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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궁이 속 젖은 장작부터 걷어내야

대구해송 2018. 10. 28. 14:51

경기 삭풍 부니 아궁이에 불쏘시개 넣지만
무모한 정책 폐기해야 불씨 지필 수 있어

김종윤 논설위원

김종윤 논설위원

휘발유·경유 등에 붙는 유류세를 낮추는 건 긴급 진통제였다. 과거 두 차례 단행했다. 외환위기 이후인 2000년과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8년이다. 다음 달 6일부터 6개월간 유류세가 15% 낮아진다. 지금 경제가 그때만큼 위기인지 단정하긴 이르지만 시커먼 먹구름이 몰려오는 징조는 뚜렷하다. 고육책이 나온 이유다. 원래 정부가 꺼내고 싶은 건 추가경정예산 편성이었다. 이미 지난 5월에 3조8000억원 규모의 추경 카드를 썼다.
 
이번엔 늦었다. 예산안 마련, 국회 논의·통과 등의 절차를 따지면 올해 말까지 예산 지출은 불가능하다. 고심 끝에 과거 위기 때 꺼냈던 유류세 인하라는 부양책을 동원했다. 그만큼 다급했다는 뜻이다. 국제 유가는 상승세다. 소비는 더 위축될 상황이다. 기름값 상승분을 감세로 틀어막아 주겠으니 더 소비하거나, 아낀 돈을 다른 용도로 쓰라는 게 정부의 생각이다. 공공기관 등이 단기 일자리 5만9000개를 연말까지 만드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성장률 전망치가 낮아지고 일자리 참사는 이어진다. 경제가 활력을 잃었을 때 빈곤층이 가장 취약하다. 겨울이 오고 있다. 일단 얇은 바람막이라도 세워 혹한을 넘겨 보자는 취지다.
 
김동연 경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 주요 부처 장관들이 지난 25일 모여 심각한 표정으로 ‘뭐라도 하겠다’고 한 건 이해가 간다. 그나마 위기 가능성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이미 증권시장은 공포에 휩싸였다. 위기는 미리 대비한 사람에게는 오지 않는다. 한눈팔 때 갑자기 강타하는 게 위기다. 이런 형국에 정부가 언 발에 오줌 누기가 되더라도 쓸 수 있는 수단을 최대한 동원하겠다는 걸 탓할 수는 없다.
 
문제는 이상과 현실의 충돌이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학자의 얘기를 들어 보자. 네덜란드의 얀 틴베르헌은 정부가 보유한 정책 수단이 정책 목표보다 많거나 같을 때만 경제 정책이 효과를 낼 수 있다고 했다. 수단이 적으면 여러 개의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기 어렵다는 ‘틴베르헌 법칙’이다(조원경, 『식탁 위의 경제학자들』).  
     
문재인 정부가 가려는 길은 ‘소득주도 성장, 혁신 성장, 공정 경제’다. 한쪽에선 성장을 위해 소득을 먼저 끌어올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등은 그 수단이다. 다른 쪽에선 기술개발, 규제 완화 등으로 혁신 성장을 추구한다. 이 지점에서 충돌이 일어난다. 소득주도 성장을 밀어붙였더니 비용이 늘어난다. 이 결과 고용이 타격을 받는다. 성장의 불씨는 더 희미해진다. 이런 조건에서 어떻게 혁신적인 도전을 해서 성장엔진에 불을 붙일지 궁금하다. 그나마 정부가 혁신 성장을 위해 외쳤던 규제 완화도 나팔수의 공허한 외침일 뿐이다. 불필요하거니 시대 흐름에 맞지 않는 규제는 풀겠다고 하면서 실천을 못 한다. 예컨대 차량 공유·승차 공유는 피할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인데 유능하다는 관료님들은 택시기사의 반발에 밀려 눈치만 본다.
 
그래서 나온 수단이라는 게 아랫목에 미진한 온기라도 불어넣겠다고 아궁이에 급히 불 때는 단기 대응책이다. 이마저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소득주도성장이라는 젖은 장작이 이미 아궁이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틴베르헌은 말했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 위한 수단은 없다.”
 
화살로 조준해야 할 곳은 딱 한 곳, ‘위기 대응’이라는 과녁이다. 밖에서도 미·중 무역 전쟁과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등 강풍이 불고 있다. 안팎이 거친데 젖은 정작 쌓아놓은 아궁이에 불쏘시개 넣어 봤자 불 안 붙는다. 검증되지 않은 정책 고집하지 말고 젖은 장작부터 걷어내는 게 순리다. 불씨 지필 시간, 얼마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