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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잘 쓰려면 / 이원구

대구해송 2017. 2. 6. 06:55


1. 시의 분위기 만들기

분위기란 그 자리에 조성된 상태나 기분이다

시의 분위기는 각 시인들의 개성과 기질 , 그리고 시에 조성된 감정이나 정서에 달린 것 같다

여성적인<진달래꽃>은 서러운 아름다움, 망국의 슬픔을 담은<별 헤는 밤>에는 쓸쓸함과 그리움, 자아도취적인

<사슴>은 고고한 외로움, 남성적이고 지사적인<광야>는 호방함과 열정, 투사적이고 구도적인<님의 침묵>은 강열한 격정과 애정이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시인마다 독특한 개성으로 어떤 스타일을 창조 하였는데, 한 시인의 여러 시들에서 서로 다른 분위기가 조성되는것도 엿볼 수 있다

가령 한용운 시인의 <님의 침묵>은 격렬하고 거센 슬픔이 터지지만, <나룻배와 행인>은 가벼운 서러움, <알 수 없어요>는 절제된 자연에 대한 관조를 보여준다


중요한 것은 시의 분위기가 시인의 감정이나 정서말고, 시간과 공간적인 배경으로 조성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즉>봄 여름 가을 겨울 같은 계절, 눈 비 바람 서리 같은 기후, 새벽 낮 밤 황혼 같은 시간배경, 그리고 도시 아파트 골목길  옥탑방 시골 보리밭 고추밭 강 산 언덕 등의 공간배경이 시에 들어가면 훨씬 시가 형상적이고 구체적이고 현실적이 되며, 의외로 쉽게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다


예컨데 <진달래꽃>은 봄의 산, <별 헤는 밤>은 가을의 무덤가, <사슴>은 산 속 물가, <광야>는 겨울 들판, <님의 침묵>은

여름 푸른 산이 그렇다


다음은 나의 졸작 <그러나> 와 <거미>의 분위기를 비교하고 시의 <구성>을 생각해 보자



그러나 / 이원구


어느 날 갑자기 가을비가 내리고

낙엽이 우수수 휩쓸려 갈 때


우리가 버려 두었던

바바리 코트가 그리워 질 때


찬 바람이 소매속으로 파고들어

따뜻한 난로와 정다운 사람들이 그리워 질 때


그리고

우리가 늙는 것을 깨달았을 때,


양지쪽에 앉아

남은 햇살을 그리워하며

죽어간 친구가 측은하고 불쌍해 질 때


우리가 보살피지 않은 것들이

벌써 잊혀진 산 너머 그늘진 곳에서


우리를 반갑게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이

불현듯 스치고 지나갈 때


그대 무명지에 낀 반지

보석의 그 슬픈 약속을 기억할 때



거미/이원구


거미는 3억 4천만 년 전에 비하여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


죽어야 한다


그러나

그 험상궂은 거미가 그리도 예쁜 눈을 감추고 있는 줄은

몰랐다눈으로 말하는 것을 보았다 나는 홀려

거미 속으로 들어가 거미 눈이 되었다 눈만 남았다떠도는

혼처럼


죽어야 한다


함정이었다 밤이면

내려와 상처난 가슴에 알을 깠다 다 파먹고, 제 어미

의 밤도 다 까먹은수천수백마리의거미새끼들이


그리워 질 때 기어 나왔다 기어 다녔다, 음모였다


나는 소스라치게놀라굶주려 서로 싸우는거미새끼들을

밟아죽였다닥치는대로


피 묻은 거미를 밟아 죽였다


꿈은 3억 4천만 년이 지나도 그다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슬픔도, 웬사내가

거미줄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웃는다


<그러나>는 쓸쓸하고 허무한 분위기, <거미>는 꽤 복잡하지만 격렬하고 절망적인 분위기다. 하지만 모두 사랑과 죽음에

얽힌 이야기다.

검은 색과 흰색은 서로 대조가 될 때 강조되듯이 사랑과 죽음도 마찬가지다

<그러나>의 결말에서 보듯 죽음이란 결혼반지처럼 또 다른 약속이 아닐까?

