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의 연가 / 송해월
사랑하는 사람아
햇살의 단내가 향그런 오월에는 우리 바람부는 숲으로 가자
한바탕 꽃 잔치 진탕하게 끝내고 자리 털고 일어나는 저 봄 그늘에
눈치없이 뒷 풀이 마련한 속 없는 여편네같은 저 아슬한 꽃들일랑
지나던 바람에 주체할 수 없는 욕정(欲情)부풀대로 부풀어 터져
활짝 벙그러지든 말든 상관말고 우리 떡갈나무 무성한 숲으로 가자
모든 것들이 나름대로 족하여 잠시 접어두었던 꿈들을 들춰내는 오월에는
너와 나 또한 너와 나 말고 그 무엇이 필요하랴
삼백 예순 다섯 날을 그분께서 허락하신 목숨 다하는 그 날까지
돌고 돌아 정신없이 살지언정
사랑하는 사람아, 눈부신 오월 어느 한 날에는
머리카락 세는 고단한 일상(日常) 한 켠에 곱게 접어두고
골 골마다 뻐꾸기 울음소리 바람에 흥건히 젖는 떡갈나무 숲으로 가자
망개 꽃 넝쿨져 엉겨 오르는 것처럼 우리 오월 하루 한 날 그렇게 얼크러져
바람에 씻기운 살 내음 영영 잊지 못 할 떡갈나무 숲으로 가자
사랑하는 사람아
삼백 예순 다섯 날을 겹으로 살면서 오월 어느 하루 한 날에는 숲으로 가
너는 밤새워 내 위에 쏟아져 내리는 밤비가 되고
나는 흐득 흐득 흐느끼는 메아리가 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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