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성수에 대한 역사적 교훈
오늘은 기독교의 가르침과 삶 중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예배와 주일 성수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예배와 주일 성수는 구원의 목적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출8:1).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바로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나를 섬길 것이니라’ 라는 말을 12번 이상이나 반복하셨습니다. 여기 ‘섬길 것이니라’ 라는 말은 ‘예배할 것이니라’ 라는 말씀입니다.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너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명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신5:15). 출애굽의 목적은 예배와 안식일 성수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신앙의 어머니들은 자녀들에게 주일 성수를 우선적으로 가르쳤습니다. 세계 최대의 부자였던 록펠러의 어머니는 아들 록펠러에게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첫째, 하나님을 친아버지 이상으로 섬겨라. 둘째, 목사님을 하나님 다음으로 섬겨라. 셋째, 주일을 성수하되 주일예배는 본 교회에서 드려라. 넷째, 예배 시간에 항상 앞에 앉으라. 다섯째, 오른쪽 주머니는 항상 십일조 주머니로 하라.” 채의숭 장로라는 분은 매출 10억불의 대의 그룹의 회장인데 그는 자기 인생의 성공 비결은 어머니로부터 다음과 같은 철저한 신앙의 훈련을 받은 데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첫째, 주일을 성수하라. 예배를 드릴 때는 맨 앞자리에 앉아라. 둘째, 십일조를 철저히 하라. 셋째, 목사님께 순종하라.”
한국교회는 초기부터 주일성수를 강조해왔습니다. 일제 치하와 공산정권 치하에서 주일성수의 자유가 침해 당하려 했을 때도 한국교회는 주일성수의 원리를 끝까지 고수해 왔습니다. 제가 10살 11살 때 평양 제 5인민학교를 다녔는데 학교는 학생들이 주일날 교회에 가는 것을 금지했습니다. 일요일 날에는 학생들이 학교에 오도록 강요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서문밖교회에 다니면서 주일학교 선생님들로부터 주일 성수의 신앙을 철저하게 배웠습니다. 그래서 주일날 학교에 간 일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월요일마다 학교에서 벌을 받았지만 저는 주일에는 언제나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새벽기도까지 했습니다. 순교적 신앙까지 배웠습니다. 결국 저는 만 11살 때 주일 성수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고향을 떠나 부모님과 동생들을 북에 두고 38선을 혼자서 넘어서 남한으로 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철없는 한 어린 소년의 주일 성수의 신앙을 귀하게 보시고 그 소년을 평생토록 사랑하시고 축복하셨습니다. 주일 성수와 예배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구원하시는 구원의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주일 성수에 대한 성경적 및 교회사적 가르침에 대해서 강의를 하려고 합니다.
주일 성수에 대한 성경과 신약교회와 초대교회의 가르침
구약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식일을 성수할 것을 엄격히 명했습니다. 안식일 성수야 말로 이스라엘 백성의 종교적 특성을 말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식일을 성수하므로 여호와 하나님이 창조주 되심과 구원자 되심을 기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날을 “여호와의 날”로 알아 자기들의 세속적 업무를 모두 중단(안식)하고 “여호와께” 거룩하게 지켰고(예배), 여호와 하나님은 이 날을 거룩하게 하여 그의 백성을 축복하셨습니다. 안식일 성수는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과의 사이에 특수한 언약의 관계가 있음을 말해주는 표징이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무릇 그 날을 더럽히는 자는 죽일찌며 무릇 그 날에 일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그 생명이 끊쳐지리라”(출31:14)고 엄히 명했습니다. 구약은 안식일 성수의 규례를 엄격하고 상세하게 규정했습니다. 안식일에는 모든 처소에서 불 피우는 것이나 짐을 지고 다니는 것을 금했고 광야에서는 안식일에 만나를 거둬들이는 것을 금했습니다. 이와 같은 규례는 점점 더 엄격해졌습니다. 안식일에는 구덩이에 빠진 소를 끄집어 내는 것도 옳지 않고 적의 공격을 받을 때 방어하는 것도 옳지 않다고 하기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예수님과 초대교회 신도들은 안식일 성수의 전통을 폐지하지 않았습니다. 유대의 규례에 따라 안식일에 회당에 모이곤 했습니다. 물론 예수님은 안식일을 유대의 전통적 규례대로 의식적으로 지키는 것은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안식일 제도 자체를 거부한 것은 아니었고 예수님께서 구약의 인식일 제도를 완성하셨고 예수님께서 안식일의 주인 됨을 선언했습니다.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마12:8,12). 이 논쟁에서의 예수님의 태도를 잘 기억하고 있었던 그의 제자들은 부활의 아침에 이르렀을 때 예수님의 오심 자체가 안식일의 완성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창조와 구원의 역사가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완성된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안식일을 유대의 규례에 따라 엄격히 지켜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부활의 사건 이후 초대교회 신도들은 대체로 토요일(안식일)이 아닌 일요일(주일)에 함께 모여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예배하기 시작했습니다.
