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행하신 심방의 10가지 모습
예수님은 어떤 특정한 교회건물을 세우고서 목회를 한 것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목회를 했다. 예수님은 자신에게 찾아오게 하기보다는 직접 양들을 찾아 나섰고 개인적 만남으로 하나님 나라를 세워 나가셨다. 이리저리 직접 찾아다니면서 심방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우리로 하여금 목양 사역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예수님이 행하셨던 심방의 특징적인 모습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인격의 직접적인 만남
예수님은 개개인에게 관심이 많으셨다. 대중이 몰리는 장소는 회피하고 가능한 한 개인에게 다가서서 개인적인 아픔과 고난에 동참하면서 만남을 가지셨다. 그런 가운데 개인의 변화가 일어났다. 성경에 나타난 예수님의 사역을 보면 대중 안에서 회심한 경우보다는 개인적인 만남을 통해서 삶의 변화와 중생이 일어난 경우가 많이 보인다. 비록 개인적으로 만난 사람이 대중적으로 만나는 것에 비해 적은 수라 할지라도 그렇게 해서 변화된 사람이 예수님의 제자들이 되었다. 심방은 개인적인 만남을 직접 이루는 좋은 도구이다. 대중적으로 만나는 일보다는 한 사람의 변화를 꿈꾸면서 우리도 예수님처럼 개개인에게 인격적으로 다가서는 일을 좋아해야 한다.
2.만남을 통한 삶의 변화
목양의 핵심은 성도 각각의 삶이 변화되는 것이다. 아무리 많은 수가 모이더라도 변화되지 않는 사람이 운집되어 있다면 오히려 답답한 마음이 더할 것이다. 어떻게 하면 삶이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변화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영적 지도자의 최대의 고민이요 과제이다. 변화는 언제나 만남을 통해서 일어난다. 이것은 개인적인 만남을 통해서 훨씬 잘 일어난다. 예수님은 이런 개인적인 만남을 즐기셨고 그 만남을 통해 개인의 삶의 역동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형식적이고 의례적인 만남으로서 심방은 비인격적이다. 심방을 통해서 변화가 어렵다면 그것은 진실한, 그리고 인격적인 만남이 적기 때문이다. 성과 위주의 심방은 오히려 삶의 변화에 역행한다. 점차 만남을 기피하는 현대인들에게 진실한 마음으로 다가서는 인격적인 만남으로서의 심방은 또 다른 삶의 변화와 구원을 이룰 수 있다. 아무리 과학기술이 변화하고 발달한다 해도 사람과의 인격적인 만남 이상 더 좋은 즐거움은 없다.
3.소외된 음지들을 돌아봄
예수님의 심방 특징 중의 하나는 스스로 찾아올 수도 없는, 소외되고 음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직접 찾아 나섰다는 것이다.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을 만났던 사람들의 목록을 보면 거의가 스스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38년 된 병자, 감히 사람들 앞으로 나서지도 못하는 부정한 혈루병 걸린 사람, 문둥병자, 스스로 걷지 못하는 앉은뱅이,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 친구 없이 따돌림 받는 세리장 삭개오, 주위의 눈총을 받고 사는 부정한 사마리아 여인 등등. 그들은 스스로 예수님 앞으로 담대하게 나올 수 없는 연약한 자들이었다. 그들은 누군가가 찾아와 주지 않으면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예수님은 바로 이런 사람들을 직접 찾아가 심방하셨다. 이런 면에서 보면 오늘날 우리의 목양 사역은 점차 거꾸로 가고 있는 듯하다. 이제부터라도 감히 교회에 찾아올 수 있는 용기를 상실한 소외된 사람들을 찾아가는 심방이 필요하다.
4.성과 촌을 두루 다니심
예수님의 심방은 한곳에만 머문 것이 아니고 성과 촌을 두루 다니셨다. 성이라는 것은 도시를 말하고 촌은 시골을 말한다. 심방은 부한 집이나 가난한 집이나 상관하지 않고 두루두루 찾아 나서는 것이다. 부한 자만 찾아 나서거나 가난한 사람만 찾아 나서는 것은 좋지 못하다. 어느 한곳에만 집중적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지 두루두루 찾아 나서는 자세가 필요하다.
5.일하고 있는 삶의 현장을 찾아다니심
예수님은 현장을 좋아하셨다. 그래서 늘 현장과 함께하셨다. 현장이란 사람들이 살아가는 다양한 삶의 자리를 말한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생활하고 고통을 느끼고 고민을 하는 그 현장을 사랑하시고 친히 그곳에 동참하셨다. 하나님의 도움이 아니면 살아갈 수 없는 자들을 찾아 가셔서 그들에게 소망과 위로와 구원을 전하셨다. 심방은 가정뿐 아니라 일하는 현장을 방문하는 것이다. 생활의 현장, 즉 학교, 직장 등 사람들이 만나는 장소는 아주 다양하다. 특히 아는 사람 뿐 아니라 모르는 사람들도 예수님의 심방의 대상이었다고 보면 오늘 우리의 심방 대상도 과거에 알았던 사람에서 모든 사람으로 대상을 넓혀야 한다.
