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고요함으로 무장한 평화로운 해적섬, 소이작도

대구해송 2023. 2. 17. 23:34

시퍼런 침묵의 날이 성성했다. 기억하던 방아머리선착장이 아니었다. 늘어선 차와 바글거리는 인파는 없다. 대기 차량이 많아 아슬아슬하게 배에 차를 싣던 날들, 새벽 공기를 가르며 왔는데 텅 비어 있다. 겨울 섬이란 그렇다. 누구도 오지 않고, 가지 않는다.

섬이 진정 섬다워지는 건 겨울이다. 홀로 고요히 망망대해에 놓인 채, 안으로 삼키는 세월. 여백 많은 겨울 섬의 아름다움을 아는 사람은, 국내 여행의 마지막 페이지에 다다른 닳은 신발의 여행자가 분명할 터.

선착장에 울리는 청춘의 목소리. 멈춘 풍경이 깨어난다. 최동혁·박지우씨의 등장이 마치 동장군에 반기 든 동백꽃 같다. 바다의 육식 공룡마냥 위협적인 엔진 소리를 내는 철부선이 "콰르릉!"하며 출발이 임박했음을 알린다.

지극히 한국적인 방식의 온돌방 객실은 일하러 가는 사내들 몇 명뿐 허허롭다. 두 청춘의 표정과 목소리가 공간을 미묘한 설렘으로 바꿔놓는다.

2시간여 자다 깨다를 반복해 닿은 소이작도. 배는 다음 섬으로 서둘러 떠나고, 덩그러니 남겨진 우리는 아직 도착하지 못한 마음을 연착륙시키듯 크게 호흡했다. 소이작도의 걷기길인 갯티길을 걷는다.

소이작도의 백미, 손가락바위로 향한다. 첫 손가락에 드는 명소인 바위는 소이작도를 찾은 여행자라면 누구나 찾는 '경주 여행의 첨성대' 같은 곳이다. 그게 아니라 해도 선착장 앞에서 시작되는 해안 데크길의 유혹을 모른 척할 여행자는 드물다.

건너편 대이작도를 보며 걷는 길, 야트막한 섬에서 보는 '대大'자가 붙은 섬은 거대하다. 이름 때문인지 빼곡한 건물 탓인지 알 수 없다. 산 높이로 따지면 30m밖에 뒤지지 않는다. 해발 159m는 낮지 않음을 말하고 싶어서인지, 소이작도 해안절벽은 바싹 벽을 세웠다.

두 섬은 직선거리로 500m가 되지 않을 만큼 가깝지만, 대이작에 비해 소이작은 찾는 이가 드물다. 덕분에 아무도 마주치지 않는 길의 고요가 공기처럼 깔려 있다.

기념사진 명소인 해변의 '소이작도' 조형물 앞에서 두 사람이 웃는다. 풋풋하다. 갓 대학을 졸업한 청년 앞에 펼쳐진 바다, 바람 피할 곳 없이 물결은 거칠어만 간다. 지나고서야 알게 되는 아름다운 시절의 찬란함, 비참함.

지나간 청춘들의 사연이 그 순간에 박제된 것마냥, 흰 조개껍질이 해변을 이루고 있다. 관광지였다면 '가져가지 마시오' 현수막이 걸렸을 법한 예술적인 껍질이 아무렇게나 쌓여 있었다.

데크길 끝에 정자가 있고, 너머에 바위가 있다. 누가 봐도 검지손가락을 치켜든 모양이다. 자연스럽게 손가락이 가리키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조금 굽은 허리가 펴지며 신음이 절로 나왔다.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안내판 글귀처럼 해수관음상 같아 보이기도 하고, 반가사유상 같기도 했다. 독특한 바위로 치부하기엔 그 이상의 신비로움이 깃들어 있었다.

되돌아가 '소이작도' 조형물 앞에서 산으로 든다. 개 짖는 소리가 강렬하다. 농막 같은 비닐하우스 안에서 보더콜리가 짖는다. 경계의 짖음이 아니라, 놀아달라고 애원하는 외로움의 울음이다.

아무도 마주치지 않는 편안함

임도와 산길로 나뉜다. 선택은 산길이었으나 얼마 안 가 잘못 왔음을 알아채고 되돌아 나왔다. 갯티길을 알리는 이정표나 표시가 없어, 풀어가는 재미가 있다.

낮은 산이라 얕보지 않았으나, 산세가 단순해 긴장할 것도 없다. 봉우리 꼭대기에 오르자 낡은 정자가 먼지에 쌓여 있다. 간벌을 안 한 지 꽤 되어, 경치는 없지만 아늑하여 숨 돌리기 제격이다.

식당이 두 곳 있으나, 주인들이 육지로 나가 있어 예약할 수 없었다. 차를 회수해 숙소로 가서 짐을 풀고, 김치만두를 넣어 라면을 끓였다. 허기 덕분에 평범한 라면도 눈 깜짝할 사이에 뚝딱이다. 바닷바람에 차가워진 속이 풀리며 몸이 노곤해졌다.

해변으로 나섰다. 소이작도의 대표 미인으로 꼽히는 벌안해수욕장이 모래사장과 갯벌이 섞인 채 드넓게 펼쳐졌다. 해산물을 캐내어 가는 사람이 아닌, 바라만 보는 사람은 오랜만이라며 낯설어 했다. 웃는 얼굴의 백구 한 마리가 어디선가 뛰어나와 신이 나서 우릴 좇아다녔다. 오래도록 쓸쓸했던 것이다.