오순절 이후의 신약교회는 한동안 구약의 안식일을 그대로 계속 지키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토요일 뿐 아니라 날마다 성전에 함께 모여 예배와 교제에 힘썼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신약교회는 차츰 매주 ‘첫째 날’을 지키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날에 그리스도가 부활했고, 이 날에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함께 모였던 제자들에게 나타났고, 이 날에 성령께서 강림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누가가 기록한 대로 드로아 교회는 매주 ‘첫째 날’에 함께 모여 떡을 떼곤 했는데 한번은 이 날에 사도 바울이 참석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강론했다고 했습니다. “안식 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저희에게 강론할 쌔…”(행20:7).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와 고린도 교회가 매주 ‘첫 날’에 함께 모일 때 성도를 위한 연보를 하도록 하라고 권면했다.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 교회에게 명한 것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 매주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이를 얻는 대로 저축하여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고전16:1,2).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서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실을 기록하면서 이 일이 “주의 날”(Lord’s Day)에 일어났다고 지적한 것을 보면 주일에 대한 개념이 점점 더 분명해졌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로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계1:9,10).
초대교회의 예배 의식과 신앙 생활의 일면을 전해주는 2세기경의 문서인 「디다케」 (Didache)는 초대교회 신도들이 매 주 첫날인 “주의 날”(Lord’s Day)을 특별한 날로 알아 이 날에 함께 모여 떡을 떼며 감사를 올렸다고 기록했습니다. “매 주일(Lord’s Day)마다 – 이 날은 주의 특별한 날이므로- 함께 모여 떡을 떼며 감사를 드릴 것이다. 그러나 먼저 죄를 고백하여 드리는 제사가 깨끗하게 할 것이다.”(「디다케」, 14,1). 안디옥의 감독 이그나시우스(Ignatius, 35-107)는 「마그네시아에 보내는 편지」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유대주의의 습관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은혜에 속한 자로서의 삶을 살라고 권면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은 이제는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주의 날을 지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직까지 유대주의 습관을 지키고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은혜를 도무지 받지 못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그들은 이제는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주의 날(Lord’s Day)을 지키며 살고 있는데 이는 그 날에 그들의 생명과 우리들의 생명이 빛을 발했기 때문이다.” (「마그네시아에 보내는 편지」,8,9)
2세기의 변증가 져스틴(Justin, 100-165)도 그의 「제일 변증서」에서 그 당시 교회의 예배와 생활 양식을 기록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이 일요일에 한 곳에 모여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글을 읽고 설교를 듣고 함께 기도하고 떡과 물 탄 술을 함께 나누고 그리고 고아와 과부들을 위해서 헌금을 했다고 기록했습니다. “일요일(Sunday)이라고 부르는 날에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한 곳에 모였는데 이때에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글이 읽혀졌다. 우리는 이와 같은 모임을 일요일에 가지곤 했다. 왜냐하면 이 날은 하나님이 어둠을 변케하여 이 세상을 창조하신(창조의) 첫째 날이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 가운데서 부활하신 날이기 때문이다.”(「제일 변증서」,67). 