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러는 잊힐지라도 / 이준호
더러는 잊힐지라도 서러워하지 말자
애초 우리네 머리 속은
하얀 고요함 뿐이었지 않은가
가끔씩 소중한 것들이
바람소리를 내며 떠나간다 해서
허전함에 울부짖지 말자
어쩌면 잊힌다는 것은
가슴 뛰도록 아름다운 일인지 모른다.
잊혀져 간다는 것은
한때 고이고이 뇌리에 사무쳐
몇 날 며칠을 소중한 것으로
살아있었다는 것이 아닌가
누군가의 가슴 속에
자그마한 열정으로 살아
한 떨기 가슴 벅찬 꽃으로 피었다가
뿌리 끝이 흔들리는 그런 날
가벼운 인사 몇 마디
눈빛으로 나누고는 살며시
그리움 두고 떠나올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누군가 기억하는 하늘이
마르고 시들 때면
잊히어도 괜찮다 하자
새까맣게 그을리고 부서져
더는 기억해내지 못할지라도
한때는 간절한 소망, 가슴에 끌어안듯
살았다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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