카페를 겸하고 있는 여행자센터는 아무도 없다. 문이 열려 있는 걸로 봐서, 겨울 소이작도엔 아무도 오지 않을 거라 확신하는 것 같았다. 어린이집도 있다. 여기서 자라는 아이는 꿈의 크기가 작지 않을 것 같았다. 어린이집 문을 열면 펼쳐진 모래사장과 망망대해라니, 자연의 스케일에 걸맞게 꿈도 무한정 커나갈 것 같은 분위기다.

갯티길 4코스 벌안해안길. 빨주노초파남보, 찻길 경계석을 색색으로 칠해 놓았다. 평범한 찻길이 개나리 핀 꽃길처럼 명랑한 빛깔이다. 두 사람을 먼저 보내고 뒤따라간다. 바닷물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고기잡이배들이 단잠에 빠졌다.

아무도 없는 포구의 오후, 두 사람이 잠든 어선 사이를 걷는다. 투명한 물에 떨어진 잉크 한 방울처럼, 웃고 떠드는 청춘이 흑백사진 같은 풍경을 생동감 있게 바꿔놓는다.

해적을 테마로 한 '아름다운 보물섬 해적섬' 로고는 옛날이야기 덕분에 생겼다. 조선시대 이곳에 해적이 은거했다 하여 이적도伊賊島로 불리다가 이작도伊作島로 바뀌었다는 것. 그래서 갯티길 3코스 해적숲길에는 실제로 해적이 살았다는 움막 터가 있다.

벌안해변에서 기다렸으나 멋진 노을은 오지 않았다. 바닷바람은 흉포해지고 빠르게 어둠이 찾아왔다. 따뜻한 숙소가 있어 다행이었다. 너나 할 것 없이 저녁을 먹고 깊게 잠들었다.

비밀스런 해변, 약진넘어

'소小'자가 붙은 섬이라 하여 해돋이도 소박하진 않았다. 창밖으로 덕적군도가 펼쳐지는 경치 좋은 방의 위력. 검은 바다가 붉어졌다. 아침을 먹고 섬 최고봉 큰산(159m)을 오른다. 159m가 낮지 않음을 가파른 산길을 오르며 실감할 때쯤 정상이다. 다시 낮음을 인정하고 만다.

전망데크는 유적 같다. 바닥의 데크는 이가 군데군데 빠져 있어 주의하지 않으면 발이 빠질 수도 있겠다. 망원경이 있으나 나무가 높아 의미 없다. BAC 인증 섬이었다면 먼지가 쌓일 틈이 없었겠지만,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 아무도 없음이 주는 아늑한 고요가 있었다. 산을 내려와 약진넘어해수욕장으로 갔다.

오직 숲길을 헤쳐 걸어야만 닿는 해변. 짙은 소나무숲을 지나자 비밀스런 해변이 드러났다. 해안선의 굴곡이 곡선 따라 깊게 휘어지는 곳에 꽃처럼 피어난 모래해변. 소박하고 깨끗해 소이작에서 사랑을 고백한다면 이곳일 것 같았다. 해변을 걷는 두 청춘 뒤로 한없이 푸른 수평선이 펼쳐졌다. 젊은 남녀가 있는 해변의 실루엣이 이토록 여운 깊을 수 있다니. 두 사람이 있는 약진넘어는 아름다웠다.

소이작도를 떠나는 길. 섬은 점점 작아지더니, 수평선 너머로 사라졌다. 촉감 좋은 투명한 코트 같았던 고요로움이, 철부선 엔진소리에 부서져 허공으로 흩날리고 있었다.

소이작도는 손가락바위, 벌안해수욕장, 풀등전망대, 약진넘어해수욕장이 명소다. 동선을 짠다면 선착장에서 해안데크 길을 따라 손가락바위를 거쳐, 갯티길을 따라 큰산 사면을 잇는 임도를 따라 벌안해변까지 갔다가 도로를 따라 선착장으로 돌아오는 코스가 알맞다.

도로를 따라 오는 길에 큰산 정상을 거치거나, 풀등전망대, 약진넘어해수욕장을 다녀올 수 있다. 총 8km이며

4~5시간 정도 걸린다.

찻길만 보면 섬 끝에서 끝까지 3km일 정도로 작은 섬이다. 다만 큰산을 넘는 구간이 가팔라 도로 따라 걷는다 해도 만만히 볼 수는 없다. 숙소를 예약하면 선착장까지 차로 픽업이 가능하다. 섬 내 버스나 택시는 없다.

여행정보

 

교통(지역번호 032)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1599-5985)과 대부도 방아머리선착장에서 소이작도행 배편이 운항한다.

대부도 방아머리선착장에서는 하루 1회(08:30) 운항하며 1시간 50분 걸린다. 대이작도에서 나오는 배편은 하루 1회(15:00) 운항한다. 철부선이라 차량을 실을 수 있다. 편도 요금 1만700원, 차량 편도 요금 4만2,000원. 문의 대부해운(887-6669).

인천 연안여객터미널에서는 하루 2회(07:50 대부해운 1만4,300원, 08:30 고려고속훼리 2만2,600원) 운항한다. 문의 고려고속훼리(1577-28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