<거미>도 유혹당하여 사랑하다 끝내 그 거미줄에 붙잡혀서 죽어가는 어떤 사내의 이야기지만<거미>는  함축성이 강하다

거미는 우리를 미치게 하지만 결국 억압하고 자유를 빼앗는 것들, 그러니까 사랑 돈 권력이나 명예를 상징한다

현실적으로 왕처럼 군림하는 대통령 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면 거미새끼들은 자연스럽게 촛불집회에 반대하는 이익집단들이나 불쌍한 전투경찰일 수 있다


2. 시의 구성 (시를 구성하기)

모든 구성원리는 3단계다. 처음 - 중간 - 끝

소설은 이 단계중에서 중간부분을 세분화하여<전개 - 위기 - 절정 - 전환>으로 나누었다

<시>도 중간을 변화시켜 <기 - 승 - 전 - 결>로 만들었다


구체적으로 보면

<기>는 일어날 기 이므로 <발단>

<승>은 이을승 이므로 <전개>

<전>은 바꿀전이므로 <전환>

<결>은 맺을 결이므로 <결말>이다


이 4단계구성은 한시의<절구>가 잘 보여주는데 당나라때 유명한 시인 두보의 구성법과 표현법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즉> 구성에 따라 시상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관찰해 보자


<절구>--강물이 푸르니


강물이 짙푸르니, 새 더욱 희고 - - - - - - - -기(자연의 아름다움)

산이 푸르니, 꽃은 불타듯 하네 - - - - - - - -승(발전적으로 봄을 예찬함)

이 봄도 이렇게 또 지나가는데 - - - - - - - - 전(인생부상으로 시상 전환함)

고향에 돌아갈 날 그 언제인가 - - - - - - - --결(주제인 향수와 시대배경)



달밤의 아우생각 / 두보


수루 북소리에 사람 왕래 끊어지고

변경의 가을 밤 외기러기 울고가네

오늘밤은 이슬도 희다는 절기 백로

저 달은 고향에도 환히 비취겠지


동생들은 있어도 여기저기 흩어져

생사조차 물어 볼 집이 없으니

편지는 부치지만 언제나 닿게 될지

더욱이 전쟁은 끝 날 줄을 모르니


<율시>는 절구를 2배 늘려 <8구체>로 만든 것인데 두보의<달밤의 아우 생각>은

 4구 까지는 가을달밤의 묘사, 5구 부터는 아우와 전쟁이야기다


과거 우리 선비들도 당나라의 시인 두보와 이백을 모범으로 하였고 현대 시인들도 이런 4단계 구성법을 기본으로하여 변화시켰다.

4단계 구성법을 잘 보여주는 서정주의<국화 옆에서>를 보자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기(봄 소쩍새의 울음)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승(더 발전된 여름, 천둥,울음)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든         전환(중년의 누님과 가을 국화의 동일화)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 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결말(만상의 조화와 감응--소쩍새와 천둥, 국화꽃과 누님, 나의 잠과 무서리)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긴 시는 4연이 훨씬 넘잖아요?

그것은 적절히 <전개>부분을 잘 활용하면 된다

<전환>부분에서 시인의 천재성이 드러나는데, 그건 스스로 오랜기간 고민하여 발견할 수 밖에 없다

만상을 동일화할 수 있는 은유의 활용이 답이다

두 사물의 내적인 연관성을 탐구하고 통찰하면 가능하다

(가령, 재봉틀과 우산은 해부학적으로 닮았다고 하는 것이 그 예다)???


한 편의 시를 쓰기 위해 시인은 수많은 밤을 죽인다


다빈치는 모나리자를 한 번에 그린 것이 아니라, 줄을 때까지 지니고 다니면서 고치고 또 고쳐서 그 영원한 미소를 빚어냈다고 한다

그래서 그를 화성, 그림의 성인이라고 부른다


베토벤은 귀머거리가 된 뒤에 유명한 그의 교향곡을 작곡했다

그래서 그를 악성, 음악의 성인으로 부른다


인간을 극복한 예술가 들이 아닌가?