소아시아 비티니아 지방의 총독 플리니(Pliny)가 로마 황제 트라쟌(Trajan)에게 보낸 그의 편지(112년경에 쓰여진)에 의하면 비티니아 지방의 그리스도인들이 “정한 날 이른 새벽에 함께 모여 그리스도를 신처럼 찬미했고,… 그리고 헤어졌다가 다시 모여 해롭지 않은 평범한 음식을 함께 나누었다”고 기록했습니다(플리리의 편지, X, 96). 여기 ‘정한 날’이라고 했을 뿐 ‘주일’이라고 하지 않은 것은 ‘주일’이라는 말이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만 사용되었고 로마 사회에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의 자유를 공인한 콘스탄틴(Constantine)황제는 321년에 칙령을 내려 일요일 휴식을 법으로 제정했으니 “모든 법관들과 도시의 시민들과 그리고 상업에 종사하는 자들은 영예스러운 날인 일요일에는 휴식을 취할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기독교를 국교화한 데오도시우스(TheodosiusⅠ)황제는 386년에 칙령을 내려 일요일 휴식 법을 더욱 강화했습니다. “우리 선조들이 주일이라고 옳게 불렀던 일요일(Day of the Sun)에는 모든 기소와 소송에 관한 처리와 업무를 일체 중지할 것이다. (이 날에는) 아무도 빚을 갚으라고 요구하지 못할 것이다.… 누구나 거룩한 종교의 영감이나 의식에서부터 떠나는 자는 신성을 모독하는 파렴치한 자로 여길 것이다.”(Codex Theodosius, VIII,8,3).
주일 성수에 대한 개신교 교회의 증언
루터나 칼빈 같은 종교 개혁자들은 중세 교회의 율법주의적 내지 미신적 제도주의와 싸워야 하는 역사적 상황에 처했기 때문에 주일성수에 대해 극히 소극적인 입장을 취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칼빈주의적 사상을 이어받은 청교도 신학자들은 초대교회의 모범을 따르면서 주일성수에 대한 적극적 입장을 취하게 되었습니다. 제 4계명을 지키는 태도로 주일을 성수하여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칼빈의 사상의 영향을 받아 이루어진 「아일랜드 종교신조」(1615년 제정)도 주일성수를 강조했으니 56조에 다음과 같이 규정했습니다. “주일(Lord’s Day)이라고 부르는 주중 첫째 날은 하나님께 대한 예배를 위해 전적으로 바쳐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일반적인 일상 업무로부터 쉬어야 하며 그 시간을 공적 내지 사적인 영적 작업을 하는데 힘써야 할 것이다.”(The Irish Articles of Religion,56).
청교도 신학자들은 안식일 제도를 유대인에게 주어졌던 율법주의적 제도의 관점에서 보지 않고 인간에게 주어진 하나의 구속사적 언약의 관점에서 보며 안식일 제도가 본래 의도했던 목적과 내용이 ‘영속적’ 의미를 가진다고 주장했습니다. 즉 안식일 제도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의 사건을 기념하는 동시에 앞으로 완성될 구원을 바라보며 일곱째 날 하루를 거룩히 지키도록 제정했던 것이었는데,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이 제도가 폐지된 것이 아니라 ‘완성된’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로 인하여 새로운 창조와 구속의 역사가 이루어졌으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이제는 그리스도가 부활하신 날인 주일을 거룩히 지키며 그리스도의 창조와 구원의 사건을 기념하는 동시에 앞으로 완성될 구원과 영원한 안식을 바라본다는 것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안식일을 지키던 방법대로 주일을 율법적으로 성수할 필요는 없지만 그러나 일주일 중 주일을 특별히 구별하여 세속적 업무를 중단하고 예배와 교제와 봉사를 위해서 하루를 기쁨으로 거룩하게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1647년 제정)는 안식일 제도의 ‘영속성’과 주일과의 관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규정했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하여 시간을 따로 구별하여 바쳐야 한다는 것은 자연법칙에 속하는 일인데 하나님께서는 그의 말씀 가운데 모든 세대의 모든 사람을 묶는 적극적이고 영속적인 도덕적 계명을 주시므로 일곱 날 중 하루를 안식일로 정하여 자기를 위하여 거룩하게 지키도록 제정하셨다. 이 날이 창세로부터 그리스도의 부활의 때까지는 일주일의 마지막 날이었는데, 그리스도의 부활의 때로부터는 일주일의 첫 날로 바뀌게 된 것이다. 성경에서는 이 날을 주일이라고 부르는데 이 날은 세상 끝날까지 그리스도인들의 안식일로 지키도록 된 것이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21,7).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계속하여 이 날을 거룩히 지켜야 할 것을 규정하면서 “그들의 세속적 직업과 오락에 대한 일이나 말이나 생각으로부터 온 종일 쉬어야 할 뿐만 아니라 공적 내지 사적 예배행사와 자선의 의무를 수행하는데 모든 시간을 바쳐야 한다”(21,8)고 했습니다.
