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스크랩] Olivia Newton John - Let Me Be There

대구해송 2016. 1. 16. 12:18

 

Olivia Newton John

 

 

 

 

   5곡의 넘버원 싱글과 22곡의 탑 40 히트곡을 배출한 팝의 여왕, Olivia Newton John의

   'Come On Over', 'Let Me Be There', 'If Not For You' 3곡 입니다.

 

   첫번째 곡, 'Come On Over'는 1976년 발표한 앨범 [Come On Over]에 수록된 곡 입니다.

   앨범은 빌보드 앨범챠트 13위, 컨츄리 앨범챠트 2위 그리고 일본 Oricon 앨범챠트에는

   2위에 올랐습니다(당시 일본에서 Olivia Newton John의 인기는 대단 했습니다)

 

   앨범에서 유일하게 싱글로 발매되어 싱글챠트 23위, 컨츄리 싱글챠트 5위, AC챠트 1위에

   올랐던 이곡의 원곡은 Bee Gees의 Barry, Robin Gibb 형제가 1975년 만든 곡으로 

   앨범 [Main Course]에서 발표한 곡이죠....

 

   두번째 곡, 'Let Me Be There'는 1973년 동명의 앨범 [Let Me Be There]에 수록된 곡으로,

   앨범은 앨범챠트 54위, 컨츄리 앨범챠트 정상에 올랐습니다.

   2번째 싱글로 발매된 이곡은 John Rostill이 만든 곡으로 Olivia Newton John의 첫번째

   Top 10 싱글(6위)이죠...

   AC챠트 3위,컨츄리 싱글 챠트에서는 7위에 올랐으며 이 곡으로 Grammy상 "Best Female

   Country Vocalist"를 수상했습니다.

   Mike Sammes가 Bass 하모니를 넣었죠...

 

   3번째 곡, 'If Not For You'는 1971년 데뷔앨범 [If Not For You]에 수록된 곡으로,

   빌보드 앨범챠트 158위, 호주 앨범챠트 14위에 올랐습니다.

   싱글로 발매되어 싱글챠트 25위, AC챠트 1위, 호주 챠트 14위에 올랐고, 두번째 싱글

   'Banks of the Ohio'는 싱글챠트 94위, AC챠트 34위, 호주 챠트 1위에 올랐죠..

   이 곡의 원곡은 1970년 Bob Dylan이 발표한 곡 입니다.

 

 

 

  올리비아 뉴튼 존은 1948년 9월 26일 영국 케임브리지에서 태어났다.
  올리비아는 1965년 호주의 탤런트 콘테스트에 출전하여 우승, 부상으로 영국여행의 기회를

  얻게 되는데 영국에 도착한 그녀는 호주로 돌아가지 않고 그때부터 본격적인 음악생활을

  시작했으며 최초의 레코드 취입(single : Till you say you'll be mine/For ever)도

  이 무렵 시작되었다.
  올리비아의 노래가 처음으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것은 밥 딜런의 오리지널을

  브루스 웨일즈가 편곡한 'If not for you'였다.

  이 곡은 영국에 이어 미국에서도 제법 인기를 얻게 된다.
  그후 1972년 클리프 리챠드의 TV 쇼에 고정게스트로 출연하면서 그녀는 런던의 라이브

  가수로 명성을 굳혀갔다.

  Shadows 의 다른 멤버였던 존 파라가 작곡한 Let me be there 는 공전의 인기를 누리게

  되는데 이때부터 존 파라와 올리비아의 파트너쉽이 25년 이상 계속되고 있고 그후 존 파라는

  올리비아의 초기 듀엣파트너 팻 캐롤과 결혼하게 된다.

  올리비아는 1974년 프랑스에서 휴가를 보내던 중 유능한 사업가인 Lee kramer를 만나는데

  그는 이후 수년간 올리비아의 연인이자 매니저를 맡게 되었고 올리비아는 그의 도움으로

  유러비젼 송 콘테스트에서 영국대표로 출전하기도 했다.