그래서 시인은, 한편의 시를 쓰기 위해 수없는 밤을 지새운다

자기 시가 장황하거나, 밑도 끝도 없이 길어지고, 괜히 화려한 느낌이 드는 것은 바로 이 구성법에 소홀하기 때문일 가능성이 많으니, 자기 시를 잘 응시하고 잘라내고 압축해 주기를 바란다



3. 시의 心象 만들기1 - 회화성

예전에는 인간의 마음은 가슴에 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마음의 활동이 두뇌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술의 창작과 그 감상도 두뇌활동, 즉 심리활동중의 하나다. 그런데 심리학에서 인간은 외적인 자극과는 관계없이 과거의 경험으로 부터 구체적이고 감각적으로 마음속에 재생되는 상이 있다고 한다

이 상을 心象(=이미지)이라고 한다. 예컨데 눈을 감고 잇어도 보이는 어머니 모습 같은 것이다


시에서< 心象>은 매우 중요하다

심리학 과는 달리< 詩>에서 <心象>이란 <단어들로 만들어진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그림은 빛깔 모양 소리 냄새 맛 촉감 등 다양한 감각성을 특징으로 한다

이 그림들이 시를 읽는 독자들의 마음에 영향을 주어 어떤 다른 그림, 즉 다른 영상을 만들어 낸다

물론 심리적으로 과거의 경험과 결합된 연상일 것이다


그러면< 詩>의 <心象>을 어떻게 표현할까?


<心象>은 넓은 의미로 한 편의 詩 속에  언급된  모든 사물과 그 사물의 속성, 즉 특징이나 성질을 뜻하는데 

心象은 주로 직접묘사나 직유와 은유에 사용된 매체(보조관념--도와주는 생각, 혹은 상관물--로 닮은 =객관적 상관물)들을 통해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예컨데 한용운의 <알 수 없어요>를 보면, 이 詩는 

전체적으로 은유를 기본 골격으로 시를 구성하고 있다

즉 오동잎, 하늘, 향기, 시내, 저녁놀-(을)- 님의 발자취, 얼굴, 입김, 노래,시- (라는)- 매체(보조관념=객관적상관물)로 표현하고 마지막에는 나의 가슴을 등불로 비유하였다

한마디로 은유를 사용하여 자연현상을 님과 동일화 하였다

님은 함축적이어서 애인, 조국, 부처, 범신론적인 진리나 신을 연상케 한다


이 시는 은유외에도<연꽃같은 팔꿈치><옥같은 손>이란 직유도 사용하고, 각 행마다 등장하는 여러 사물들--오동잎, 하늘, 시내, 향기, 저녁놀-등의 특징이나 성질도 상당히 자세하게 화가가  그림그리듯 직접 묘사적으로 표현한 것을 알 수 있다


<알 수 없어요>에서 살펴 본 것처럼 현대의 시 비평에선 <윤율>과 함께 시의 본질적 요소로서 <心象>을 대단히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데 , 결국 <心象>은 주로 <비유언어>, 특히 <은유> 와 <직유>를 통해 만들어지고 잇다고 볼 수 있다


그러면 이제 <心象의 회화성>에 대해서 알아보자

앞서 근대의 자유시는 그림을 동경하여 시각성을 중요시 한다고 했다

대표적인 운동이 1910년대 영미에서 유행했던 이미지즘(=心象주의)

이 운동의 대표주자인<에즈라 파운드> 는 시각적인 心象을 중시하면서 다음과 같이 시의 방향을 제시했다 


"흐리멍텅하고, 깔끔하지 못하고, 감상주의적인 틀에 박힌 詩, 진부한 재래의 소재와 운율법을-(버리고)- 일상적인 언어로 표현하되

단단하고, 분명하고, 응축된 心象을 제시하자"고 주장했다.


이들에게 큰 영향을 준 <T.E.흄>- 의- <가을>을 보면, 詩가 한포기 그림이나 조각처럼 선명하게 묘사된 것을 알 수 있고, 이미지즘의 이상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잇게 한다


가을 / T.E.흄

가을밤의 싸늘한 감촉-

나는 밤을 거닐었다

얼굴이 빨간 농부처럼

불그레한 달이 울타리 너머로 굽어보고 있었다

나는 말을 걸지 않고 그개만 끄덕였다

도회지 아이들 같이 흰 얼굴로

별들은 생각에 잠기고 있었다


그런데 이미지스트(=심상주의자)들은 중국의 한자에 대해서 대단한 관심을 가졌다

그것은 한자가 상형문자로서 사물의 특징을 추상한 일종의 그림이었기 때문이다

즉, 이미지스트들이 추구하는 이상적인 그림같은 시와 통하는 글자였던 것이다

예컨데 <日은 해><月은 달><山은 산><川은 내><人은 사람>의 모양을 본떴는데, 글자 자체가 바로 상형(=모양), 곧 그림이지 않느냐?