뉴 잉글랜드의 칼빈주의 청교도 신학자 요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1703-1758) 역시 안식일 제도의 ‘영속성’을 강조하면서 안식일 제도가 본래 의도했던 목적과 내용이 주일 제도에서 ‘완성’되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성경은 두 종류의 창조 즉 옛 창조와 새 창조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다. 넷째 계명이 옛 창조의 시대에 속했던 사람들에게 주어졌던 것과 마찬가지로 새 창조의 시대에 속한 사람들에게도 꼭 같이 주어졌다고 하겠다. 옛 시대의 교회가 처음 창조를 기념하도록 되어 있었던 것처럼 새 하늘과 새 땅에 속한 사람들은 꼭 같은 이유로 새 창조를 기념하도록 되었다. 넷째 계명은 또한 하나님께서 옛 창조의 사역에서부터 쉬셨던 것처럼 새 창조의 사역에서부터도 쉬신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 즉 성경은 하나님께서 창조의 사역으로부터 안식하셨던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구속의 사역으로부터 쉬신 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주 중 첫째 날에 죽음 가운데서 부활했을 때 그의 사역으로부터 쉬신 것이다.” (“The Perpetuity and Change of the Sabbath,” in The Works of Jonathan Edwards). 에드워즈는 계속하여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이 이제는 옛 창조를 기념할 것이 아니라 새 창조를 기념하라고 명한다고 지적하며 “일 주일 중 첫째 날을 특별히 구별하여 종교적 행사와 의무를 수행하도록 한 것은 하나님의 마음이요, 뜻이다”라고 강조해서 말했습니다. 그리고 주일을 구별하여 엄격히 지킴으로 하나님의 이름이 높임을 받으며 기독교가 세계에 널리 전해지고 그리고 주일을 성수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게 된다고 했습니다.
요한 웨슬레(Wesley, 1703-1791)와 그의 후계자들이 세운 감리교회와 뉴잉글랜드 청교도들은 가장 엄격하고 철저한 주일성수를 강조했습니다. 17세기 중엽 뉴잉글랜드의 뉴 헤이븐 법정이 제정한 법조문에 의하면 주일성수의 법을 잘 알면서도 뻔뻔스럽게 고의적으로 범한 자는 사형에 처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기까지 했습니다. 1833년에 제정된 「뉴 햄프셔 침례교 신앙고백서」 15장은 주일성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규정했습니다. “우리는 일주일의 첫째 날이 주의 날 또는 기독교의 안식일(Christian Sabbath)임을 믿는다. 그리고 이 날은 모든 세속적 일과 죄악 된 오락을 금하고 종교적 목적을 위하여 거룩하게 지켜야 할 것이다. 이 날은 모든 은혜의 방편들을 거룩히 지켜야 할 것이며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어질 안식을 준비하므로 지켜야 할 것이다.” 1834년에 제정된 「자유의지 침례교 신앙고백서」는 14장에서 주일성수에 대해 다음과 같이 규정했습니다. “하나님은 창세부터 일곱 날 중 하루를 거룩한 안식과 거룩한 예배를 위해 구별하였다. 이전 세대에서는 주중 일곱째 날을 안식일로 구별하여 창조의 사역을 기념하게 했다. 복음의 시대에 와서는 주중 첫째 날을 기독교의 안식일로 지키게 했으니 이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게 하기 위함인데 사도들의 권위에 의해 제정된 것이다. 이 날에 모든 사람은 세속적 일을 금하고 하나님에 대한 예배와 봉사를 위해 바쳐야 할 것이다.”
