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음악
I. 한국 교회 예배의 문제점 한국 교회에 예배는 없고 설교만 있다는 비판의 소리가 높다. 예배를 위해서 설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설교를 위해서 예배가 있다. 따라서 교인들은 예배를 드리려고 교회에 가는 것이 아니라 설교를 들으러 간다. 예배를 '보러' 간다고 한다. 예배, 즉 설교를 구경하러 가는 것이다. 예배를 '내가' 드리려는 것이 아니라 남이 하는 예배 행위, 즉 설교 행위를 관람하고자 하는 것이다. 관람료(헌금)는 각자 알아서 내고 말이다. 따라서 현행 한국 교회 예배의 문제점은 설교자를 중심으로 예배가 진행된다는 것이다. 사회자(집례자), 기도자, 성가대의 역할은 설교자의 등장을 위한 준비 단계와 같다. 설교자는 예배의 주인공처럼 등장한다. 그리고 설교 시간에 제왕처럼 군림한다. 그 앞에서는 모두가 엄숙해야 하고 침묵을 지켜야 한다. 오직 복종과 충성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한국 교회 예배는 초대교회 예배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였던 축제라는 의미를 상실하고 있다. 즉 민중 문화로서의 예배가 아니라 엘리트 문화로서의 예배를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이 때 회중은 축제의 주체자가 아니라 구경꾼이다. 그리고 회중은 예배 안에서 스스로 헌신(獻身)과 헌심(獻心)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세상의 삶 가운데서 예배드린 자로 살아가지 못하고 있다. 즉 회중 예배의 감동은 생활 예배로 연결되지 못한다. II. 예배의 원형(原形) 1. 예배의 3요소 초대교회의 예배는 주후 3세기 경에 기본적인 골격이 완성되었는데 예배를 이루는 3대 요소는 설교와 성만찬과 음악이었다. 예배는 두개의 큰 부분으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첫째 부분은 설교 중심의 말씀 예배가 있었고 그 후 성만찬 중심의 다락방 예전이라고 불리는 성찬 예배가 있었다. 그리고 예배 전체를 하나로 이어주는 음악이라는 제3의 요소가 있었다. 시편 찬양, 알렐루야 찬양, 키리에 엘레이손(Kyrie eleison), 상투스(Sanctus) 등의 음악 요소와 더불어 성경봉독이나 기도, 봉헌 등의 모든 순서가 낭송이나 낭창과 같은 음악적인 요소를 받아들임으로써 예배는 입체화되고 축제적인 분위기로 거행되었다. 설교와 성만찬이 예배라는 수레의 두 바퀴였다면 이 정지되고 죽어 있는 수레바퀴에 활력을 불어넣은 것은 음악이었다. 음악은 이 두 바퀴 달린 수레를 움직이는 동력(動力)이요 에너지이며, 설교와 성만찬의 예배를 축제화 하는데 필요한 활력(活力)이요 생명력이었다. 2. 축제의 예배 예배의 원형에서 중요한 요소는 축제이다. 예배의 시작은 주님의 부활에 대한 축제였다. 한 자리에 모여서 떡을 떼며 물건을 서로 공유하며 너와 나의 신분, 지식, 빈부, 성별, 출신 등의 장벽을 허물고 부활의 주님 안에서 한 형제요 자매임을 확인하고 하나님이 아버지 되심을 확신하는 자리가 바로 예배였다. 예배의 자리에서는 성직자와 평신도의 기능적 구분은 있었지만 신분적 구분은 없었다. 예배 인도자는 감독이나 신부(목사)였으나, 평신도인 집사도 예배 순서에 참여했다. 회중의 질서를 지도하고 성경을 봉독하고 대표 기도를 하고 헌금 순서를 담당하고 심지어는 성찬을 위한 떡과 포도주를 내오고 분배하는 일까지도 집사나 평신도가 하였다. 예배의 원형은 인도자(성직자)의 독주가 아닌 회중들이 참여하는 예배였다. 예배는 몇 가지 순서, 즉 성경봉독, 기도, 수르숨 꼬르다(Sursum corda), 상투스(Sanctus) 등을 제외하고는 자유스러웠다. 형식에 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축제의 자리였다. 경직된 예배가 아닌 기쁨과 자유가 보장된 예배였다. 