는 이 공동체에 대한 새로운 정의는 공동예배에서 모델화된다. 모든 신자들은 식탁친교를 위해 모일 때 하나님의 새로운 공동체에 참여할 수 있다. 코이노니아와 관련된 교육과제는 공동체의식을 육성하는 것인데, 이 공동체의식이야말로 하나님과 다른 그리스도인들, 그리고 전체 피조물과 상호 의존하는 삶을 창조하는 것이다. 예배에서 모델화되는 그와 같은 전망은 보편적인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대한 인식과 이해를 포함한다. 4) 예배, 교육과 디아코니아(봉사) 디아코니아(diakonia)는 회심한 사람들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에 대답한다. 궁극적 의미에 있어서 그 질문은 영원히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즐거워하는 관점에서 답변되어질 수 있다. 그러나 차선적 의미에 있어서 그 질문은 개인과 사회와 세상의 필요를 위하여 하나님의 전체 백성들에 대한 돌봄과 관심이란 관점에서 답변되기도 한다. 이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전문적인 성직자에게만 한정되지 않는 목회적 소명이 있으나, 선교와 봉사(ministry)의 다양한 표현에서 평신도들을 포함시킬 것을 요구한다. 디아코니아(diakonia)와 관련된 교육의 과제는 한 개인의 신앙이 신실한 봉사행동과 연결되게끔 육성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아는 것은 곧 사회의 모든 차원에 존재하는 압도적인 요구에 응답하여 어떤 힘이 요구되던 기꺼이 봉사하려는 의지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그리스도인들은 이해해야만 한다. 공동예배는 성취된 봉사를 축하하고 현재 시행하고 있는 봉사를 기도로 들어올리고, 미래의 선교 기회를 위하여 예배 참여자들에게 도전을 주는 상황을 제공한다. 5) 예배, 교육과 프로페테이아(도전) 교회의 예언적 과제는 현대역사에서 쉽게 간파되거나 육성되는 것이 아니다. 이 사실은 그리스도교 교회가 너무 안일하게 신앙을 지배적인 문화에 적용시켰고, 그리스도인들이 고도의 물질 만능적이며 개인주의적인 인생스타일에 동화되었음을 말한다. 그러나 예언과 도전에 대한 강조는 프로페테이아(propheteia)와 관련하여 교회를 위하여 명료하게 드러나야 할 과제이다. 예언적 과제는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공동체 혹은 사회 안에서 이뤄지는 하나님의 통치에 충분히 헌신하는 것임을 이해시키는 것을 포함한다. 복음의 미덕과 한 개인이 처한 문화가 갖는 미덕 사이의 수렴점들은 축하되고 보존된다. 그러나 상이한 점과 갈등점들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항거의 자세, 변혁, 회심을 위하여 기꺼이 투쟁하려는 용단을 요구한다. 그리스도인이 해야 할 첫째 충성은 기독교문화에 대한 것이다. 신자들은 하나님의 통치 아래서 자신의 삶을 사회를 인도하는데 기꺼이 투자하려고 해야만 한다. 개인과 공동체 삶의 차원에서 성령의 사역을 필요로 하며, 세상 안에 있으나 세상에 속하지 않은 신자의 책임을 기꺼이 수용하려는 의지를 요구한다. 교회가 지닌 이 예언적 과제와 결부되어 있는 도전에 히브리 성경의 예언자들이 모범적으로 보여 준 모험이 포함되어야 한다. 이 모험을 회피하는 것은 교회에 위임된 화해의 사역(고후5:16-21)을 등한히 여기는 것이다. 구약의 예언자들은 사람들과 나라들을 하나님 앞에 세우는 이 사명을 감당했다.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도 그와 같은 요구를 회피해서는 안된다. 이 사실은 예언의 말씀이 공동 예배에서 존중될 것과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의 요구에 기꺼이 응답하려는 뜻을 나타내어야 함을 말한다. 예배와 교육의 연관성은 효과적인 사역과 교회의 지속적 갱신에 대한 관심에서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그와 같은 노력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께서 영원히 영광을 받으시고 즐거워하시는 것이다. 그와 같은 노력의 차선적 목적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삶을 통하여 예배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므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한 제자가 되는 것이다. 로버트 파즈미노(Robert W. Pazmino) |
'주예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예배와 음악 (0) | 2022.02.21 |
---|---|
예배의 역사 (0) | 2022.02.21 |
교인의 예배의식 7원리 (0) | 2022.02.21 |
왜 기도해야 하는가? (0) | 2022.02.21 |
그릇만큼 주십니다 (0) | 2022.01.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