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시즌이 시작하면 안동의 작은 예배당과 녹슨 종탑이 눈에 밟힌다. 새벽마다 60번 넘게 종을 쳤던 한 사람, 그 병든 종지기의 딱하고 독했던 삶을 생각한다. 그 사람의 이름은 권정생(1937~2007)이다.
마을 교회에서는 종지기 아저씨였고, 동네에서는 “억수로 착한 사람”이었고, 한국 문학사에서는 밀리언셀러를 생산한 최초의 동화작가였던 사람. 50년 넘게 병마와 싸웠고 40년 넘게 오줌 주머니를 차고 살았던 사람. 평생 가난하게 살았는데, 죽고서 보니 10억원을 모아놨던 사람. 그 큰돈을 아이들이 책을 사서 생긴 돈이니 아이들에게 돌려주라고 말하고 떠난 사람.
올해도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경북 안동시 일직면 조탑리, 당신이 머물다 간 자리를 찾았다. 이번에는 길벗이 있었다. 스무 살 갓 넘은 대학생 때부터 당신 곁을 지켰던 안동 시인 안상학(61)이다.
권정생은 『강아지똥』의 작가다. 제 동화 속 주인공 ‘돌이네 강아지 흰둥이가 누고 간 똥’과 같은 사람이다. 권정생은 1969년 동화 『강아지똥』을 발표했고, 2011년 100만 부 판매 기록을 세웠다. 현대 아동문학 최초의 기록이다.
“어느 날 길을 가는데 갑자기 정생이가 쪼그리고 앉더니 ‘누나! 강아지 똥 속에서 민들레가 피었네요’ 그러데요. 그때 강아지 똥 이야기를 생각한 것 같아요” 큰누나 권귀분씨 기억에 따르면 『강아지똥』은 선생이 얼추 20년을 가슴에 묻어 두었다가 천천히 익히고 서서히 삭힌 이야기다. 그래서 선생의 집에 갈 때는 조금 돌더라도 마을에 들어갔다 나와야 한다. 그 골목길 담 밑 가장자리에서 작가 권정생이 태어났다.
권정생은 1937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다. 1929년 노무자로 건너간 아버지와 1936년 남편을 만나러 간 어머니의 5남2녀 중 여섯째였다. 아버지는 도쿄의 청소부였다. 아버지가 길바닥에서 주워 온 헌책을 읽으며 선생은 글을 읽혔다.
해방 이듬해 아버지는 고향 안동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형편이 나아지지는 않았다. 아버지는 소작농을 했고 어머니는 행상을 다녔다. 선생도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무·고구마·담배 따위를 팔았다. 1955년 부산 초량동 재봉기 가게의 점원으로 일을 시작했고 그 어렵던 시절, 그는 평생을 괴롭히고 끝내 죽음으로 몰고 간 폐결핵과 늑막염에 걸린다.
선생은 1957년 안동 집으로 돌아온다. 어머니의 극진한 간호로 한때 병세가 호전되기도 한다. 20대 초반 그 시절이 선생에게 가장 행복한 때였던 듯싶다. 그러나 어머니는 1964년 세상을 뜬다.
선생도, 여느 작가들처럼 어머니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받았다. 말년에 발표한 단편 동화 『엄마 까투리』는 차라리 우화로 다시 쓴 어머니의 일기라고 할 수 있다. 동화에서 엄마 까투리는 산불이 번져 오자 새끼 꿩 9마리를 자신의 날개 안으로 들어오게 한 뒤 꼭 보듬고 혼자 죽어간다. 새끼 꿩을 지키다 죽은 엄마 까투리가 아픈 아들을 병구완하다 먼저 스러진 당신의 어머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