  1974년은 그룹 ABBA가 유럽을 휩쓴 해였는데 ABBA의 노래 Waterloo 가 1위를 차지하고

  올리비아의 Long live love 는 4위에 그쳤다.
  한편 If not for you 의 성공 이후로 미국에서도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그녀는 I honestly

  love you, Have you never been mellow, Please Mr.please 등의 연속적인 히트곡을

  내면서 세계적인 가수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올리비아는 1970년대 초,중반 미국의 그래미상,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등을 매년 수상하며

  명실상부한 당대의 최고 여가수로 승승장구하게 되었고 ABC 방송국에 그녀 자신의 쇼도

  가지게 되기에 이르렀다.

  가수로서의 성공은 스크린으로도 이어졌다.

  올리비아는 1978년 뮤지컬을 영화화한 '그리스'에서 주인공 샌디 역을 맡아 존 트라볼타와

  함께 멋진 노래와 춤을 선보였는데 영화와 사운드 트랙 모두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 영화는 지난 1998년 그리스 개봉 20주년을 기념하여 재개봉되었는데 역시 흥행에 성공을

  거두는 이변을 낳기도 했다.

  뮤지컬 영화 사상 가장 명장면 중 하나로 꼽히는 Summer night 장면은 최근 국내에서

  고소영과 정우성이 등장하는 청바지 CF에서 패러디 되기도 했다.
  영화 속의 샌디가 청순한 소녀에서 끼가 넘치는 여인으로 변신하듯 올리비아의 음악도 이 무렵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컨츄리, 발라드 계열의 노래를 즐겨불렀던 그녀는 비트가 강한 록이 가미된 음악들을

  시도하기 시작했는데 주위의 우려와는 달리 좋은 반응을 얻으며 제 2의 전성기를 예고하게

  된다.
  1980년 올리비아는 그리스 성공의 여세를 몰아 또다른 뮤지컬 Xanadu 에 출연했는데

  아쉽게도 영화는 비평과 흥행 모두 참패를 거두었다.

  다만 ELO와 같이 만든 사운드 트랙만은 그리스 못지 않은 성공을 거두었다.

  영화 재너두에서 그녀는 11살 연하의 무명 댄서 배우 매트 래턴지를 만나며 두 사람은 곧

  사랑에 빠지게 되어 훗날 결혼까지 이르게 된다.

  1981년에는 올리비아의 최대 히트곡인 physical 이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를 올리비아

  열풍으로 물들였는데 이 노래는 빌보드 지에서 10주 연속 1위를 기록하며 80년대 미국 최대의

  히트곡 중 하나로 남게 된다.

  또한 비슷한 시기에 불어닥친 에어로빅 붐과 맞물려 Physical의 뮤직비디오 또한 많은 인기를

  얻었다.
  1983년에는 존 트라볼타와 다시 짝을 이루어 영화 Two of a kind를 찍는데 영화자체는

  기대이하였지만 데이비드 포스터가 제작한 사운드 트랙만은 좋은 반응을 얻었다.

  1984년 겨울 마침내 올리비아는 그간 동거해오던 매트 래턴지와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 후 그녀는 임신 중임에도 불구, Soul kiss 라는 앨범을 발표하고 뮤직비디오를 만들기도

  했으나 이전같은 큰 인기는 누리지 못했고 1986년에 딸 클로에를 분만한다.

  이후 올리비아는 딸의 양육과 사업 '코알라블루'에만 신경을 쓰며 음악적으로는 수년간

  공백기간을 갖게 된다.  그러나 사업가로서의 올리비아는 성공하지 못했다.

  코알라블루는 90년대 초반 파산신고를 내기에 이르렀으며 올리비아는 경제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큰 타격을 입었다.
  물론 공백기간에도 음악을 완전히 등한시하지는 않았는데 1988년 엘튼 존이 써준 곡

  The Rumour를 타이틀로 한 앨범을 발매하기도 했고 호주독립 200주년 기념식의 노래도

  불렀으며, 1989년 딸 클로에를 위해 자장가와 뮤지컬 넘버들을 리메이크한 Warm and

  Tender album을 발매하기도 했다.