백로 / 이백


가을 물 보고

백로가 내려 와서


마치 흰 서리 날리듯

내려 와서


마음 한가함인가

얼마동안 가지않고


물가 모래 위에

홀로 서 있다


보리베는 노래 / 이달


시골집의 젊은 아낙은

저녁거리가 없어서

빗속에 나가 보리를 베어

숲 속으로 돌아오네

생나무는 축축해서

불길은 일지 않는데,

문에 들어서니 어린애들은

옷자락을 잡으며 우는구나


이처럼 현대에 이밎, 즉 心象을 중시한 것은 운율을 중시하던<읽는 詩>의 전통에서 벗어나 <보는詩>, 즉 시각에 의존하려는 경향이라고 볼 수 있다. 1930년대의 김광균, 정지용, 김기림, 장만영등이 시각성이 풍부한 詩를 썼다


추일서정/김광균

가을날 도시의 서정을 은유와 직유, 그리고 묘사를 중심으로 시각성이 선명하게 회화적으로 표현한 이 시는 당시에 퍽 현대적이였다


김기림도 감상적 낭만주의와 지나친 목적의식이나 관념의 노출을 반대하고 시의 회화성과 감각성을 강조하는 주지적인 시를 즐겨 썼다

바다와 나비 / 김기림


하지만 주지적인 현대성은 천재시인< 이상>에 와서 절정을 이룬다

당시엔 대단히 난해한 장시로 띄어쓰기조차 않았다

<오감도>는 그 당시 조선의 절망적인 상황을 암시한 시였다


향토적인 시인 박목월도 1940년대의 불행한 식민지 시대의 피폐상을 <윤시월>로 썼다

<윤시월>은 운율로 좋지만, 시가 동양화 같은 회화적인 서정시 임을 알 수 있다


동짓달 기나긴 밤의 한허리 버혀내어

춘풍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이룬님 오시는 밤이어드란 굽이굽이 펴리라


<황진이>의 이 시조도 은유 사용이 능숙하다

<동짓달 기나긴 밤의 허리><춘풍이불>이 바로 은유다.

뿐만 아니라 그 은유의 내적인 연관성이 놀랍도록 유기적이다

곧<긴밤과 허리><봄바람 과 따스한 이불><몸이 언 님과의 사랑과 밤>이 그것이다

즉, 心象들이 서로 연결되어 정교하게 펼쳐졌음을 느낄 수 있다


이육사의<청포도>도 운율도 좋지만 心象이 그림처럼 선명해 아주 회화적이다


그 외에도 윤동주<자화상> 김현승<플라터너스> 김수영<풀> 신동엽<종로 5가> 조지훈<승무> 정지용<바다> 노천명<사슴>

변영노<논개> 이용악<전라도 가시내> 박노해<이불을 꿰매며> 신경림<목계장터> 고은<만인보>가 있다


결국 현대시가  心象에 무게를 싣는다는 것은 시를 음악보다 그림이나 조각쪽으로 기울게 하는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



4.시의 心象만들기2- 음악성과 상징주의

예술은 그 표현수단이 서로 다르다

춤은 몸으로, 그림은 선과 색깔로, 음악은 소리로, 시는 언어로 표현한다

특히 <시>는 <언어미>가 생명이다


인간은 세상에 대한 인식을 먼저 감각으로 한다

곧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코로 냄새를 맡으며, 손으로 만지고, 혀로 맛보며 사물과 현상을 판단한다

감각은 다섯가지로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미각인데 그 외에 촉(=육감)이 있디고 하지요

본능같은 육감이 제 6의 감각인 셈이다


시각성이강조된 시 = 박목월의 <나그네>


시각, 청각이 강조된 시 = 한하운의<파랑새>


정지용의<향수>에서도 금빛 게으른 울음 우는 곳 이라 하여 <금빛 게으른 울음>에서

시각과 청각이 교묘히 연결되어 색다른 心象을 만든다 


그런데 이처럼 신선한 心象을 빚어내는 공감각을 사용한 사람은 프랑스의 천재시인 랭보의 <母音>에서 훨씬 더 잘 볼 수 있다

다섯개의 모음들을 시각으로 표현하거나 청각으로 표현했다

아주 난해한 詩지만 예민한 감각을 느끼게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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