외형적인 면에 치중하지 않은 영적이고 감동적인 예배였다. 3. 삶으로 이어지는 예배 예배의 첫 부분인 말씀 예배가 끝나면 세례 받은 사람들은 계속 남아 성만찬 예배에 참여하고, 세례 받지 못한 자(입교자)들은 집으로 돌아갔다. 이 관습은 처음부터 엄격하게 지켜지지는 않았던 것 같다. 주후 112년경의 문서인 플리니우스(Plinius)의 편지에는 이런 구분이 없다. 그러나 주후 130년경에 쓰여진 디다케(Didache: 12사도의 교훈)라는 문서에는 처음으로 성찬에 세례 받은 이 만 참여하도록 엄격한 제한을 두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 후 터툴리안(Tertullian)에 의하여 이 관습은 교회의 불변의 교리로 확립되었다. 예배는 입교자 예배(Missa catechumenorum)와 세례자 예배(Missa fidelium)로 구분되어 있었다. 세례 받지 않은 사람들은 말씀 예배가 끝나면 집으로 돌아갔다. 이 때 예배 인도자는 'ite! missa est'(가십시오, 해산합니다.)라고 회중에게 말한다. 여기에서 미사(라틴:Missa/독:Messe/영:Mass)라는 예배 용어가 나왔다. 그러므로 이 미사(Missa)라는 말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 하나는 모이는 예배(회중예배)를 말하며, 또 하나는 흩어지는 예배(생활예배)를 의미한다. 즉 회중 예배에서 세상의 삶 가운데로 파송되어진다는 선교의 의미가 함께 있다. 선교를 의미하는 미션(Mission)이라는 말은 바로 예배를 일컫는 미사(Missa/Missio)에서 나온 말이다. 선교란 주의 이름으로 모였던 성도들이 세상으로 파송되는 것을 말하며, 예배의 영역은 세상의 삶에까지 확대되고 있다. 한편 세례 받은 자들은 다락방 예배라고 불리는 성찬 예배에 참여했는데 이 예배의 끝에는 주님의 재림을 고대하는 '마라나'(Maran Atha)의 고백이 있었다. 이 말은 '우리 주님이여, 오소서'(marana ta) 또는 '우리 주님이 오십니다'(maranata/maran ata)라는 뜻으로 세상에 나가 살 동안 주님의 다시 오심을 고대하는 믿음으로 환난과 시련을 이기고 주님의 뜻을 이루며 그 나라의 확장을 위하여 살 것을 다짐하였다. 즉 삶으로 예배드릴 것을 고백하는 의식이었다. III. 예배의 변형(變形)과 그 역사 1. 종교개혁 이전의 예배 주후 4세기가 되었을 때 기독교는 공인된 종교가 되었고 비밀리에 모이던 교회 예배는 공개적인 예배로 전환되었다. 후에 모든 로마 시민들은 의무적으로 기독교인이 되어야 했다. 기독교인이 아니면 살아남기 힘든 사회가 되면서 교회는 점점 제도화되고 권위주의의 옷을 입게 되었다. 모든 믿는 자에게 제사장적 신분이 있다는 생각은 점차 퇴보하고 성직자와 평신도 사이에 신분적인 구분이 생기게 되었다. 더 이상 선교를 위해서 노력할 필요가 없게 되고, 모든 시민이 교회의 지배 아래에 놓여지게 되자 성직자들은 자신들과 평신도들을 구분하기 시작했다. 성직자의 권위를 높이기 위하여 주교(Bischop)라는 제도가 생겨났다. 그리고 성직자들은 이 때부터 가운을 걸치고 구별된 복장으로 시민들 앞에 나서기 시작했다. 예배 중의 성직자의 비중이 점점 더 높아졌다. 예배의 거의 모든 부분을 성직자가 맡기 시작하면서 회중은 예배의 구경꾼으로 전락하기 시작했다. 결국 회중은 예배 중에 노래할 권리마저 박탈당하고 말았다. 성가는 성직자만이 부르도록 못을 박았다. 특히 성만찬의 의미가 강화되었다. 성찬을 받는 행위 자체가 구원의 효력이 있다고 믿게 되면서 성찬을 집례하는 성직자들은 하나님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 결국 예배(미사)하는 것이 공적을 쌓는 일이 되어 성직자는 '회중 없이' 예배 드리는 일이 빈번해졌다. 이에 따라 신학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미사 집례 전문 성직자들이 크게 늘어나면서 성직자의 저질화, 사이비화와 함께 모든 교회가 함께 타락하는 양상을 보이게 되었다. 2. 