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

밥맛 없는 세상, 식욕 부를 반찬 가득(광양)

대구해송 2014. 5. 20.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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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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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닷컴]

한식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밥과 반찬으로 구성되었다는 점이다. 밥과 반찬은 마치 주종관계 같다. 식사의 주인공인 밥을 수월하게 먹기 위해 간기 있는 반찬이 뒤따르는 격이다. 별다른 맛이 없는 싱거운 밥을 맛나게 먹으려면 반찬이 맛있어야 한다. 과거에 반찬은 단지 짠맛을 내어 밥의 싱거움을 보강하는 조연이었지만 지금은 다채로운 맛과 재료로 식탁을 풍성하게 만드는 주연의 지위로 격상되고 있다. 밥상의 표정이자 밥맛의 호불호를 판가름내는 반찬, 요즘에는 이 반찬 전문점도 크게 늘었다. 그러나 재료와 조리과정에 대한 불신 때문에 맘 놓고 구매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요리연구가이자 광양의 향토음식전문가인 오정숙(45) 씨가 운영하는 <반찬까페 봄날>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이웃과 소통하고 싶어하는 요리연구가의 건강한 반찬


카페 안으로 들어서자 쾌적함이 제일 먼저 느껴졌다. 광양이란 도시가 본래 빛과 볕의 도시이긴 하지만 실내 깊숙이 들어오는 햇볕이 포근하고 따뜻했다. 올 들어 가장 추운 날이라고 방송에서 호들갑을 떨었다. 그래도 카페 안은 골고루 퍼진 햇살로 화사했다. 게다가 정면의 활짝 핀 매화나무 벽화와 봄 처녀가 실내를 언제나 봄날로 유지시켜준다.

공간의 한 쪽에는 반찬들을 진열하고 보관하는 냉장고가 있고, 한 쪽에는 편하게 앉아 커피나 차를 마실 수 있는 테이블이 자릴 잡았다. 위생적이고 청결한 반찬 보관용 냉장고가 ㄷ 자형으로 정갈하게 놓여있다. 반찬 냄새나 어수선한 진열대를 떠올렸는데 전혀 다른 모습이다. '카페'라는 상호처럼 반찬 사러 왔다가 이웃과 함께 담소를 나누고 차도 한 잔 마실 수 있도록 꾸몄다. 단골고객 사이에선 이 동네의 마을방 구실을 톡톡히 해낸다. 시장이나 시내 중심지가 아닌, 고즈넉한 주택가에 이 집이 자리잡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반찬까페 봄날>의 주인장 오정숙 씨는 어려서부터 음식 만드는 일이 재미있고 즐거웠다. 10년 넘게 전남 광양의 향토음식연구 모임인 '우리음식연구회'에서 한식과 향토음식을 연구했다. 그리고 지금은 이 단체를 이끌 차기 회장에 선출되었다. 오씨가 연구한 음식 가운데 백김치 양념장은 2010년 7월에 특허를 받았다. 그녀는 체계적 음식 연구를 위해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지금은 '백김치'를 주제로 한 박사학위 논문을 마무리하고 있다.

2010년 한국국제요리경연대회 금상 외에 수 차례의 요리대회 수상 경력이 오씨의 뛰어난 조리 실력을 말해준다. 그녀의 솜씨는 '6시 내고향' '아침마당' '생방송 오늘' '싱싱 일요일' '모닝 와이드' '생방송 세상의 아침' 등 각종 공중파 방송 프로그램에서 다양하게 소개된 바 있다. 'VJ특공대'에서는 현대판 대장금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최근에는 서영대학교를 비롯, 조리고교나 여성문화센터, 농업기술센터 등 여러 조리관련 교육기관에서 후진양성 활동과 밑반찬 창업, 전통 웰빙특선요리를 강의하고 있다.

화가에게 전시공간이 필요하듯, 작가가 발표할 지면을 갈망하듯 오씨도 자신의 반찬을 선보이고 대중과 교류할 공간이 절실했다. <반찬까페 봄날>은 2009년, 지역공동체 안에서 믿고 먹을 수 있는 반찬을 매개로 서로 즐겁게 소통하자는 취지로 오씨가 문을 열었다.

양질의 소금과 젓갈로 맛내고 조미료 넣지 않은 광양지방 맛


이 집의 반찬은 대부분 광양 인근의 지역 농수산물로 만든다. 광양은 예로부터 사계절 날씨가 온화하고 산과 강, 들판과 바다를 모두 끼고 있어 다양한 식재료가 풍부하다. 김치류에 들어가는 젓갈은 오씨가 손수 담근다. 멸치, 갈치, 조기, 쏙, 새우 등으로 담근 젓갈은 옥룡면 추산리 자택 토굴에서 5년을 발효시킨 것들이다. 반찬의 핵심 재료인 소금은 3년간 간수를 뺀 신안 산을 써, 음식에서 쓴맛이 나지 않는다.