미국의 개혁주의 조직신학자 찰스 핫지(Charles Hodge, 1797-1878)는 안식일 제도의 ‘영속성’을 주장한 대표적인 신학자였습니다. 핫지는 그의 명저 「조직신학」 제 3권에서 안식일 제도의 본질은 모든 인류에게 적용되는 것인데 기독교에서는 주일 제도로 바뀌어졌다고 지적하면서 이는 창조와 구원의 사역이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 구속사적인 관점에서 볼 때 당연한 것이며 또한 하나님이 의도하신 방법이라고 했습니다. “구약의 계명들 중 유대인들에게 특유하게 주어졌었고 그들의 특유한 환경과 그들과의 관계에 기초해서 주어졌던 계명들은 모세 시대가 지났을 때 폐지되었지만 하나님의 불변성에 근거했거나 인간과의 불변한 관계 위에서 세워졌던 계명들은 영속적 의무의 성격을 띠고 있다. 넷째 계명이 이 종류(후자)에 속하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Systematic Theology, III, p.327). “인간과 하나님 또는 인간과 안간과의 불변하는 관계 위에 세워진 모세의 율법들은 기독교의 규범 안에 그대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우리는 오늘날도 일곱 날 중 하루를 하나님께 거룩히 지킬 의무가 있다. 이 법(안식일 제도)은 모든 인류에게 주어졌고 모든 인류에게 적용된다. 이 계명의 본질적 두 요소는 첫째 안식일은 세속적인 업무와 오락을 중단하고 쉬는 날로 지켜야 한다는 것과 둘째 이 날은 하나님에 대한 예배와 종교적 사역을 위해 바쳐야 한다는 것이다”(p.329). “일곱째 날이 첫째 날로 바뀌어진 것은 (역사적) 상황에서 기인한 것이다. 즉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신 일을 기념했어야 했다면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을 구원하신 일은 더욱 기념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이 세상을 창조하신 일을 기념했어야 했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이루어진 새 창조의 일은 더욱 더 기념하여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이렇게 하여 그리스도의 부활을 영구히 기념하게 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방법이다. 안식일이 일곱째 날에서 첫째 날로 바꾸어진 것은 이와 같은 충분한 이유에서 되어진 것이며 동시에 충분한(교회사적) 권위에 의해서 시행되어진 것이다. 즉 사도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이 일곱째 날을 지키는 것을 중단하고 첫째 날을 지킨 분명한 역사적 사실에서 기인한 것이다”(p.330). 찰스 핫지는 계속하여 주일 성수가 종교적 지식을 증진시키며 주일성수를 무시할 때 이교 사상이 팽창해지는 것은 자명한 역사적 사실이라고 지적하면서 앵글로 색슨계의 그리스도인들이 주일성수의 전통을 이어 받게 된 것은 하나님께 특별한 감사를 올려야 할 이유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그는 앵글로 색슨계의 그리스도인들의 자랑이요 축복된 주일성수의 전통이 이완되지 않도록 열심히 지켜야 할 것이라고 부언했습니다. (p.331,335).
풀러 신학교의 조직신학 교수 폴 쥬엣(Paul K, Jewett)박사도 그의 저서 「주일의 참뜻」 (The Lord’s Day)에서 안식일과 주일의 연속성을 강조하면서 구약의 안식일 제도가 신약의 주일제도에서 완성되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안식일과 주일의 의미를 구속사의 진행 과정에서 찾고 있습니다. 양자를 분리하는 안식일 폐지론이나 안식일 성수를 고수하는 율법주의는 모두 구속사의 진행 과정을 간과하는 말시온적(Marcioniet’s) 과오(‘연속성’을 무시하는 과오)를 범하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구속사역으로 말미암아 안식일 제도의 궁극적 의도를 완성했고 따라서 안식일 제도 자체를 제쳐 놓게 되었다. 예수님이 죽음 가운데서 부활하시므로 구속과 계시의 사역을 완성하신 일이 일곱째 날이 아닌 첫째 날에 일어났으므로 안식일은 이제는 일곱째 날이 될 수가 없게 되었다.”(「주일의 참뜻」, p. 86). 그리스도의 부활의 사건이 구약적 안식의 완성인 동시에 최종적 안식에 대한 약속과 기대의 사건으로 일어났으므로 그리스도인들은 계속해서 주기적으로 첫째 날을 지키게 되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주일성수는 하나님의 구원의 사역에 대한 교회의 ‘결정적인 고백’이요, ‘감사의 간증’이다. “그리스도인들은 공동체적 의식을 가지고 함께 모여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찬양하고 서로 위하여 기도하고 어려움에 처한 형제들을 구제하며 기쁨으로 주일을 거룩히 지킨다”고 쥬엣 교수는 강조했습니다.
