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예수

짖지 않는 개는, 더 이상 개가 아니다 / 신상래 목사

대구해송 2019. 9. 2. 08:05

짖지 않는 개는, 더 이상 개가 아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인류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서였다. 물론 자신의 죄를 철저하게 깨닫고,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의 공로를 의지하며 회개하는 자에게 주시는 혜택이라는 것을 모르는 크리스천은 없다. 그래서 교인들은 예수를 믿고 죄를 용서함 받아 깨끗하게 되어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어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 될 것을 굳게 믿고 있다. 그러나 과거의 회개기도는 과거의 죄를 용서받는 데만 유효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가 막히게도, 우리네 교회는 일회적인 회개기도로 과거의 죄뿐 아니라, 현재의 죄와 미래의 죄까지 용서받았다고 가르치고 있으니 기가 막히다. 아니 회개하지 않은 죄까지 용서받았다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의 죄까지 회개 받았다고 주장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들도 자신의 죄를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신네 교회의 목회자들은 날마다 죄를 회개하고 깨끗하게 용서받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는가? 대부분의 우리네 교회지도자들은 죄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것조차 꺼려한다. 교인들이 듣기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회에서 쫓겨나지 않으려면 교인들의 눈치를 보아야하는 목회자들은, 교인들이 듣기 좋아하는 위로와 격려, 덕담과 축복을 쏟아 붓는 설교주제에 집중하지, 교인들이 싫어하는 죄와 지옥, 귀신 등에 대한 주제를 입에 꺼내기도 싫어한다. 그래서 교인들은 교회에서조차 죄에 대한 가르침을 배우지 못해서, 교회마당을 밟으며 예배의식에 참석하기만 하면 자신의 죄에 대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기 일쑤이다. 이런 교회의 목사들은 죄다 짖지 않은 개이다. 그래서 도둑이 들거나 낯선 사람이 침입해도 주인에게 경고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도둑을 지키는 목적인 정체성을 상실한 개인 셈이다. 그러나 이 얘기를 읽고 있는 당신도 자신이 하나님 앞에 극악무도한 죄인임을 깨닫지 못한다. 물론 죄가 전혀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지옥에 던져질만한 죄인임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미 교회에서 가르쳐왔던 달콤한 덕담이나 인본적인 구원론에 물들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은 왜 당신이 패역무도한 죄인인지 한 가지만 콕 집어서 말씀드리고 싶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길을 너희에게 가르칠 것인즉”(삼상 12:23)

 

“쉬지 말고 기도하라 ...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7,18)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눅 21:36)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기도를 쉬는 것이 죄라고 선포했다. 사도바울은 쉬지 말고(끊임없이) 기도하라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가르쳤고, 예수님은 항상 기도하면서 깨어 있으라고 명령하셨다. 그래서 당신은 항상 깨어서 끊임없이 기도하며 살고 있는가? 그리고 기도를 쉬는 것이 죄라는 것을 자각하며, 이 죄를 짓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쓰며 노력하고 있는가? 솔직히 말해서 우리네 교회에 이런 기도를 하는 목회자도 없고 교인들도 없다. 목회자들도 하루 30분도 기도하지 않는 이들이 널려있다. 그런데 교인들에게 쉬지 않고 기도하지 않는 것이 죄라고 가르칠 수가 있겠는가? 처음부터 우리네 교회에서 가르치는 기도는 본질적이고 성경적인 기도가 아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기도는 하나님과 깊고 친밀하게 교제하는 기도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경배하고 찬양하며 감사하고 죄를 회개하며 하나님의 뜻을 간구하여야 한다. 대표적인 기도문으로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주기도문을 보라. 그 어디에도 자신들의 유익을 구하거나 삶의 문제를 해결해달라는 내용이 없다.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는 내용도,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일용할 양식은 말씀과 보혈이다. 그래서 성만찬 의식을 만들어서 빵과 포도주를 마시면서 예수님의 살과 피를 기억하라고 명령하신 이유이다. 먹고 살기 위한 생계를 구하는 것은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자들에게는 삶의 필요를 충분히 채워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러나 교인들은 기도자리에 앉으면 자신의 유익과 삶의 문제를 해결해달라는 기도만을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런 기도에 관심이 없으시며 응답이 내려오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네 교회에 기도소리가 사라지는 이유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방식을 잊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마 22:37,38)

 

예수님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죄라고 콕 집어서 말하고 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루 종일 하나님 생각으로 가득 차서, 하나님을 이름을 부르며 전심으로 성령의 내주를 간구하는 기도의 습관을 들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종교적인 의무를 하고 있지만, 정작 하나님을 사모하지도 않고 사랑하지도 않으며 하나님의 뜻에 관심조차 없는 이들이 패역무도한 죄인이 아니고 누구이겠는가? 그러나 당신네 교회의 목사들은, 쉬지 않고 기도하지 않는 교인들에게 지옥에 던져지는 죄를 짓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며 경고하고 있는가? 아니라면 그런 목사가 짖지 않는 개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하나님과 깊고 친밀하게 교제하는 기도를 잊어버린 우리네 교회에 하나님이 떠나신지 오래되었다. 그래서 교인들은 물론이고 목회자들조차, 무능하고 무기력한 믿음으로 고단하고 팍팍한 삶을 이어가고 있을 뿐이다. 이는 미혹의 영이 우리네 목사들의 머리를 타고앉아 자신의 생각을 넣어주고 속이고 있기 때문이다. 기도를 쉬고 있는데도 천국에 간다고 속이면서, 주인의 명령을 지킬 생각조차 하지 않은 종들의 패역무도한 죄를 방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죄를 토경고하지 않는 목사들은 짖지 않는 개에 불과하다. 어떤 주인이 그런 개를 먹이고 보살펴주겠는가? 그래서 대부분의 목사들은 주인을 잃은 강아지가 배고픈 것처럼 불쌍하고 고달프게 살고 있는 이유이다.

 


▲신상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