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

창원 마산합포구 오동동 아귀찜 거리

대구해송 2014. 5. 20. 23:08

열려라, 미식로드!

2번국도 미식 여행 ①부산~창원


 

영호남의 남도를 관통하는 2번국도 위에 올랐다. 이유는 한 가지. 맛의, 맛에 의한, 맛을 위한 여행을 위해서다. 맛의 고장으로 불리는 남도의 동과 서를 잇는 2번국도에 올라 진한 미식 여행을 떠나보자.


 

꼬득하게 말린 아귀에 콩나물과 미나리를 더해 갖은 양념으로 매콤하게 요리한 마산 아귀찜 아귀에 콩나물과 미나리를 더해 갖은 양념으로 매콤하게 요리한 아귀찜


 

사실 ‘남도’라는 이름 앞에는 암묵적으로 생략된 글자가 있다. 풍요로운 먹거리나 풍유를 읊을 때 자주 등장하는 이 이름은 특정 지역 대신 한반도의 남쪽, 남해 언저리 동네를 아우를 때 쓰인다. 글자 그대로 풀어내자면 한반도 남부 전역을 뜻해야 하건만 실질적으로 우리는 주로 호남지역의 남쪽을 이를 때 ‘남도’라는 말을 쓴다. 엄연히 영남에도 남도가 존재하건만 어째서 우리의 남도는 ‘(호남의)남도’가 됐을까.

예로부터 영남의 부자를 만석꾼, 호남의 부자를 백만석꾼이라 했다. 호남에 더 넓은 평야지대가 속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너른 평야가 품은 넉넉한 곡식 위에 남해와 서해의 갯벌이 내놓는 다양한 짠것들이 더해지니 풍요로운 ‘맛’을 위한 기본 조건을 갖춘 셈이다. 다양한 재료는 풍부한 요리로 진화했을 것이다. 때마다 다양한 먹거리 넘쳐나니 흥이, 노래가 절로 나왔을 것이다. 남도의 가사문학을 따라가면 이 땅이 품은 넉넉한 먹거리와 연결되는 지점이 있으리라.

우리들이 ‘맛’하면 ‘남도’, ‘남도’하면 ‘맛’을 떠올리게 된 것 역시 비슷한 맥락이다. 왜 이렇게 길게 남도에 대해 이야기했는가, 이번 여행이 남도 맛기행이기 때문이다. 여기서의 남도는 영남과 호남 모두를 아우른다. 풍요로운 남해를 품고 이어지는 영남의 남도 역시 제법 푸짐한 별미와 얘깃거리를 품고 있다. 부산과 전남 신안을 이으며 남도를 관통하는 미식로드, 2번국도를 따라 ‘남도 맛 대장정’을 떠나보자.


 

2번국도 맛기행 지도 2번국도 맛기행 지도<지도제공·네이버>


 

2번국도부터 살펴보자. 2번국도는 전남 신안~목포~강진~장흥~보성~순천~광양~하동~진주~창원~부산을 잇는다. 370km가 넘는 기나긴 길이다. 서해와 남해를 따라 이어지는 지역들의 별미를 하나씩 맛보며 ‘맛’으로 고장을 기억해보자. 오감을 살려 만끽한 공간은 더 속 깊은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각각의 지역 별미에 담긴 역사와 문화까지 찾아내 맛볼 수 있다면 이번 여행은 진정한 미식여행이 되지 않을까. 미식로드의 기점은 부산이다. 부산 중구에서 창원까지 달려볼 예정이다. 영남의 남도 맛기행부터 출발!



 

부산 아지매 울리던 꼼장어, 정체를 밝혀라!

해운대시장 전경 해운대시장 전경 부산 별미 밀면 꼼장어 손질 [왼쪽/오른쪽]부산 별미 밀면/ 꼼장어 손질은 이렇게


 

여름이면 진가를 발휘하는 부산. 먹거리까지 더해지면 ‘살아있는’ 여행을 만들 수 있다. 부산 먹거리만 찾아다녀도 1박2일로 부족하다. 일단 2번국도가 닿지 않는 기장과 동래 등은 제외하고 살펴보자. 그럼 남포동과 해운대로 좁혀진다. 남포동의 자갈치시장과 국제시장, 해운대의 해운대시장 등 시장을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했다. 어느 고장이든 그곳의 별미를 맛보고 싶다면 오래된 시장을 찾아가면 되니까.