  Warm and tender 이후로 올리비아는 MCA와 결별하고 데이비드 게펜 사에서 앨범을

  발매하게 된다.

  사업의 실패 후 다시 올리비아는 노래에 전념하기로 하는 듯 싶었다.

  1992년 Back to basic 이라는 그동안의 히트곡을 모은 곡에 신곡들을 섞은 앨범을 발매하고

  각종 투어를 계획하는 등 재기에 박차를 가했다.

  그러나 연이은 불행이 그녀에게 찾아왔다.

  아버지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곧이어 그녀 자신도 유방암에 걸린 것이다.

  그녀는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유방암 수술과 화학요법 및 1년 가까이 투병생활을 거친다.
  이 투병기간은 그녀의 음악과 인생에 새로운 전기를 만들어내는 계기가 되었다.

  병상에서 일어나자마자 그녀는 전곡을 손수 만든 Gaia-one woman's journey 라는 앨범을

  만들었으며 자신의 투병생활에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유방암 조기 발견 및 환자의 재활을

  위한 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1995년 올리비아는 남편 매트 래턴지와 별거를 시작했고 이듬해 결국 두 사람은 결혼생활을

  마감했다.

  이혼 후 그녀는 호주에서 환경보호 TV 프로에 출연(올리비아 뉴튼 존의 자연과 인생이라는

  시리즈로 국내 교육방송에서도 방영)하거나 여성건강관리 및 미용에 대한 글을 기고하기도

  했다.

  그녀는 A Pig tale 이라는 동화책의 공동저자이기도 하며 호주의 Woman's day에

  [Looking great with ONJ 라는 제목의 고정 칼럼을 최근까지 맡았었다.
  올리비아는 열렬한 환경보호론자이자 아동보호 운동가이다.

  최근에 발표하는 자작곡들에서 특히 이런 경향이 짙어지는데 사실 그녀는 이미 1990년부터

  유엔의 환경친선대사를 맡았고 Childrens' Health Environmental Coalition 이라는

  아동건강보호 단체에서 자선활동도 계속 벌이고 있다.

  그녀의 이러한 사회적인 활동은 1999년 Red CrossHumanitarian Award

  (for environmental & breast cancer charity work) 및 Women's Guild of Cedar-

  Sinai Woman of the 21st Century Award (for environmental & breast cancer

  charity work) 등의 수상으로 까지 이어지게 된다.

  올리비아의 음악적 컴백은 1998년 팝-컨츄리 앨범 Back with a heart 로 본격적인 출발을

  고했다.

  이 앨범은 전성기 때만큼 인기를 얻지는 못했지만 50세가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고혹적인

  모습과 건강한 목소리를 지니고 있음을 확인시켜 그녀의 팬들을 기쁘게 했다.

  이후 그녀는 클리프 리챠드와의 듀엣 공연, 호주에서의 Main Event tour 에 이어 99년에는

  미국 순회 공연까지 성황리에 치루어내는 등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다.

  

  2000년에도 그녀는 콘서트를 통해 계속 팬들과 만나는 한편 컨트리 가수 Vince gill 과 함께

  크리스마스 캐롤 앨범을 만들었고 시드니 올림픽 개막식의 메인 아티스트와 성화 봉송주자

  로도 등장했다.

  그리고 이에 앞서 30년가까이 국내 팬들이 고대해왔던 한국 공연을 8월 22일 마침내

  성사시켰다.  
 



  5곡의 넘버원 싱글과 22곡의 탑 40 히트곡을 배출한 팝의 여왕 Olivia Newton-John은

  '팝계의 신데렐라' 혹은 '팝계의 꾀꼬리'라는 애교스런 별명으로 1970년대와 1980년대를

  통치했다.

  국내에서는 디스코와 팝록으로 전향한 1970년대 후반 이후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그녀의

  첫사랑은 컨트리 음악이었다.

  우리 한국인들에게 이 미녀 가수의 초기 히트곡들인 'If not for you'나 'Let me be there',

  'If you love me(Let me know)' 등은 'Physical', 'Xanadu', 'Summer nights',

  'Magic'보다 조금은 더 생경하게 다가온다.

