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세 가지 사랑에 관하여

대구해송 2016. 5. 3. 07:02

사람과 사랑이 받침 하나 차이라는 걸 문득 알게됩니다. 각진 미음을 둥근 이응으로 바꾸기만 하면 모든 사람이 사랑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문득 하게됩니다. 우리에게는 각진 마음이 있고 둥글어지는 마음이 있습니다. 둘 다 필요한 마음이되, 사랑에는 뒤엣것이 더 필요한가 봅니다. 인사동의 어느 찻집에서 차를 마시면서, 한 벗이 하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폐칩(閉蟄)의 곤한 날들이라 그런지, 그게 귀에 음악처럼 곱게 들어와 앉습니다.



- 사랑에는 세 가지가 있어.

- 사랑은 한 가지 아닌가. 어떻게 세 가지나 될 수 있어?

- 물론 사랑의 본질은 하나이겠지만, 그것의 양상이 다르게 나타난다는 뜻이지.

- 어떻게?

- 음. 그러니까...



이렇게 시작된 대화였습니다. 벗의 이야기는 이랬습니다.



“사랑에는 알아주는 사랑, 안아주는 사랑, 그리고 앓아주는 사랑이 있어.





알아주는 사랑은 한 사람의 존재감에 대한 발견이라 할 수 있어. 그러니까, 잘 생기고 성격 좋고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을 좋아하는 건, 대개 사랑이 아니라는 거지. 잘 생김이나 성격 좋음이나 가진 것 많음 만을 좋아하는 것일 뿐이지. 알아주는 사랑은 모자라는 것도 있고 흠도 있고 문제도 있는 바로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거야. 모자람과 흠과 문제까지도 다 사랑의 대상인 거지. 바로 그 사람을 거기 둔 채로, 다만 가만히 바라보며 좋은 마음을 키우는 일, 그게 알아주는 사랑이야. 그 사람을 그저 속속 들이 알아가기만 해도, 깊이 따뜻해져오는 그런 사랑이야. 세상이 뿜어내는 부질없는 오해와 편견들로부터 그 한 사람을 오롯이 지켜주고 싶은 그 마음이야. 제 몸뚱이 속에 갇혀 평생 에고이스트로 살아가게 되어 있는 인간에게 닥쳐온, 타자에 대한 시선의 혁명. 타인의 발견, 타인을 알아가는 일의 더할 나위없는 행복. 그 기적이 바로, 알아주는 사랑이지.




안아주는 사랑은 한 사람의 문제에 대한 태도라 할 수 있지. 우리는 대개 자신에게 관대하지만 남에게는 엄격하고 인색하기 쉽지. 자신의 문제에 대해선 용서할 준비가 되어 있지만 타인의 문제에 대해선 우선 따지고 싶어지지. 안아주는 사랑은, 상대의 문제를 그냥 다 받아들여버리는 거야. 문제를 따지고 그 문제에 대해 미워하거나 성내는 일은, 나와 상대가 다른 몸이며 다른 존재라는 걸 의식하고 있기 때문인 거야. 나와 상대가 사랑 속에 들어있는 한 존재라는 걸 생각하는 사람은 저 ‘안아주는 사랑’을 하는 거야. 온 세상이 다 그를 기소해도, 안아주는 사랑을 하는 사람은 그를 감싸게 되어 있어. 그건 용서와는 다른 거야. 용서는 ‘죄’를 인정하지만 눈감아주는 것이고, ‘안아주는 사랑’은 그냥, 나 스스로에 대해 변명을 발명하듯 다 품어버리는 일이야. 내 편, 남 편으로 나누는 게 아니라, 언제나 내 편인 것이 안아주는 사랑이야.




앓아주는 사랑은 한 사람의 상처에 대한 태도라 할 수 있어. 상처받지 않고 통과하는 삶이 있을까. 상처없이 지나가는 존재가 있을까. 상대방이 상처를 입었을 때, 우린 중요한 사실을 발견해. 아, 저 사람은 내가 아니구나. 아무리 내가 저 사람을 사랑한다고 말해도, 저 사람의 상처가 내게 바로 아픔이 되는 건 아니구나. 저 사람의 상처를 내게 옮겨와 그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건 아니구나. 우린 뚜렷이 둘로 나뉘어져 있는 개체일 뿐이구나. 사랑이란 그저 존재와 존재 사이의 틈을 얼버무리는 미화(美化)일 뿐이구나. 앓아주는 사랑은, 그런 한계와 그런 절망을 이겨내는 사랑이야. 상대의 아픔을 깊이 앓을 수 있는 마음. 아픔을 공유하는 그것이야 말로 나와 그를 하나의 운명공동체로 결합하는 핵심이라 할 수 있어. 네가 아프면 나도 아프다. 아픔을 들여다보는 아픔이, 두 사람 사이에 그립고 아프게 유통되는 그것이야 말로 사랑의 완성태같은 것이란 얘기지. 자비(慈悲)라는 말은 사랑과 슬픔이란 말이 서로 붙어있잖아. 사랑하기에 사랑하는 이의 고통을 바라보는 슬픔이 더욱 깊고 절실한 것. 그게 앓아주는 사랑이란 거야.”




흥미로운 얘기였습니다. 알아주는 사랑, 안아주는 사랑, 앓아주는 사랑!

그때 나는 문득 소리쳤습니다.

“그런 사랑의 원형(原型)은 바로 어머니잖아? 자기 자식의 이쁘고 미운 것 모두를 알아주는 사랑, 자식의 잘못을 그저 보듬고 잘 되기만을 빌어주는 사랑, 자식이 아프고 슬프면 온몸으로 아파하고 슬퍼하는 사랑.”




그는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린, 어머니에게서 받은 그 마음을 무의식에 저장해놨다가 평생 그걸 찾아다니는 것인지도 모르지. 사랑이란, 어쩌면 그때 받은 것을 타자에게 되돌리려는 존재 본연의 보은(報恩)인지도 모르겠네.”



그렇게 말하고, 우린 침묵하면서 가만히 차를 들이켰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