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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마음 / 김현승

대구해송 2022. 5. 9. 21:15

바쁜 사람들도

굳센 사람들도

바람과 같던 사람들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어린 것들을 위하여

난로에 불을 피우고

그네에 작은 못을 박는 아버지가 된다.

저녁 바람에 문을 닫고

낙엽을 줍는 아버지가 된다.

세상이 시끄러우면

줄에 앉은 참새의 마음으로

아버지는 어린 것들의 앞날을 생각한다.

어린 것들은 아버지의 나라다 - 아버지의 동포(同胞)다.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

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이다.

아버지는 비록 영웅(英雄)이 될 수도 있지만······.

폭탄을 만드는 사람도

감옥을 지키던 사람도

술가게의 문을 닫는 사람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아버지의 때는 항상 씻김을 받는다.

어린 것들이 간직한 깨끗한 피로······.

시집 ≪절대 고독≫ (1970)

이 시는 아버지를 소재로 아버지의 가족에 대한 사랑과 희생과 고독을 잘 드러낸 시이다.

오래된 시인인데 지금 읽어도 아버지들이 느끼는 감정에 공감이 가는 시이다.

보통 어머니의 가족에 대한 사랑과 희생에 대한 시들은 많지만 이 시는 아버지의 가족에 대한 사랑과 희생 뿐만 아니라 가족에 대한 책임감으로 느껴야 하는 가장으로서의 고독과 외로움이 보인다.

화자는 차분하고도 담담한 어조로 이 땅의 아버지들이 어떤 존재인지 말해준다.

자식에 대한 사랑과 희생을 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집에 와서 자녀를 보며 힘든 고단함을 잊는 아버지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우리의 아버지들은 밖에서 힘들고 지쳐도 집에 와서는 자식에게 항상 슈퍼맨일 것 같은 모습만 보여줘야 한다.

그러면서 가장으로서 느끼는 고독이 있다.

가족에게 눈물을 보일 수 없고 마시는 술에 눈물이 절반인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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