  1948년 9월 26일, 영국의 캠브리지에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독일계 할아버지인

  막스 본(Max Born)과 대학 학장인 아버지를 둔 '영국판 사대부' 집안의 딸로 태어나 곱게

  자란 올리비아 뉴튼 존은 기숙사처럼 딱딱한 가풍과 부모님의 이혼으로 받은 상처에서

  벗어나기 위해 음악에 몰입했다.

  20대 초반에 클리프 리차드(Cliff Richard)의 백보컬리스트로 합류하면서 가닥을 잡아가던

  금발의 뉴튼 존은 1971년에 밥 딜런(Bob Dylan)의 원곡 'If not for you'로 데뷔하면서

  팝 역사의 표면 위로 떠올랐다.

  1970년대 초반 그녀는 미국인의 전유물로 인식되던 컨트리 음악으로 그래미는 물론 주요

  컨트리 음악 상을 수상하는 성공을 거두었지만 정통 컨트리 신봉자들은 그녀를 인정하지

  않았다.

  우선 이 미녀 가수가 미국인이 아니라 호주에서 성장한 영국인이었고, 둘째는 컨트리의

  트레이드마크인 소위 '꺾기 창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깔끔하게 부르는 그녀의 목소리는 한 잔의 맑은 정화수나 청명한 봄바람 그 자체다.

  이 컨트리 창법 상의 약점(혹은 장점) 때문에 1970년대 후반 올리비아 뉴튼 존이 디스코나

  팝 록으로의 방향 전환이 어렵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올리비아 뉴튼 존의 명성은 전 세계적으로

  퍼져나갔다.

  데뷔 초기 그녀가 취입한 곡들은 다른 아티스트들의 노래들을 커버한 것이 많았다.

  브레드(Bread)의 'If', 'Everything I own', 존 덴버(John Denver)의 'Take me home

  country road', 조지 해리슨(George Harrison)의 'What is life', 홀리스(Hollies)의

  'The air that I breathe', 'He ain't heavy, he's my brother' 등, 그녀가 그래미 최우수

  컨트리 여자 가수상을 수상한 'Let me be there(6위)'를 제외하면 초기 3장의 음반은

  거의 컴필레이션의 성격이 짙은 앨범으로 구성되었다.

  그것은 기존에 많이 알려진 곡들로 신인 가수들의 입지를 빠르게 다지면서 대중들에게 쉽게

  어필하기 위한 스타 메이킹 공식이었다.

  소포모어 징크스는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그녀를 스쳐갔다.

  경쾌한 컨트리 곡 'If you love me(Let me know-5위)', 포크 풍의 발라드 'Please Mr.

  Please(3위)', 그리고 빌보드 싱글 차트 탑을 장식한 'I honestly love you'와

  'Have you never been mellow'로 눈이 큰 올리비아의 인기에 가속도를 붙였다.

  'I honestly love you'로 그래미 최우수 여성 팝보컬과 올해의 레코드를 수상한 금발의

  싱어는 1976년엔 프레드 로스(Fred Rose)의 컨트리 고전 'Blue eyes crying in the rain'을

  재해석했다.

  이 곡은 1990년대 초반 국내의 땅콩 CF에서 조영남이 불러 뒤늦게 알려졌다.

  1975년도 싱글 'Please Mr. Please'가 3위에 오른 이후 인기 전선이 소강상태를 보이자

  그녀는 '컨트리 소녀'에서 '섹시 걸'로 과감한 이미지 변신을 감행했다.

  청바지 대신 검정색 가죽 바지를 입은 올리비아 뉴튼 존은 머리 기름을 한껏 바른

  존 트라볼타와 1978년도 뮤지컬 영화 <그리스>의 주인공을 맡은 것이다.

  옷만 바뀐게 아니었다. 음악도 바뀌었다.

  컨트리와 포크의 카테고리에서 벗어나 디스코와 팝록, 소프트 팝 등 다양한 음악 형식을

  소화했다.

  영화 성적도 좋았고 사운드트랙도 플래티넘의 고지에 올라섰다.