단순히 교인들을 점검하고 출석을 독려하기 위한 정도가 아닌 잃어버린 자, 예수님과의 만남이 필요한 사람을 찾아 나서는 적극적인 넓은 시야가 필요하다. 복음은 현장 속에서 더욱더 능력을 발휘한다. 그렇다면 일하는 현장 속에서 이루어지는 심방은 복음의 역동성을 체험할 수 있는 좋은 장소이다.
6.깊고 친밀한 대화를 통한 말씀과 제자 양육
예수님의 심방은 친밀하고 아주 깊은 대화가 주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히 대화를 나누는 것을 넘어서서 하나님의 나라를 가르치고 전파하는 일이었다. 잘 이해를 못할 때는 다정스럽게 비유 등을 통하여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말씀을 풀어서 양육하였다. 예수님의 제자훈련은 교실이나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기보다는 다양한 삶의 현장 속에서 이루어지는 심방을 통한 것이었다. 특히 예수님은 강압적이고 주입식으로 하는 양육방법이 아닌 대화와 질문과 친밀과 편안함을 통하여 제자 양육을 하셨다. 이런 면에서 우리의 심방도 많은 대화와 나눔, 그리고 친밀하고 편안한 분위기가 선행되어야 한다. 경직되고 지시 하향적이고 권위적인 심방은 오히려 영적 생명력을 상실하게 한다. 그뿐 아니라 형식적이고 의례적이며 인위적인 영성을 심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7.집을 직접 방문하심
예수님은 가정 방문을 직접하셨다. 그때 당시에는 공적인 예배 장소가 없었고 회당에서 가르치는 일이 금지된 이후에 가정은 중요한 교회기능을 수행하는 최적의 장소였다. 가정이 곧 교회였기에 그곳에서 예배, 교육, 선교 등이 이루어졌다. 가나의 혼인집, 바리새인집, 마르다와 마리아의 집, 시몬의 집 등은 가정에서 이루어진 예수님 사역의 좋은 예이다. 가정을 방문하면 가정의 주인 뿐 아니라 그 가족들, 그리고 함께 한 이웃을 같이 만날 수 있고 그들에게도 복음을 전할 수 있다.
가정은 사람이 살아가는 상태를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곳이다. 점차적으로 가정을 개방하기를 꺼려하고 가정 방문을 싫어하기 때문에 가정 심방이 용이하지만은 않다. 그러나 가정을 방문하지 않고서는 그 가정을 온전히 파악할 수 없고 진실한 영적 지도도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어려워도 목회자는 이것을 극복해야 한다. 가정 심방을 꺼려하는 가정은 교회의 일부분으로서의 가정이 되기 어렵다. 폐쇄적인 가정은 하나님에게 쓰여지는 가정이 되지 못한다. 가정을 직접 찾아가서 가정을 위해 기도해 주고 그곳이 벧엘이 되게 함으로 가정의 거룩성과 예배를 회복하는 것은 교회가 꼭 해야 하는 중대한 일이다.
8.모든 대상을 가리지 않고 만나심
예수님은 모든 계층의 사람들과 만나셨다. 정치인, 종교인, 군인, 가난한 자, 부한 자, 지위가 있는 자 등 모든 사회계층을 대상으로 만나셨고, 심지어 그 만남이 사마리아 사람에까지 확대됨으로 민족성까지 초월하였다. 우리의 심방도 모든 계층과 성별, 나이, 지위, 신분, 민족 등을 초월하여 만나야 하고 그것이 과감하게 확대되어야 한다. 교회가 특성화된, 또 전문화된 교회로 인식되고 그것을 보편화하려는 것은 아주 위험한 현상이다. 모두가 함께 만나고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를 느낄 수 있는 몸된 공동체를 이루어야 한다. 비록 당장의 효과성에 이의를 제기한다 해도 교회가 지향하는 목표는 모든 대상이 함께 한몸을 느끼는 공동체이다.
9.치유를 통한 고난과 어려움을 해결함
예수님은 심방을 통하여 치유와 구원사역을 행하셨다. 심방은 직접 만나는 것이기에 이것이 훨씬 용이하다. 인생을 저주스럽게 살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방문은 희망 그 자체였다. 용서의 선언이 이루어지고 구원이 가정에 선포되는 축복은 심방을 통하여 나타나는 놀라운 은혜이다. 심방은 그리스도 안에서 문제 해결을 모색하는 좋은 기회이다. 심방을 통해 고난의 현장에 직접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인식할 수 있게 된다.
10.영혼 구원에 우선적인 관심을 두심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리고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면서 늘 관심을 가졌던 긍극적인 목표는 언제나 영혼 구원이었고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게 하는 일이었다. 그분의 최대 과제는 죄를 해결하고 구원이 임하게 하는 것이었다. 이런 것은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 등을 통해서 잘 나타난다. 그 이적은 영원히 주리지 않는 생명의 양식을 얻게 하려는 데 목적이 있었다. 육신적인 문제는 그 해결이 일시적일 뿐 얼마 지나면 또 문제가 발생한다. 그러나 영적인 문제의 해결은 영원하다. 심방은 사람들의 물질이나 육신의 건강이나 사업과 가정의 문제를 일시적으로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게 하고 영생을 얻게 하며 긍극적으로는 인간을 의지하기보다는 하나님을 소망하고 영적 성장이 이루어지게 하는 데 있다. 자칫 심방이 기복적으로 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개념의 정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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