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 마종기
높고 화려했던 등대는 착각이었을까.
가고 싶은 항구는 찬비에 젖어서 지고
아직 믿기지는 않지만
망망한 바다에도 길이 있다는구나.
같이 늙어 가는 사람아,
들리냐.
바닷바람은 속살같이 부드럽고
잔 물살들 서로 만나 인사 나눌 때
물안개 덮인 집이 불을 낮추고
검푸른 바깥이 천천히 밝아왔다.
같이 저녁을 맞는 사람아,
들리냐.
우리들도 처음에는 모두 새로웠다.
그 놀라운 처음의 새로움을 기억하느냐,
끊어질 듯 가늘고 가쁜 숨소리 따라
피 흘리던 만조의 바다가 신선해졌다.
나는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몰랐다.
거기 누군가 귀를 세우고 듣는다.
멀리까지 마중 나온 바다의 문 열리고
이승을 건너서, 집 없는 추위를 지나서
같은 길 걸어가는 사람아,
들리냐,
'좋은글 좋은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리움은 돌아갈 자리가 없다 / 천양희 (0) | 2016.07.10 |
---|---|
살아가는 일이 힘이 들거든 / 최광림 (0) | 2016.07.10 |
비를 좋아하는 사람은 / 조 병 화 (0) | 2016.06.24 |
마음 / 곽재구 (0) | 2016.06.19 |
삶 / 문무학 (0) | 2016.06.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