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감나무 / 김복수
열두 칸 종갓집 툇마루 담장 곁에
먹감나무 한그루 담장을 베고 누워 지낸다
마루에는 먼지들이
서까래에는 거미들이 좌정한 큰사랑엔
꺼멓게 가슴이 썩어가는 먹감나무 한그루
앉아 있는 날보다 누워 지내는 날이 많다
그래도 먹감나무 이름은 어디 가랴?
잘 익은 홍시 서너 개 손에 들고
가을이면 신작로 길을 내다보기도 하는데
사랑방 먹감나무
간간이 누구를 찾는 것인지 부르는 것인지
기침소리 혼자 문을 들락거리고
그믐달 같은 그림자
기대고 산 세월 어찌 잊으랴
홍시 한 알 주워들고
~ 입맛을 다셔 봐요 ~
수저로 떠서 입에 넣어주며 부드러운 침을 삼키고
외로움이 쌓이고 쌓여
꺼멓게 굳어버린 먹감나무처럼
늙은 시인의 마지막 시 한 연처럼
저만큼
짧은 늦가을 해가 누구를 붙잡고 놓지 않는 것인가
'좋은글 좋은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 아버지와 아들의 실제 감동실화 (0) | 2018.09.09 |
---|---|
별 하나 / 나태주 (0) | 2018.09.09 |
가을엔 이렇게 살게 하소서 / 이해인 (0) | 2018.09.09 |
상처없는 생은 없다 / 황라현 (0) | 2018.09.09 |
그 강에 가고 싶다 / 김용택 (0) | 2018.09.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