주일 성수에 대한 한국 교회의 증언
한국교회는 그 초기부터 주일 성수를 강조해 왔습니다. 주일에는 온종일 모든 세속적 업무를 중단하고 예배와 전도와 봉사에 바쳐야 할 것을 엄격히 가르쳤습니다. 대한예수교 장로회 헌법 제 6부 예배모범은 주일성수의 원리를 다음과 같이 규정했습니다. “주일을 기념하는 것은 사람의 당연한 의무이니 미리 육신의 모든 사업을 정돈하고 속히 준비하여 성경에 가르친 대로 그 날을 거룩히 함에 구애가 없게 하라. 이 날은 주일인 즉 종일토록 거룩히 지킬지니 공동회집으로나 개체로 예배하는 일에 씀이 옳으며 종일토록 거룩히 안식하고 위급한 일 밖에 모든 사무와 육신적 쾌락의 일을 폐할지니 세상 염려와 속된 말도 금함이 옳다. 먹을 것까지라도 미리 준비하고 이 날에는 가족이나 집안 사환으로 공동 예배하는 일과 주일을 거룩히 함에 구애가 되지 않도록 함이 옳다.”
1920년대 한국교회에 큰 부흥을 일으킨 김익두 목사는 ‘주일을 거룩히 지키자”는 설교에서 주일성수의 이유와 방법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습니다. 다분히 율법주의적인 안식일 성수의 원리를 그대로 적용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주일을 지킬 이유에 첫째는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지으시고 하루 쉬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과 같이 엿새 동안 일하고 하루 쉬어야겠습니다. 둘째로는 사람을 안식일 지키게 하는 것은 사업을 잘되게 하려고 안식일을 지키게 하는 것입니다. 셋째로는 이 날은 하나님의 날이요 거룩한 날이 되어서 구약시대에는 일하는 사람은 다 때려 죽이라고 하였습니다. 주일 범한 사람들은 구약시대 같으면 다 때려 죽일 사람들입니다. 지금은 때려 죽이지는 않습니다만 죄는 죄입니다. 넷째는 우리 영혼을 수양시키라고 주일 지키게 하신 것입니다. 주일 범하는 사람은 영혼이 자라나지 못합니다. 다섯째는 주일 지키는 백성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되기 때문에 지켜야 합니다. 여섯째는 주일 지키는 것은 하늘에 가서 지내는 그림자입니다. 우리같이 믿는 동지들이 한 주일 만에 한 예배당에 한 자리에 모이는 것이 얼마나 반가운 일입니까? 이후에 천당 가서도 하나님을 모시고 기쁨, 찬송으로 지낼 것입니다. 일곱째는 복 받기 위해서 지켜야 합니다. 그러면 이 주일을 어떻게 지켜야 할까요? 첫째는 거룩하게 지켜야 합니다. 어떤 이는 주일날을 지키기는 지키는데 밤낮 집에서만 지킵니다. 늘 집만 봅니다. 그래서는 안되겠습니다. 예배당에 가야겠습니다. 둘째는 존중한 날로 지켜야 하겠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형님 생일이라고 주일날 생일 잔치하는 이가 있습니다. 주일날 생일 잔치하고 주일날 장례식 지내고 어떤 이는 주일날 결혼식 합니다. 이것 다 합당치 않습니다. 셋째로 주일은 기쁜 날로 지켜야 합니다.”
