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예수

범사에 주께 하듯 하라

대구해송 2018. 1. 8. 07:06

범사에 주께 하듯 하라

 

 

주부 신자에게 자신의 소명이 무엇인지 물어보라. 거의가 아직 모르겠다거나 지금 찾고 있는 중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아니면 나는 구역장이나 찬양대원이 소명이라고 하는 자도 있을 것이다. 그런 직분을 맡았다면 교회 내에서 믿음이 좋다는 축에 들 텐데도 너무나 얼토당토 않는 답변을 한다.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확장시켜야 한다는 소명이 모든 신자에게 동일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끝이 없다. 주부 신자라고 특별히 다를 것이 없다. 단지 그것을 실현하는 수단이 다를 뿐이다. 반면에 구역장이나 찬양대원으로 섬기는 일이 땅 끝까지 복음을 증거하는 일과는 직접적 연관이 없다. 성도끼리 교제 격려 고무하면서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또 믿음 안에서 함께 자라는 일은 분명히 있지만 말이다. 하나님 나라 확장의 일부 측면임에도 틀림없다.

 

그러나 교회 안에만 머무는 하나님 나라다. 예수님이 유대와 사마리아를 넘어 땅 끝까지 가라는 말씀은 짐짓 외면한 셈이다. 또 복음으로 믿지 않는 자나 믿음이 연약한 자들에게 그리스도의 향기로 의로운 영향력을 끼치는 면에서도 현저히 부족하다. 그 일들은 어디까지 땅 끝까지 가기 위한 준비와 훈련에 속한다. 세상을 향해 나아가기 위한 위밍업이다.

 

바꿔 말해 주부, 엄마, 아내, 며느리 등이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소명 내지, 그것을 실현하는 수단이자 통로인 직업이라고 인식하는 자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주부 일은 복음과는 아무 연관도 없으며 매일 되풀이되는 짜증나고 귀찮은 일이라는 것이다. 하나님 보시기에도 아무 씨잘 데 없는 허드레 일이라 치부한다. 아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귀한 일이다. 또 그 안에 복음의 진보와 하나님 나라의 확장도 풍요하고도 아름답게 들어 있다.

 

먼저 부부가 복음 안에서 하나가 되어서 진정으로 서로 주께 하듯이 사랑해보라. 부부 각자가 자신의 인간적 노력과 열심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 사이에 주님의 사랑이 가득 차는 모습으로 말이다. 각자가 먼저 주님과 온전한 교통을 이루어서 주님께 받은 사랑을 배우자에게 그대로 전해준다면 바로 그것이 천국이자, 하나님 나라가 확충되는 것이다.

 

남편은 남편으로서, 아내는 아내로서 역할에 온전히 충성하며 서로에게 헌신적으로 사랑하는 것은 일반 부부도 할 수 있다. 신자 부부의 사랑이 일반 부부의 그것과 다른 것은 두 사람 사이의 모든 결정은 주님과 성경 진리에 따른다는 것이다. 또 서로가 사랑을 변함없이 이어갈 수 있는 근거와 힘도 오직 주님으로부터 얻는다는 것이다. 물론 갈등과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도 부부가 개별적으로 혹은 합심해서 주께 기도하여 얻은 지혜와 사랑이다.

 

이런 사랑의 모습은 부모와 자식 간에도 마찬가지다. 부모의 의견이 아무리 옳아보여도 강요하지 않는다. 오직 사랑과 격려로만 자녀를 대한다. 마찬가지로 그들 부자관계를 아름답고도 풍요롭게 만드는 것은 둘 사이에 흐르는 예수님의 은혜와 권능이다. 자녀는 주님께 대하듯이 부모를 사랑하고 존경하며, 부모는 주님이 그 제자를 대하듯이 끝까지 사랑하고 세워주는 것이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는 것이 식사 기도를 꼭 해야 한다는 식의 종교적 외양적 경건의 모습을 갖추라는 뜻이 아니다. 문맥 안에서의 뜻은 신자는 복음의 진리로 자유해졌기에 우상 제물을 먹을 수 있더라도, 연약한 자가 혹여 시험을 받을 것 같으면 먹지 말라는 것이다. 항상 교회의 덕을 세우고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가려지지 않는 방향으로 행동하라는 것이다. 종교적 형식으로 불신자나 믿음이 약한 자와 경계를 짓는 일을 하지 말고, 오직 주님의 사랑으로 다른 이에게 생명을 주어서 살리라는 것이다. 언제 어디서 누구와 무슨 일을 하든 신자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결정짓는 최우선적 절대적 기준이다.

 

하나님이 가장 영광스럽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가? 물론 당신의 이름이 높임을 받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그 높임은 다른 어떤 경로보다는 철저하게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만 높여지길 원하신다. 실제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날 밤에 당신의 죽음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것이라고 기도했지 않는가?(요17:1) 한 마리의 잃어버린 양을 되찾으면 하늘에서 잔치를 벌이시는 하나님이다. 또 그런 주님의 십자가 사랑으로 성도가 서로를, 나아가 불신자 이웃을 섬길 때에 하나님은 가장 영광스러워 하신다.

 

신자가 겪는 모든 인간관계와 사건 속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타나는 것이 바로 그분의 영광을 위하여 일하는 것이다. 다른 말로 신자가 받은 소명을 그대로 실천하는 것이다. 주님이 선한 행실로 소금과 빛이 되어 사람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직접 명하지 않았는가? 또 그러기 위해선 어떤 핍박도 감내하여서 사망은 신자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그 사랑을 받는 이웃 안에서 나타나야 한다.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신자도 다시 살리사 이웃과 함께 당신 앞에 세우게 하시도록 말이다.(고후 4:1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