  프랭키 밸리(Frankie Valli)의 'Grease'와 뉴튼 존과 트라볼타가 함께 부른

  'You're the one that I want'가 차트 1위를 차지했고 컨트리 풍의 'Hopelessly devoted

  to you'와 'Summer nights'도 각각 3위와 5위를 기록하면서 1980년대 꽃을 피우는

  컴필레이션 형(形) 사운드트랙의 물꼬를 텄다.

  'Summer nights'는 정우성과 고소영이 등장하는 국내 청바지 광고의 배경 음악으로

  깔리면서 1990년대 후반에 사랑 받았다.

  다시 맞이한 전성기로 한껏 고무된 금발의 여가수는 안정적인 길을 택했다.

  1978년도 솔로 음반 <Totally Hot>은 성인 취향의 팝록과 디스코 사운드에 의지했다.

  1980년에는 <그리스> 형식을 답습한 공상 과학 뮤지컬 영화 <제너두>에 출연해 ELO와

  함께 뉴웨이브 스타일의 사운드트랙을 담당했다.

  타이틀 트랙 'Xanadu(8위)'와 'Magic(1위)', 클리프 리차드와 호흡을 맞춘 발라드

  'Suddenly(20위)'의 히트로 앨범은 성공했지만 영화는 혹평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뉴튼 존은 이 영화에서 만난 11살 연하의 배우 매트 라탄지(Matt Lattanzi)와

  1984년에 결혼해 개인적으로는 큰 수확을 거두었다.

  1981년 연말, 제목만큼이나 육감적인 뮤직비디오를 앞세운 'Physical'이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이 곡은 데비 분(Debbie Boone)의 'You light up my life'와 함께 빌보드 싱글 차트

  10주간 1위 고수라는 당시로서는 기네스 적인 기록을 새운 대형 히트 곡이었다.

  이 노래 때문에 Foreigner의 'Waiting for a girl like you'는 10주 동안 2위에 머물러야

  했었고, 개국한지 1년도 안 된 MTV는 이 선정적인 뮤직비디오로 광고 효과를 톡톡히

  보았다.  

  헬스와 에어로빅 장면을 코믹하게 다룬 이 뮤직비디오로 1980년대 초반 에어로빅 비디오

  제작이 봇물을 이루어 제인 폰다 같은 여배우들이 그 덕을 봤지만 그 이면에는 뮤비의

  음란성에 대한 사회적인 파장도 만만치 않았다.

  그럼에도 그래미 위원들은 'Physical'에게 최우수 비디오 트로피를 건네면서 더 이상의 잡음을

  허락하지 않았다.

  'Make a move on me(5위)', 'Heart attack(3위)', 'Tied up(38위)'으로 인기의 끈을

  이어간 뉴튼 존은 1983년에도 존 트라볼타와 다시 한번 <투 오브 어 카인드>라는 로맨틱

  코메디 영화에 출연했지만 이 작품도 실패작이라는 멍에를 벗어나지 못했다.

  사운드트랙에 수록된 'Twist of fate(5위)'와 'Livin' in desperate times(31위)'만이

  인기곡 대열에 합류했다.

  1986년에는 유명한 작곡가 겸 제작자인 데이비드 포스터(David Foster)와 함께 부른

  'Best of me(80위)'가 국내에서 유독 사랑을 받았다.

  타이틀 트랙 'Soul kiss'가 20위에 랭크된 1985년도 LP <Soul Kiss>를 마지막으로 그녀의

  성공 스토리는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1989년부터는 UN에서 추진하는 환경 운동의 민간대사를 맡아 부메랑처럼 데뷔 시절의

  풋풋한 이미지로 돌아간 그녀는 1990년대에 유방암을 극복하면서 인간 승리의 다큐멘터리를

  연출했다.

  몇 편의 영화에 실패한 올리비아 뉴튼 존이 드디어 '인생'이라는 영화를 통해 진정한 헤로인이

  된 것이다.

