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나그네 / 이순규
세상은 아주 가끔
눈과 귀를 멀게 하고
발을 묶는 일이 있다
어쩌면 차라리 잠깐 동안
그렇게 멈추어 있는 것을
바라는 일도 있을테다
섬에서 정박당한 사람
공항대합실에서 발이 묶인 사람
산장에 갇혀 오갈 수 없는 사람
잠시 나그네가 되는 일이다
나는 지금 멈추어 있다
잠시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 멈춤이 언제까지라
말하지 않는 것이다
나에겐 섬도 공항도 산장도 아닌
시간과 시간 속에 갇혀 있다
시간을 돌리려 몸부림 치는 만큼
그 공간은 더욱 좁혀진다
어제도 내일도 아닌 곳으로 떠나고 있는
나그네가 되는 일이다
나는 겨울의 중간쯤 어딘가
낯선 손님으로 뚜벅뚜벅 걸어와
이름도 성도 없는 나그네로 태어난다
주름진 얼굴의 풍경들을
꾹꾹 밟고 지나가면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간들은
흔적조차 하나 둘 지워낸다
언제 왔다가 언제 갔는지
알 수 없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 모습도 아름답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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