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와 가시 / 김승희
눈먼 손으로 나는 삶을 만져 보았네.
그건 가시투성이였어.
가시투성이 삶의 온몸을 만지며 나는 미소 지었지.
이토록 가시가 많으니 곧 장미꽃이 피겠구나 하고.
장미꽃이 피어난다 해도
어찌 가시의 고통을 잊을 수 있을까 해도
장미꽃이 피기만 한다면
어찌 가시의 고통을 버리지 못하리오.
눈먼 손으로 삶을 어루만지며
나는 가시투성이를 지나 장미꽃을 기다렸네.
그의 몸에는 많은 가시가 돋아 있었지만, 그러나
나는 한 송이의 장미꽃도 보지 못하였네.
그러니, 그대 이제 말해주오,
삶은 가시장미인가 장미가시인가
아니면 장미의 가시인가,
또는 장미와 가시인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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