밀면과 돼지국밥은 워낙 유명한 몸이니 넘어가자. 일단 바다를 품고 있으니 싱싱한 활어회와 해산물, 그리고 적당한 가격으로 푸짐하게 맛볼 수 있는 생선구이가 빠질 수 없다. 남포동 국제시장과 비프광장 자락에서 맛볼 수 있는 비빔당면, 유부주머니, 씨앗 호떡, 팥빙수도 부산에서 누릴 수 있는 깨알 같은 맛의 세계다. 여기에 곰장어가 더해진다.


 

부산 꼼장어 부산 꼼장어의 제맛은 양념이 더해져야 나온다 소금구이 다 먹은 후 양념에 볶아먹는 볶음밥 소금구이(왼쪽)까지 맛보고 싶다면 주문할 때 반반씩 하면 된다. 다 먹은 후 양념에 볶아먹는 볶음밥도 별미(오른쪽)


 

꼼지락 거리는 장어라고 ‘꼼장어’란 이름을 얻었지만 그의 본명은 곰장어다. 하지만 ‘부산 꼼장어’는 일종의 고유명사처럼 익숙하니 이번 기사에서는 ‘꼼장어’로 부르겠다. 본명인 곰장어도, 학술 명칭인 먹장어도 ‘꼼장어’만큼 그 맛을 표현해내지는 못한다. 시원한 소주 한잔에 꼼장어 한입 곁들이면 그 순간, 모든 시름이 녹아내린다. 그렇다고 꼼장어 자체에 특별한 맛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매콤한 양념의 공이 크다. 아무리 봐도 별볼일 없어 보이는 꼼장어는 어떻게 부산의 수많은 별미 중 하나로 자리 잡았을까.

남도의 바다는 장어가 유명하다. 이쪽 사람들은 뱀장어, 붕장어, 갯장어 등의 모든 장어를 ‘짱어’라고 부른다. 붕장어(아나고)와 갯장어(하모)는 바닷장어, 뱀장어는 민물장어를 말한다. 꼼장어도 바다에서 난다. 장어 중 가장 대접 못 받는 몸이다. 징그럽게 생겼다는 것도 한몫하고 다른 장어에 비해 맛이 그리 좋지 않다는 것도 이유에 속한다. 속살보다는 껍질이 더 유용했다고 하니 어떤 대접 받았을지 감이 온다. 게다가 끈적한 점액이 넘쳐나 생으로는 먹지 못한다.

생긴것은 시원찮으나 부산 별미로 자리잡은 꼼장어를 맛 볼 수 있는 곳은 많다. 자갈치시장과 해운대시장, 그리고 이번 여행에서는 제외하기로 한 기장도 꼼장어로 유명하다. 부산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도 부산 꼼장어의 고향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은 자갈치시장이다. 광복의 기쁨을 누리기도 전 6·25전쟁으로 하루아침에 고향을 잃은 이들이 부산으로 몰려들었다. 목숨만 건져 떠내려 온 피란민들은 살아야 했다. 미군부대에서 나온 깡통들과 책들을 팔아 연명했다. 우리 어머니들 역시 자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좌판을 벌였다. 깡통들이 몰리던 시장은 깡통시장이 되었고, 책들이 몰리던 곳은 보수동 책방골목이 되었다. 어머니들이 좌판을 벌인 주 무대는 자갈치시장이었고 이때 아지매들은 꼼장어를 들고 나왔다. 배고프던 시절이었다.