북한의 공산정권은 기독교 신앙을 저해하기 위해 갖가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는데 그 중 한가지가 주일 성수를 방해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제가 평양 제 5인민학교, 4, 5학년에 다니던 1947년과 48년도에 주일날 학교에 등교하지 않고 교회에 나갔다는 이유로 여러 번 훈계, 자아비판, 정학 등을 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11살 때인 1948년 8월 혼자 몸으로 고향을 떠나 남한으로 오게 된 동기가 바로 주일 성수문제에 있었습니다. 그 이후 주일 성수는 저의 신앙과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었습니다. 주일 성수는 저에게 있어서 생명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12년 동안 미국에서 공부하고 1974년 가을에 귀국했는데 주일성수문제에 부딪혔습니다. 1975년 말경 주민등록 갱신을 주일에 하라는 통보가 시달되었습니다. 저는 그와 같은 정부 방침에 반대하면서 다음과 같은 글을 크리스챤신문 11월 29일 호에 실었습니다. “나는 주민등록 갱신을 일요일에 하도록 배정되었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겠지만 나에게는 그렇지가 않았다. 교회의 교육 목사요 신학대학의 강사이기 때문에 보다는 나 개인의 과거때문이라고 생각되어진다…(중략)…벌금 낼 각오를 하고 주민등록 갱신을 일요일에 하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물론 주민등록 갱신을 일요일에 하도록 한 것이 북한에서와 같이 신앙을 침해하고 억압하려는 고의적인 정책으로 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는 이와 같은 일들 (또는 일요일에 입학시험 실시 등)이 일요일에 실시되지 않도록 행정부 책임자들이 고려해 주기를 부탁한다.”
그런데 박정희 군사 정부는 교회를 장악하려는 나머지 주일에 국가고시는 물론 학도군사훈련까지 실시했습니다. 총신의 일부 교수는 비상시에는 주일에 학도군사훈련을 실시하는 것이 괜찮다는 입장까지 표명했습니다. 저는 정부정책을 비판하면서 1977년 11월 14일과 24일 한국교회의 지도적 인물 46명에게 주일성수에 대한 앙게이트를 보낸 일이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응답은 정부정책에 반대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일부를 소개합니다. “신앙 원리상 절대 교단적으로 교회적으로 반대해야 합니다. 이는 제 4계명에 저촉되며 국민의 신앙자유를 침해하기 때문에 반대해야 합니다.”(합동 박목사). “…등을 주일날 함에 대해서 본인은 절대 반대합니다.”(기장 김목사). “신교자유를 규정한 국헌에 위배됨을 주장하여 바로 잡아야 하겠습니다. 이북에서 공산당과 싸우던 기억이 생생합니다.”(합동 박목사). “이 문제는 온 교회가 순교적 정신으로 강력하게 시정토록 추진하여야 할 것입니다.”(합동 박목사).
결국 저는 정부의 미움을 사게 되었고 1977년 11월 20일경 어느 날 아침 남산에 붙잡혀 가서 밤새 심문을 받게 되었습니다. 아침부터 밤새도록 심문을 받았지만 저는 단 한 번도 불안하거나 두려워한 일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심문하는 두 사람을 책망하기도 했고 충고하기도 하고 권면하기도 했습니다. 주일 성수를 침해하는 것은 너무너무 어리석은 일이라고 충고했습니다. 심문하던 한 사람은 너무 기가 막혀서 스스로 화를 내기도 했습니다. 날 밤 자정이 훨씬 지나서야 잠을 잘 수가 있었습니다. 책상 두개만 있는 유리창도 없는 지하실 방이었습니다. 저는 책상을 간이 침대로 삼고 그 위에서 잠을 잤습니다. 아침이 되었을 때 집으로 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아주 유익하고 재미 있는 경험이었습니다.
주일성수의 원리와 그 방법을 요약하므로 이야기를 마무리 합니다.
