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을에 보낸 편지
새벽부터 소슬한 가을비가 내립니다.
낙엽이 심란스럽게 휘날려 떨어지고 나면 머지않아 쌀쌀한 겨울이 다가오겠지요.
어제는 참으로 맑고 따듯한 햇살이 단풍을 울긋불긋 물들여서 좋았는데,
젊었을 때는 사소한 일에도 가슴 설레고 까닭없이 놀란 것처럼 두근거리곤 했는데,
한참 세월이 흐른 지금은 가슴이 메마른 풀잎과 나뭇잎처럼 가난해지고 있습니다.
살아오는 동안에 무슨 죄를 많이 지었기에
매년 이맘 가을이 되어 떨어지는 낙엽을 물끄러미 바라보노라면
어찌 이렇게 깊은 회한에 젖는 것일까요?
한 권의 책을 펴들었어도 읽히지 않고 눈이 자꾸 창밖의 베란다로 향합니다.
거친 바람에 창문을 때리는 빗소리 탓입니다.
아니, 누군가 찾아올 것만 같은 발자국소리를 기다리는 마음 탓일 것입니다.
이 깊어가는 가을에 나를 찾아올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내가 기다려야 할 사람도 아무도 없습니다.
나를 찾아올 사람은 이미 다들 다녀갔으며
나를 기다리던 사람도 이젠 마음을 접고 돌아선 지 오래입니다.
그런데도 곡절없이 기다려지는 그리움을 어쩌지 못해 떨어지는 낙엽에 마음을 담아 사연을 몇 자 적어봅니다. 한가지 사실만으로도 행운으로 여기고 싶습니다.
혹시 바람에 날아다니다가 불현듯 님의 발길에라도 채이길 바랍니다.
그런 것도 모르고 무심하게 지나치는 님의 발길에 채였다는
혹시 그런 기상천외한 일이 발생하거들랑
이듬해 낙엽이 떨어진 그 자리에
곱고 예쁜 꽃 한송이 피워주십시요.
소박한 마음을 품어봅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속절없는 가을입니다.
어느 하늘에 계시더라도 부디 평안하옵소서.
가을편지...이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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