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예수

자기도취에서 벗어나기

대구해송 2022. 6. 10. 21:57
자기도취에서 벗어나기


 


▲김기석 목사 (청파교회)


잠긴 목을 풀어주려고 잠자리에 들기 전 꿀 한 스푼을 먹었다. 다음 날 아침, 탁자 위로 지난밤에 본 적이 없는 검은 줄 하나가 눈에 띄었다. 불을 켜고 보니 개미였다. 스푼과 덜 닫힌 꿀통을 개미가 점령하고 있었다. 작은 부주의가 만든 낯선, 그러나 있을 법한 풍경이었다. 개미 행렬이 처음부터 일직선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개미 떼는 꿀통과 개미집 사이의 최단거리를 발견했을 터이다.

생각해보면 사는 것도 마찬가지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한 걸음 한 걸음 종작없이 걷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삶의 지향이 생기고 생각의 결이 만들어진다. 의도적으로 선택하진 않았지만 상황의 요구에 응답하면서 형성된 입장도 있다.

어쩌면 ‘나’라고 하는 것은 타고난 바탕 위에 시간과 상황이 그려낸 무늬인지도 모르겠다. 그 무늬를 가장 잘 보는 사람은 본인이 아니라 다른 이들이다. 다른 이들 앞에 현전한 나의 모습은 그들에게는 해석을 위한 텍스트인 셈이다. 우리가 타인의 평가에 민감한 것은 그 때문이다.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조금 이름이 알려진 사람이 되자 불편한 일이 하나둘이 아니다. 공적인 자리에 선다는 것은 다른 이들의 시선을 견뎌야 한다는 말이다. 가끔 그 시선은 자유를 앗아간다. 우리를 향해 발화되는 말도 마찬가지이다.

비난의 말이든 상찬의 말이든, 타인들의 말에 민감해지는 순간 허위의식이 작동되기 쉽다. 진실을 찾는 여정 가운데서 외로움을 느끼는 이들이 다가올 때면 언제든 곁을 편하게 내줄 수 있지만, 과도한 기대와 열정을 가지고 다가오는 이들은 선뜻 맞아들이기 어렵다.

가끔 내게 존경심을 표현하는 이들이 있다. 그 마음을 고맙게 받지만 돌아서는 순간 나 자신에게 말한다. “너 알지. 네 실상을.” 존경받을 만한 것이 내게 없음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눈에 띄는 악행을 저지르지는 않았다 해도 우리 속에는 언제든 발화될 수 있는 악의 가능성이 있다. 거칠고 메마른 사막에 비가 내리자 모래 속에 숨어 때를 기다리던 씨앗들이 일제히 발아해 꽃이 피어난 광경을 본 적이 있다. 지금 우리가 다소 선한 것처럼 보인다면 악이 발화할 계기가 미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알기에 늘 조심스럽다.

성경은 끊임없이 우상숭배를 경계한다. ‘다른 신’은 밖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를 지배하는 다른 신이 있다. 자기를 크게 여기는 마음이다. 자기 찬미는 일종의 우상숭배다. 다른 어떤 유혹보다 매혹적이기에 더 위험하다.

어느 자리에 가든 지도자를 자처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의 언행은 당당하고 거침이 없다. 삼가거나 주저하는 태도를 찾아보기 어렵다. 자기 영향력이 크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순간 그의 논조는 권위적이 된다. 그는 확신에 차 있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가 진리에 가깝다고 말할 수는 없다.

“칭찬은 사람됨을 달아볼 수 있다”(잠 27:21)는 지혜자의 말은 얼마나 두려운 말인가. 칭찬을 당연한 것으로 수용하는 순간 영혼의 전락이 시작된다. 예수님은 “지도자라는 호칭을 듣지 말아라. 너희의 지도자는 그리스도 한 분뿐”(마 23:10)이라 하셨다.

루블린의 랍비 야코브 이츠학이 어느 날 제자들과 자기를 따르는 이들에게 말했다. “온 세계가 나서서 내가 참된 짜딕 즉 의로운 사람이라고 말한다 해도 나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설사 하늘의 천사들이 그 말을 되풀이한다 해도 나는 여전히 그 말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창조주께서-찬미 받으소서 주님- 내가 그렇다고 하신다면 나는 별수 없이 그분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단 일 분 동안만 그럴 것이다.”

가끔은 흔들려도 괜찮다. 다만 흔들리면서 지향을 잃지는 말아야 한다. 흔들리면서 정북을 가리키는 나침반처럼 우리는 푯대이신 그분을 가리켜 보이는 사람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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