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글 좋은시

어느 오후 / 유영호

대구해송 2017. 12. 24. 21:15

어느 오후 / 유영호

               

비오는 창밖엔 바람만 분주하다
전화기도 입을 다문 사무실
컵라면으로 늦은 점심을 먹는다
똑 똑 똑 손기척소리
늙수그레한 얼굴이 들어선다
고무장갑 수세미 등을 파는 남자
막 입에 들어가던 라면가닥이
같이 먹자며 인사치레를 한다
잠시 머뭇거리던 그가
고맙다며 가방을 내려놓는다
종일 비를 맞고 다녔지만
아직 만원 어치도 못 팔았단다
나는 게을러 때를 놓쳤지만
그는 컵라면도 녹록치 않은 듯
허기가 젓가락에 허겁지겁 걸쳐진다
커핏잔을 내려놓은 남자는 떠나고
극구 마다해도 기어이 놓고 간
파란 수세미 한 개가
기름기에 찌든 세속을 닦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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