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예수

믿음 없음을 책망하심

대구해송 2017. 7. 3. 00:52

믿음 없음을 책망하심

 

 

(마 17:14-21) “14. ○그들이 무리에게 이르매 한 사람이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이르되 15.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그가 간질로 심히 고생하여 자주 불에도 넘어지며 물에도 넘어지는지라 16. 내가 주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 하시니라 18. 이에 예수께서 꾸짖으시니 귀신이 나가고 아이가 그 때부터 나으니라 19. 이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20.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21. (없음)”

 

 

본문의 내용은 다른 공관복음서도 언급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에서는 제자들의 믿음이 강조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병 고침을 받으러 온 아버지에게 강조가 되어 기록되어서 주님의 책망을 들은 병자의 아버지가 "나의 믿음 없음을 도와주옵소서"라고 구하였을 때에 주님은 병자를 고쳐주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누가복음은 병자의 상황에 맞추고 있습니다. 병든 자는 외아들로서 그의 어머니가 얼마나 큰 곤경에 처해있는가를 자세히 기술합니다. 주님께서 과부의 아들을 살리실 때에도 그녀의 외아들로 묘사하여 주님께서 곤경에 처한 자기 백성을 돕는 분으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 제자들에게 병든 아들을 데리고 와서 고쳐주기를 간구함.

 

주님께서는 세 제자들과 함께 변화산에 올라가셨습니다. 거기에서 해 보다 더 빛난 영광으로 자신을 나타내셨습니다. 이처럼 영광을 나타내심을 통하여 자신은 하나님과 영원한 사랑의 교제관계에 있는 아들이며 만민이 복종해야 할 권세 있는 아들이심을 증거 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아들의 영광을 높은 산에서 나타내셨을 때에 산 밑의 나머지 제자들은 많은 고통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가복음에서는 산 밑에서 제자들이 주님께서 이스라엘의 구원자인지에 대하여 서기관들과 논쟁을 하고 있었으며(막 9:14-29) 한 사람이 병든 아들을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지만 제자들은 능히 고치지 못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구약의 시내산 사건과 비교하면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 32장에 보면 언약의 중보자인 모세는 하나님의 영광 앞으로 나아갔고 아론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산 밑에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산에서 내려오는 것이 더디었기 때문에 산 밑에 있는 아론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믿음에서 떠나 있었습니다. 그들은 금송아지를 만들고 "이 분이 우리를 애굽에서 건져낸 여호와이다"고 하여 금송아지를 하나님으로 변질시켜서 섬겼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을 인도했던 모세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모세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영광을 보고 언약의 말씀을 받는 동안 산 밑에 있는 아론과 백성들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서 떠나 있었습니다. 특히 아론과 같은 지도자는 백성들을 지도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들과 함께 믿음에 서지 못하였습니다. 이러한 출애굽기의 상황처럼 산 밑에 있는 나머지 제자들은 주님을 믿는 믿음에 서지 못하여 귀신들려 벙어리된 사람을 고치지 못하였습니다. 마치 아론이 아무런 능력이 없이 백성들과 하나가 되어 버린 것처럼 나머지 제자들은 주님께 대한 온전한 믿음을 가지 못하여 주님께서 그들에게 위탁하신 권세있는 직무를 수행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셨는데(마 10:1) 제자들은 믿음에 바로 서지 못하여 이러한 권세를 행사하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믿음은 구원을 얻는 믿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주신 권세를 행하는 믿음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의 믿음 없음을 책망하심.

 

주님께서 산에서 내려오자 무리들이 깜짝 놀라며 달려왔습니다. 그들은 제자들이 병자들을 고치지 못하였으니 직접 고쳐달라고 구하였습니다. 이에 주님께서는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참으리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주님께서 변화산에 계셨을 때 산 밑의 상황은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의 모습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산 밑의 백성들 가운데 두셨으나 제자들은 주님을 그들의 구원자로 온전히 믿지 못하고 그들에게 주신 권세를 행사하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서기관들과 논쟁을 벌였으면서도 믿지 안했습니다.

 

변화산에서 주님께서는 세 제자들에게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기 전에는 본 것을 말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부활하심을 통해서 그 영광에 들어갈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주님께서는 사람의 몸을 입으셨던 공생애 기간 동안에는 항상 제자들이나 백성들과 함께 계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처럼 주님께서는 친히 자신의 권세를 말씀과 행하심으로 증거 하셨으며 자신의 권세를 제자들에게 위탁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그 사실을 믿지 못하였기 때문에 "내가 얼마나 너희를 오래 참으며 너희와 함께 있겠느냐 너희들은 왜 그렇게 믿음이 없느냐"고 책망하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말씀하시기를 "이것은 너희들의 믿음이 적은 연고이다. 믿음이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절로 옮길 수 있을 것이며 못할 것이 없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주님께서는 지극히 작은 것과 지극히 크고 요동치 않는 것을 대비하십니다. 그러면서 지극히 작은 믿음만 있어도 큰일을 행하리라고 하시면서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고 다시금 강조하고 계십니다. 이러한 주님의 말씀은 비유법이라기보다는 아주 작은 믿음만 있어도 큰일을 할 수 있다는 강조적인 표현법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병자를 고치지 못하는 원인을 물었을 때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어도 그러한 권세를 행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을 전도자로 파견하셨을 때에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아들로서 자신의 권능을 제자들에게 위임하여 잃어버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내셔서 그 나라를 설립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주님께서는 자신의 나라인 천국을 설립하는 일에 있어서 제자들을 동역자로 세우셔서 그들로 하여금 봉사케 하셨습니다. 이처럼 마태는 천국의 봉사자인 제자들의 권세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모든 성도에게 적용되는 말씀입니까? 이 말씀은 열두 제자들에게만 주신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10장에서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권세를 주셨을 때에도 열두 제자들에게만 주신 것이며 다른 이에게는 허락하신 것이 아닙니다. 이처럼 열두 제자는 천국의 기초로 세우셨습니다.(엡 2:20)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하셨으며 오순절에는 120명의 성도들이 성령 충만을 입었지만 하나님 나라를 권세 있게 증거하고 권세를 행한 사람들은 사도들이었습니다. 죽은 자와 병든 자를 살린 사람들도 베드로와 바울이었습니다.