신앙생활의 원리와 규범의 궁극적 기준은 하나님의 특별 계시인 성경 말씀이 되어야 합니다. 동시에 과거 2천여 년 동안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고백되어 왔고 생활되어 온 신앙의 역사적 전통은 오늘의 신앙 원리와 규범 설정에 대한 실제적 안목과 통찰력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구약 율법의 원리와 규범을 그대로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율법주의적 입장은 이미 예수님과 사도 바울에 의해서 거부되었고 종교개혁자들에 의해서 냉혹히 비판되었습니다. 동시에 율법의 원리와 규범을 전적으로 폐지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신앙 지상주의적 입장도 예수님과 사도 바울에 의해서 거부되었고 칼빈주의적 청교도 내지 장로교 신학자들에 의해 비판되었습니다.
계시의 점진적 발전을 믿는 개혁주의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약 율법의 완성을 구속사의 발전 과정의 관점에서 이해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의 창조주 되심과 구원자 되심을 기념하며 또한 앞으로 도래할 신약의 안식을 바라보며 일곱째 날(토요일) 하루를 구별하여 그날을 거룩히 지켰던 것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새 창조와 구속을 기념하며 또한 앞으로 천국에서 완성될 영원한 안식을 바라보며 새 창조와 구속이 완성된 날인 첫째 날(주일) 하루를 구별하여 그 날을 거룩히 지키는 것은 극히 당연한 성서적 신앙 원리요 규범이라고 하겠습니다. 쥬엣 교수는 주일성수의 올바른 태도와 방법을 제시하면서 무엇보다 먼저 자기 자신의 공로나 노력을 의지하지 않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구원과 은혜를 의지하는 믿음을 가지고 지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이것은 또한 칼빈의 입장이었습니다. 칼빈은 말하기를 “안식일의 영적 본질과 목적은 인간들이 자기 자신의 공로나 선행에서부터 떠나서 전적으로 하나님께 자신을 바치는데 있다”고 했으며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서 일하시고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쉬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들의 모든 노력의 활동으로부터 안식을 취하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결론으로 주일성수의 올바른 태도와 방법을 몇 가지로 나열해 봅니다.
첫째로 주일은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구속 사역을 기쁨으로 기념하는 날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날에 슬퍼하거나 금식하는 것은 합당치 않습니다.
둘째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의 말씀을 배우고 가르치면서 이 날을 거룩하게 지켜야 할 것입니다. 이 날은 자신과 남들의 영적 성장을 위해 힘써야 할 것이며 종교적 행사와 영적 사역을 위해 사용하여야 할 것입니다.
셋째로 자선과 봉사의 일을 하면서 이 날을 거룩하게 지켜야 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그의 권면에서 가난한 형제들을 위한 구제 헌금이 주일예배의 중요한 부분이 됨을 암시해 주었습니다.
넷째로 구원 공동체적 의식을 가지고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모여 교제하면서 이 날을 기쁨으로 지켜야 할 것입니다. 교제의 의식을 결한 어떠한 주일성수의 노력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하겠습니다. 주일은 개인에게 속한 날이 아니라, 신앙공동체에 속한 날입니다.
다섯째로 앞으로 완성될 영원한 천국의 안식을 바라보면서 종말론적 기대 속에서 주일을 열심히 지켜야 할 것입니다.
여섯째로 주일에 불가피한 일들을 제외한 모든 세속적 업무를 중단하여야 할 것입니다. 세속적인 업무를 중단하는 것은 주일을 온종일 거룩히 지키기 위한 방편인 동시에 또한 그리스도인들이 자기 자신의 공로나 노력을 의지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구속과 부활의 사역만을 높이고 찬양하는 신앙의 간증이요 고백이 된다고 하겠습니다.
일곱째로 비기독교적 사회에서 생활하는 그리스도인들이 희생의 각오를 가지고 주일성수에 임해야 할 것입니다.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이 주일에 함께 모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희생을 각오한 모임이었습니다.
여덟째로 교회는 소금과 빛의 사명을 다하므로 사회와 국가를 점차 복음화하여 그 교회가 처해있는 국가 사회가 주일성수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편의를 제공해 줄 수 있게 되기를 위해 기도하고 힘쓰면서 주일을 거룩히 지켜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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