오씨는 반찬에 화학조미료를 넣지 않는다. 그래서 단골 가운데 아토피나 암 환자, 채식주의자 고객이 많다. 음식에 들어가는 소스류도 직접 만든다. 시중에서 판매하는 덕용포장 소스를 사서 쓰면 싸고 간편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냉장고에 한 번 넣었다 다시 꺼내 먹어도 본래 맛이 그대로 살아있다'는 평을 듣는다.

오씨가 매일 아침 시장을 보고 오전 9시면 가게 문을 연다. 이때부터 조림, 김치, 절임, 장아찌 등 저장성 반찬을 제외한 당일 제품 반찬을 조리한다. 대개 국, 찌개, 무침, 나물, 튀김, 볶음, 부침, 구이 등이다. 취재가 있던 날 아침에는 서대조림, 굴무침, 김국, 잡채, 꼬막장, 냉이나물, 시금치나물, 취나물, 콩나물, 톳무침, 김국, 표고버섯볶음, 어묵 무침, 고사리나물 등이 조리실에서 맛있는 냄새를 풍겼다.

매일 바뀌는 일일 반찬 말고도 동치미, 고들빼기, 배추김치, 갓김치, 열무김치, 부추김치, 파김치, 깍두기 등의 김치류가 있고, 신선초, 마늘, 오이고추, 아삭이고추, 일반고추, 양파, 매실 등으로 담근 장아찌가 있으며, 진미채, 새우, 멸치, 쥐포 등의 무침, 김장아찌, 돼지고기와 소고기 장조림, 메추리알조림, 무말랭이, 연근조림, 콩자반, 파래무침, 생미역볶음 등의 찬류가 먹음직스럽게 진열되어 있었다.

이 가운데 서대조림, 김국, 꼬막장, 톳무침, 김장아찌 등은 광양 지방의 향토음식이기도 하다. 특히 고사리나물은 광양 백운산의 특산물로, 고사리의 본래 향과 식감이 그대로 살아있다.

반찬은 비닐 팩 포장으로 판매한다. 가격은 대개 3000원~5000원 정도이고, 장조림 등 고기류나 비싼 재료로 만든 것은 1만원씩 하는 것도 한다. 불리고 우리고 데치고 무치는 등 조리과정이 복잡하고 힘든 묵나물류가 가장 많이 나간다.

매장에는 보통 30여가지 반찬을 상시 구비하고 있다. 이 반찬 외에 고객 취향에 따라 특별히 주문해도 맞춤형으로 만들어준다. 돌잔치 집들이 등 행사음식이나 제례음식 또는 야유회 등에 필요한 단체 도시락도 주문 받는다. 단골 가운데 외지로 이사간 사람들의 요청에 따라 시작한 택배 판매도 지속하고 있다. 차츰 알음알음으로 이 집 반찬의 진가가 외부에 소문나면서 택배로 주문하는 고객이 점차 늘고 있다.

곰삭은 젓갈 닮은 주인장의 성품이 깊은 맛 내는 최고 비결


재미있는 것은 주변에서 이 집 반찬의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이 의외로 드물다는 점이다. 오씨는 서울의 방송가나 외부 조리 교육기관에서 오히려 더 유명하다. 단골손님들도 그녀가 여러 번 방송에 출연했거나 대학에서 후진을 양성하는 요리연구가라는 사실을 대개는 잘 모른다. 더구나 자신들이 먹는 반찬이 실력 있는 전문가가 정성껏 만든 반찬이라는 것도 알아채지 못한다.

이상하게 사람들은 자기 주변 인물의 진면목을 제대로 못 알아본다.

하긴 예수나 공자도 자기 동네 사람들로부터 진가를 그다지 인정받지 못했다. '목수네 집 아들 예수'나 '무당집 막둥이 공구' 정도로만 알고 있었을 것이다. 마치 김기덕 감독의 역량과 작품에 대해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열광하는 것처럼….

오정숙씨도 마찬가지다. 여기엔 오씨의 몸에 밴 겸손함과 담박한 성품도 한몫 거든다. 그녀는 결코 자기가 만든 요리와 조리법이 최고라고 우기지 않는다. 향수 바르고 분칠해서 남에게 그럴듯하게 내보이기 바쁜 것이 요즘 세태다. 다른 데 한눈 팔지 않고 그저 묵묵히 음식만 만드는 오씨의 모습이 오래 은근하게 익어가는 곰삭은 젓갈을 닮았다. 그녀의 음식이 깊은 맛을 내는 비밀은 아마도 이것이 아니었나 싶다.
<반찬까페 봄날> 전남 광양시 중동, 061-795-8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