 

이 말씀을 어떻게 적용해야 하겠습니까? 이것은 분명히 열두 제자들에게만 제한된 말씀입니다. 산 위에서 내려오신 주님께서는 제자들이 믿음에 서지 못함을 책망하셨습니다. 이러한 말씀을 통하여 "내가 너희에게 이 권세를 주었기 때문에 너희들이 믿음이 있으면 이 권세를 시행해야 되지 않겠는가? 내가 가면 어찌하려느냐? 너희들은 믿음으로 굳게 서도록 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아버지로부터 받으시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주셨으니 너희는 가서 천하 만민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영으로 세례를 베풀고 제자를 삼아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아버지의 말씀으로 자기 백성들을 깨끗케 하신 것처럼 제자들에게 아버지와 아들과 영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는 권세를 주신 것입니다. 이처럼 열두 제자들은 새 시대를 여는 새로운 기초가 되었습니다. 제자들을 기초로 하여 세워진 교회는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하늘의 권세가 주어져 있는 교회입니다.

 

구약교회이었던 이스라엘은 죽음의 권세 아래에서 멸망하였습니다. 그들은 죽음을 이기는 권세 아래에서 살지 못하였습니다. 이 모든 날 마지막에 하나님의 독생하신 아들께서 사람으로 오셔서 하늘에 속한 권세를 나타내셨고 그 영광을 아버지로부터 받았습니다. 그리고 부활로 말미암아 영광의 자리에 들어가셨습니다. 부활 후에는 제자들을 부르셔서 권세 있는 사도로 파송하셨습니다. 이것이 신약교회 곧 우리가 서있는 권세 있는 토대입니다.

 

이제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사도시대가 끝나서 교회의 기초를 놓을 사도가 없습니다. 사도와 같은 권세를 시행할 자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시내산에 강림하셨을 때에는 불과 연기 가운데서 나타나셨지만 성소에 임재 해 계실 때에는 이러한 모습으로 계시지 않았습니다. 모세를 통해서 원수와 싸우실 때에는 큰 권세를 나타내셨지만 아들을 통해서는 그러한 권세로 행사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구원역사를 단계적으로 시작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참된 구원과 은혜의 일을 드러내셨습니다. 그 이후의 시대에는 그 구원과 은혜의 일이 풍성히 누려지는 시대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주님께서는 큰 권세를 나타내셨으며 그러한 권세를 제자들에게 주셔서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부활하신 후에는 그의 영으로 사도들을 통하여 자신의 교회를 세우신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들을 통해서 교회가 설립된 후에는 사도시대에 있었던 것과 같은 은사가 반복되게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은사자들을 통하여 교회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게 하시지만 사도와 같은 권세를 나타내시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여, 우리들은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권세의 보좌 우편에 앉아 있습니다. 우리들은 복음의 권세를 따라 하늘에 속한 백성을 짓는 새로운 창조의 일에 부르심을 입었습니다. 우리가 부르심을 받은 것은 주님의 나라 백성을 봉사하고 섬기는 일에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교회를 복음을 증거하는 기관으로 세우셨습니다. 사도와 같은 권세는 아니지만 교회는 부활하신 주님의 권세에 봉사하도록 부르심을 입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들과 같은 권세를 위임받지 못했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하늘에 속한 권세 있는 교회로서 그리고 주님의 형제로 주의 권세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만민을 제자 삼으라는 권세를 교회에게 허락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사도적 복음을 증거 하면 만민이 주님 앞에 돌아올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응답하실 것입니다. 병자를 위하여 기도한다면 의사를 통해서 고치시기도 하지만 직접 고치시기도 할 것입니다. 우리가 맹목적인 은사들을 거부하는 것은 성경에 있는 대로 계속해서 반복된다고 하는 주장 때문입니다. 그것은 사도시대에 있는 탁월한 은사이며 지금 교회시대에는 사도시대의 은사가 반복되지 않기 때문에 분별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긍휼히 여기십니다. 우리는 복음증거를 통해서 주님을 알았습니다. 이처럼 주님이 증거 되는 곳에는 어두움의 권세는 물러 갈 뿐 아니라 주님이 증거 되는 곳에는 병이 낫는 것보다 더 큰 권세의 역사 즉 주님의 영으로 사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 권세가 나타날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에 굳게 서서 우리 모두는 주님의 교회를 봉사해야 할 것입니다.

 

/하늘에 속한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