종교개혁 이후의 예배 종교개혁자들은 중세 예배를 통하여 높아진 성직자의 권위와 특권을 비판하고 예배의 원형으로 돌아갈 것을 주장하였다. 예배가 하나님을 위한 수단이 되지못하고 그 자체가 목적이 된 것을 바로 잡았다. 예배 의식 자체를 거룩한 행위로 간주하고 이를 미화시켰던 많은 외형적 요소들을 예배로부터 제거하였다. 성찬은 구원을 받는 행위요, 집례하는 성직자는 구원의 열쇠를 쥔 자라는 교리를 일축하였다. 종교개혁자들은 예배의 원형을 찾기 위하여 예배 안에서 소외된 회중의 자리와 역할을 회복시키는 작업을 하였다. 회중에게 노래하는 즐거움을 되돌려 주었다. 회중 찬송이 종교개혁자들에 의하여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다. 루터는 코랄을, 칼뱅은 시편가를 만드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그뿐 아니라 성직자만이 가질 수 있었던 성경이 회중의 손에 쥐어졌다. 성만찬은 더 이상 구원의 수단일 수 없었다. 만인제사장설(루터)과 성가대 폐지론(칼뱅)이 나왔다. 온 회중이 말씀과 찬양이라는 초대교회의 유산을 되찾았고 성찬의 바른 개념을 알게 되었다. 예배 안에서 성직자와 평신도 사이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축제의 틀이 마련된 것이다. 그리고 이 축제의 틀 안에서 예배는 그 영역을 삶에까지 넓혀 갈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작업은 미완성으로 끝나고 말았다. 설교가 중심이 되면서 예배는 다시 경직되기 시작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성직자는 다시 구별되기 시작했고 권위의 벽은 점점 더 높아만 갔다. 이제는 설교자의 말 한마디가 구원까지도 좌우하게 되었다. 설교자인 성직자는 회중의 자리를 버리고 다시 하나님의 전권대사의 자리로 올라갔다. 설교자가 말씀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설교자를 섬기는 기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시간이 아닌 설교자 자신의 주장을 위해 성경을 이용하는 시간으로 전락되었다. "종놈"이 "종님" 노릇을 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의 사자"로 둔갑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성가대에서도 나타난다. 회중의 자리에서 회중을 대표하여 하나님께 찬양을 드려야 할 성가대가 중세의 영광을 꿈꾸기 시작했다. 즉 성가대원들은 성직자라는 주장을 하게 된 것이다. 성가대는 이제 성직의 높은 자리에서 오히려 노래를 회중에게 들려주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회중은 성가대가 부르는 노래를 따라 자신이 함께 하나님에게 찬양을 드린다는 의식은 없고 오히려 성가대의 노래를 감상하고 있는 것이다. 성가대는 진정한 찬양의 의미를 생각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기교적으로 훌륭한 연주를 하여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할 것인가에 골몰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타락된 중세 성가대의 모습이다. 오죽하면 칼뱅은 성가대를 폐지할 것을 주장했을까? 성가대는 회중의 자리로 내려가 회중의 노래를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IV. 맺는 말 오늘날 한국 교회 예배에서 가장 시급하게 해야 할 일은 예배의 원형을 되찾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노력이 필요하다. 첫째, 예배의 3요소인 설교와 성만찬과 음악을 조화시키는 일이다. 비대해진 설교의 군살을 빼어 내고 성만찬 예식을 강화하며 찬양을 활성화시켜야 한다. 