부산 별미로만 알고 있던 꼼장어에는 이 땅의 상처가 스며있다. 사실을 알고 나면 더 꼭꼭 씹을 수 있다. 전쟁의 상처 또는 그 된 시간은 꼼장어를 손질하는 과정에서도 오버랩 된다. 꼼장어는 도마에 머리를 송곳으로 고정시키고 껍질을 벗겨내는데, 속살을 드러내고도 여전히 꿈틀거린다. 불판위에 올라서까지 꿈틀거리는 징한 생명력에 그때 그 시절을 살아냈던 이들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마니아들 외에는 양념 꼼장어를 더 좋아한다지만 양념없이 익혀 소스에 찍어 먹는 맛도 제법 고소하다. 모두 맛보고 싶다면 반반씩도 주문이 가능하다. 가격은 저렴한 편이 아니다. 제대로 맛보려면 둘이서 4~5만은 필요하다. 꼼장어 좀 먹는 이들이라면 혼자서도 거뜬히 먹을 수 있는 양이다. 먹고 난 후 밥을 볶아 먹는 것도 별미다. 부산 꼼장어의 고향 자갈치시장과 여름 피서지로 인기인 해운대자락의 시장에서도 맛볼 수 있다.



 

못생겨도 맛만 좋네, 마산 아귀찜

마산합포구 오동동 아귀찜 거리 마산합포구 오동동 아귀찜 거리 마산합포구 오동동 아귀찜 거리 마산 어시장 전경 마산 어시장 전경


 

미식로드 2번째 고장은 창원이다. 지난 2010년 창원·마산·진해가 창원으로 통합되면서 ‘아귀찜 동네’ 오동동은 창원시 마산합포구 소속이 됐다. 그래도 여전히 바늘과 실처럼 ‘아귀찜’앞에는 ‘마산’이 따라온다.


 

매콤한 맛의 아귀찜과 시원하고 담백한 탕 매콤한 맛의 아귀찜과 시원하고 담백한 탕 생물 아귀 아귀찜 거리 지척에 자리한 마산 어시장 활어 거리 [왼쪽/오른쪽]생물 아귀 / 아귀찜 거리 지척에 자리한 마산 어시장 활어 거리


 

아구의 본명도 ‘아귀’다. 탐욕을 부리다 지옥에 떨어진 귀신을 불교에서는 ‘아귀’라고 부르는데, 목구멍이 바늘처럼 좁아 음식을 먹어도 삼킬 수 없으니 늘 배가 고프다. 이 못생긴 생선의 이름은 거기서 따왔다. 비늘 하나 없는 끈적한 점액질의 몸에 3중으로 난 이빨까지 갖춘 비주얼은 아무리 후하게 점수를 줘도 험악하다. 여기에 무엇이든 먹어치우는 식성이 ‘아귀’와 닮았다. 이 고약한 외모의 생선은 머리가 몸 전체의 2/3를 차지할 정도로 크다. 덕분에 헤엄은 미숙한 대신 사냥에 능숙하게 진화했다. 바닥에서 숨을 죽이고 기다리다 먹이가 다가오면 통째로 삼켜버린다. 조선시대 정약전은 <자산어보>에서 이 생선을 ‘조사어’라고 기록했다.

못난 외모 덕분에 홀대받던 아귀가 이렇게 대중적인 인기를 얻기 시작한 것은 오십년도 되지 않았다. 이곳 마산에서 아귀찜이 태어나면서부터다. 그때까지는 아귀를 말렸다가 시원하게 탕으로 끓여먹곤 했는데 손님들의 청으로 매콤한 양념을 더한 찜을 만든 게 시작이었다. 마산에서 시작했지만 인근 부산과 군산, 그리고 인천에도 아귀찜이 있다. 가장 큰 차이는 어떤 아귀를 쓰느냐인데, 이곳 마산을 뺀 지역에서는 흔히 생아귀를 쓴다. 마산에서는 말린 아귀와 생아귀 두 종류로 아귀찜을 내놓는다. 말린 아귀에서는 특유의 향이 있어 잘 먹지 못하는 이들도 있으니 기억해두자.

아귀찜을 먹으려면 오동동으로 가면 된다. 마산 어시장과 멀지 않은 곳에 아귀찜 거리가 있다. 인근에 복어 거리와 장어 거리도 있으니 제대로 마산의 맛을 느끼고 싶다면 이곳에서 1박 이상 머물러야 한다. 아귀찜 전문점에서는 아귀탕과 마산의 또 다른 별미인 미더덕찜도 맛볼 수 있다. 말린 아귀보다 생 아귀가 더 비싸다. 5~6만원 정도면 아귀찜과 미더덕찜, 그리고 탕까지 한번에 맛볼 수 있다. 다음 목적지는 2번국도가 품은 내륙지역, 진주다. 진주 별미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러 다시 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