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글 좋은시

길 / 마종기

대구해송 2020. 1. 26. 19:45

 


 

 

 

 

 

길  / 마종기


높고 화려했던 등대는 착각이었을까.
가고 싶은 항구는 찬비에 젖어서 지고
아직 믿기지는 않지만
망망한 바다에도 길이 있다는구나.
같이 늙어가는 사람아.
들리냐.

바닷바람은 속살같이 부드럽고
잔 물살들 서로 만나 인사 나눌 때
물안개에 덮인 집이 불을 낮추고
검푸른 바깥이 천천히 밝아왔다.
같이 저녁을 맞는 사람아.
들리냐.

우리들도 처음에는 모두 새로웠다.
그 놀라운 처음의 새로움을 기억하느냐.
끊어질 듯 가늘고 가뿐 숨소리 따라
피 흘리던 만조의 바다가 신선해졌다.

나는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몰랐다.
저기 누군가 귀를 세우고 듣는다.
멀리까지 마중 나온 바다의 문 열리고
이승을 건너서, 집 없는 추위를 지나서
같은 길 걸어가는 사람아.
들리냐.



 


시인 마종기가 먼 나라에서, 고국에 있는 ` 같이 늙어 가는 사람 `을 거듭

해서 부르고 있다. ` 같은 길을 걸어가는 사람 `이라니 황동규인가 김영태인가. 친구란

인생 길을 같이 걸어가는 동행인이다. 전화를 해도 되고 컴퓨터 E-mail로도 소식을 전할 수

도 있지만 잔 물살들 처럼 서로 만나 인사를 나누어야지 친교가 가능한 법. 그런데 그럴 수

는 없는 상황이고, 이제는 저승으로 난 길을 제각기 걸어가고 있다. 망망한 바다에도 길이

있는데, 멀리까지 마중 나온 바다의 문이 열리는데, 너는 ` 이승을 지나서, 집 없는 추위를

지나서 ` 외따로 난 길을 가고 있다. 마지막 연은 젊은 날을 회상한 제3연과 대조를 이루어,

눈시울이 잠시 따뜻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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