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빛 / 마종기 내가 죽어서 물이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가끔 쓸쓸해집니다 산골짝 도랑물에 섞여 흘러내릴 때 그 작은 물소리를 들으면서 누가 내 목소리를 알아 들을까요 냇물에 섞인 나는 흐르면서 또 흐르면서 생전에 지은 죄를 조금씩 씻어내고 외로웠던 저녁 슬펐던 영혼들을 한 개씩 씻어 내다보면 결국에는 욕심 다 벗은 깨끗한 물이 될까요 정말로 깨끗한 물이 될 수 있다면 그때는 내가 당신을 부르겠습니다 당신은 그 물 속에 당신을 비춰 보여주세요 내 목소리를 귀담아 들어주세요 나는 허황스런 몸짓을 털어버리고 고백하겠습니다 당신은 그제서야 처음으로 내 온몸과 마음을 함께 가지게 될 것입니다 누가 누구를 송두리째 가진다는 뜻을 알 것 같습니다 부디 당신은 그 물을 떠서 손도 씻고 목도 축이세요 당신의 피곤했던 한 세월의 목마름도 조금은 가져가겠지요 그러면 나는 당신의 몸 안에서 당신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죽어서 물이 된 것이 전혀 쓸쓸한 일이 아닌 것을 비로소 알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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