음악은 설교 중심에서 나오는 경직되고 권위적인 분위기를 해소하는 무기이다. 음악은 강팍한 마음을 부드럽게 녹이며 권위주의적인 모든 것을 부정한다. 음악은 전달된 말씀의 감동을 배가시키며, 설교자가 말로 못 다한 부분을 보충한다. 둘째, 예배 중에 회중을 위하여 가능한 한 많은 찬양의 자리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 특히 설교 후에 반드시 찬송 순서를 넣도록 한다. 설교 후에 부르는 찬송을 통하여 회중은 말씀에서 얻은 감동을 배가시킬 수 있다. 그러므로 음악이 인간에게 어떤 감화력을 끼치는가를 아는 목회자들은 말씀 후의 찬송 순서를 빼놓을 수 없다. 설교 후에 곧 바로 광고를 한다든지, 헌금과 찬송을 병행시키는 것은 옳지 못하다. 셋째, 찬양은 회중을 예배에 동참시킨다. 회중은 찬양을 통하여 능동적으로 예배에 참여한다. 이를 통하여 회중은 마음과 마음이 연합하게 되며 축제적 분위기의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또한 찬양의 시간을 통하여 성직자와 회중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죄인 됨을 고백하며 한 형제요 자매임을 확인할 수 있다. 즉 목회자와 평신도 사이의 장벽이 허물어지며 축제의 분위기가 무르익어가는 것이다. 넷째, 찬양을 통하여 권위주의와 엘리트 의식을 버려야 한다. 회중 찬송을 부르는 시간에도 권위주의나 엘리트 의식이 있어서는 안된다. 예배 인도자가 마이크에 대고 너무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지 말라! 그것은 축제의 분위기를 해치며 하나 됨을 파괴하는 행위이다. 찬송 시간에는 목회자도 회중이 되라! 죄인이 되고 은총을 기대할 수밖에 없는 피조물이 되어 곡조 있는 기도와 신앙고백을 하나님께 드려 보라! 그리하여 찬양 가운데서 목회자와 온 회중이 한 몸 된 의식으로 녹아져 보라! 이러한 영감이 넘치는 예배를 드릴 때마다 그 교회의 분위기는 아름답게 바뀔 것이다. 다섯째, 이제 예배는 은총에 대한 '응답'이라는 관점에서 새롭게 드려질 수 있다. 설교를 들으러 가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 대하여 응답하는 감사와 감격의 마음으로 찾아가는 것이 예배의 자리이다. 음악은 이러한 응답이라는 관점을 가장 잘 설명해 주는 예배 요소이다. 찬양을 통하여 인간은 하나님께 응답한다. 그리고 이러한 응답적인 분위기가 예배 전체를 지배할 때 우리는 더 이상 설교 위주의 예배, 설교에 매달리는 예배를 드리지 않게 된다. 설교를 들은 것과 예배를 드린 것은 다르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케이블 TV에서 아무리 설교가 홍수처럼 쏟아져 나온다 해도 예배의 자리는 소중히 지켜질 수 있다. 여섯째, 이러한 응답적인 예배의 자세는 삶에까지 이어져야 한다. 구속의 은총에 대한 응답적인 자세로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곧 예배하는 자의 마음이다. 삶이 예배가 될 때 예배하는 자들은 자신뿐만 아니라 교회를 변화시키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 응답적인 자세로, 예배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려는 사람들이 많아질 때 부끄러운 교회의 모습도 바로잡을 수 있다. 고질적인 교계의 선거 풍토가 개선되어질 수 있다. 물질 만능으로 멍든 상처투성이의 우리의 현주소를 바꿀 수 있다. 명예에 사족을 못쓰는 초라한 우리의 병든 마음이 건강을 회복할 수 있다. 그리고 교회는 이 사회에 대하여 무엇인가를 말할 수 있게 된다. 예배의 원형을 되찾는 일은 우리 모두가 힘써야 할 이 시대의 가장 시급한 과제이다. 문성모 목사(대전신학대학교 총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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