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자를 따라가게 하는 것이 목회다
목자를 따라가게 하는 것이 목회다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요 10:3-5)
신앙은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 그 자리에서 육체 안에서 환난의 세상을 사는 나와 우리를 보고 세상을 바라보아야 하는데 그런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그러려면 우리를 위해 목숨을 버리시고 다시 사셔서 우리를 위해 자신을 주시므로 그 생명으로 아버지 하나님께로 인도하시는 목자이신 주님을 바짝 붙좇아야 합니다. 우리 구원을 위해서 딱 한 번의 십자가의 사건으로 아담 안에 있던 구원 받기로 예정이 된 자들을 그리스도 안으로 다 끌어안아 옮기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예정이 된 자들은 이미 그리스도 안에 편입이 되었습니다. 이를 두고 베드로는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벧전 2:25)고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 주님이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시고 우리의 나음을 위해 채찍에 맞으셨습니다.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시기 위해서...(벧전 2:24)
그 후 곧 성령이 임하신 후 성령과 함께 하시는 주의 영과 생명을 가진 문지기들 곧 주의 증인들이 주의 음성을 들려줍니다. 양들은 주님의 음성을 잘 분별합니다. 문도 주님이시며 문지기도 주님이시고 그 음성도 주님이 발하십니다. 그러나 성령이 임하시면 주님이 하신 일을 대신할 주의 제자들이 나타나서 그 말씀을 대언하고 그 일을 대행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목자와 양의 사이에서 중매한다고 표현을 합니다. 주의 신실한 종들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문지기의 역할, 주의 음성을 대언하여 양들로 하여금 주님의 오심과 가심과 임재하심과 아버지의 보좌에 앉아 계심과 그리로 나아가게 하심의 대속의 은총을 입도록 하는 일에 전부를 바쳐야 합니다. 그래야만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칭찬을 받습니다. 자신이 그 문 앞에서 턱 버티고 서서 자신도 안 들어가고 양의 고기나 털에 관심이 많으면 절도나 강도가 됩니다.
성경이 주의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이라는 증거가 주의 양들은 그의 음성만 분별할 뿐 주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을 통해 지금 하고 계시는 일에 대해 이해가 부족합니다. 그래서 주 예수그리스도의 세례로 중생의 씻음을 받아 성령의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들이 주의 영과 생명과 그 심장을 가지고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목자이신 그리스도께서 이룩한 그 대속의 은총과 생명의 길과 그 우리 안으로 인도하여 내는 겁니다. 그게 바로 주의 몸이 된 교회들의 기능과 역할입니다. 그만큼 목사 곧 양떼들의 대표가 중차대합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합니다. 병원에 의사가 없으면 누가 그 병원에 가겠습니까? 주의 구원의 동선을 환하게 파악하고 자신도 그 길을 답습하여 주의 오심과 가심을 완전이 이해를 하고 양들에게 대언의 음성을 들려주고 그들의 이름들을 각각 불러 목자이신 주의 생명의 우리로 인도할 선도자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주의 대속은 단 한번으로 일괄적이지만 개인구원은 각각이기에 그렇습니다.
김요한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