턱 낮은 뒷문 하나 있으면 좋겠다 / 유승희
칠흑 같은 어둠이
까맣게 내려앉는 꺼멍 밤
동글동글 달빛 차르르 쏟아지면
그 옛날 꼬맹일 적
엄마가 가꾸신 예쁜 꽃동산
채송화, 백일홍, 맨드라미, 봉선화, 접시꽃, 분꽃, 다알리아
졸망졸망 고것들
납작 엎드려 소록소록 잠든 위로
달빛 차란차란 춤추는
평화로운 모습 볼 수 있으면 좋을
뒤란이 있는 턱 낮은 뒷문 하나 있으면 좋겠다
땡글땡글 볕 뜨거운 날
억새 발 하나 걸어놓고
얼음 동동 띄운 미숫가루
팔죽선 하나에
뒷동산 골짜기 바람 가슴팍 시원하니
긴긴 여름 너끈히 보낼 수 있는
턱 낮은 뒷문 하나 있으면 좋겠다
안개 비 부슬부슬 내리면
축축한 구들
메적지근 불 지피고
우거지 삶은 듯 떱떠름한 녹차 홀짝이며
뽀얀 안개 감실감실 산허리 감고 도는 멋들어진 정경에
그럴 듯한 시 한편 건져 올릴 수 있는
턱 낮은 뒷문 하나 있으면 좋겠다
뭐니뭐니해두
나 늙어
당신이랑
턱 낮은 뒷문이 있는
그런 집에서 살았음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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