  이후 1990년대까지 꾸준한 앨범을 발표했지만 현재는 환경 운동가나 사회 사업에 좀 더

  집중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2000년 8월, 시드니 올림픽 성화 주자로 참여하기 직전 내한 공연을 가져 우리에게 신선한

  감동을 안겨준 올리비아 뉴튼 존의 당시 나이는 52세였다.

 

  [Albums]

 

  If Not for You (1971)
  Olivia (1972)
  Let Me Be There (1973)
  Long Live Love (1974)b
  If You Love Me, Let Me Know (1974)
  First Impressions (1974)
  Have You Never Been Mellow (1975)
  Clearly Love (1975)
  Come on Over (1976)
  Don't Stop Believin' (1976)
  Making a Good Thing Better (1977)
  Totally Hot (1978)
  Physical (1981)
  Soul Kiss (1985)
  The Rumour (1988)
  Warm and Tender (1989)
  Gaia: One Woman's Journey (1994)
  Back with a Heart (1998)
  'Tis the Season (2000)
  (2) (2002)
  Indigo: Women of Song (2004)
  Stronger Than Before (2005)
  Grace and Gratitude (2006)
  Christmas Wish (2007)
  A Celebration in Song (2008)
  This Christmas (2012)

 

  Studio albums 24, Live albums 4, Compilation albums 17, Singles 71,

  Soundtracks 4

 

 

 

 

 

 

 

 

 

 

 

 

 

 

 

 

 

 

 

 

 

 

 

 

Album [Come on Over] (1976)

 

 

Side 1

1."Jolene"
2."Pony Ride"
3."Come on Over"
4."It'll Be Me"
5."Greensleeves"
6."Blue Eyes Crying in the Rain"

Side 2

7."Don't Throw It All Away"
8."Who Are You Now?"
9."Smile for Me"
10."Small Talk and Pride"
11."Wrap Me in Your Arms"
12."The Long and Winding Road"

 

 

 

 

 

 

 

 

 

Let me be there

 

 

Wherever you go
Wherever you may wander in your life
Surely you know
I always wanna be there
Holding you hand
And standing by to catch you when you fall
Seeing you through
In everything you do

 

당신이 어디를 가든
인생의 어느 곳에서 방황을 하든
확실히 알고 있겠죠
그곳에 나도 함께 있고 싶어한다는 것을
당신의 손을 잡고 옆에 서 있다가,
넘어지면 잡아줄 거예요
끝까지 당신과 함께 하겠어요
당신이 하는 모든 일들을 말이에요

Let me be there in your morning
Let me be there in you night
Let me change whatever's wrong and make it right
Let me take you through that wonderland
That only two can share
All I ask you is let me be there

 

 

당신과 아침을 함께 보내게 해주세요
밤에도 당신과 함께 있게 해주세요
무엇이 잘못되든 바로 잡고 고치게 해주세요
당신을 동화의 나라로 데려갈 거예요
오직 우리 둘만이 나누는 그런 나라로..
부탁하는 건 다만,
함께 있게 해달라는 거예요

Watching you grow
And going through the changes in your life
That's how I know
I always wanna be there
Whenever you feel you need a friend to lean on, here I am
Whenever you call, you know I'll be there 
 

당신의 성장을 지켜보며
당신 인생의 변화를 함께 겪으며알게 됐어요
내가 언제나 당신과 함께 하길 원한다는 걸..
당신이 친구가 필요하다고 느낄 때
의지할 친구를 원할 때, 내가 있을 거예요
당신이 부르면 어느 때든알고 있겠죠,
내가 달려가리라는 것을


Let me be there in your morning
Let me be there in you night
Let me change whatever's wrong and make it right
Let me take you through that wonderland
That only two can share
All I ask you is let me be there

당신과 아침을 함께 보내게 해주세요
밤에도 당신과 함께 있게 해주세요
무엇이 잘못되든 바로 잡고 고치게 해주세요
당신을 동화의 나라로 데려갈 거예요
오직 우리 둘만이 나누는 그런 나라로..
부탁하는 건 다만,
함께 있게 해달라는 거예요

 

 

 

 

 

 

 


출처 - 도담채주택 내집짓기 건축시공자

출처 : 도담채주택 내집짓기 건축시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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