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인생, 행복할 권리
맛있는 인생, 행복할 권리
나의 아버님은 멋의 신학자라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 혹자는 “멋있다”는 말이 “맛있다”는 어원에서 나왔다고 하지만 사실 확실한 것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멋있다는 말은 맛있다는 말과 통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맛있는 인생, 바로 그것이 행복한 인생이다. 맛있는 부부, 맛있는 교회, 맛있는 목회, 맛있는 직장생활, 이것이 행복을 누리면서 사는 인생이고, 우리는 그렇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
우리는 행복하기 위하여 태어났고, 하나님은 그렇게 우리를 만드셨다. 그런데 항상 나는 “누구 때문에, 가난해서, 공부를 못해서, 못나서” 등등의 이유로 행복하기를 거부하며 남의 탓으로 돌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자기 인생은 자기가 색칠하고, 자기가 그려나가는 그림과 같다. 주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지만 어떤 운명에 우리를 가두는 분이 아니고 마음껏 창조적으로 살아가도록 자유를 주신 분이기도 하다. 사실 인생을 망치는 것은 어느 누구의 탓도 아니고 본인 당사자이다.
우리 딸은 결혼하면서 “나는 결혼생활이 이래야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롤 모델(ROLE MODEL=모범)이 되고 싶다”고 하면서 이혼율이 상승하는 이 때에, 나이 어린 사촌들에게 자신이 먼저 이 모범을 보여주겠다고 말했었다. 그 딸은 그렇게 살아가고 있고, 그 모습을 본 사촌들이 너도 나도 행복한 경쟁을 하면서 잘 살아가고 있다. 형이 본을 보이면 동생들이 따라하게 되어 있다.
사실 우리가 못하는 것은 그 본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가정세미나를 하면 너도 나도 “나는 행복한 가정생활”을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은 실제 행복한 가정생활이 어떠한 것인지 모르면서 하는 말인지도 모른다. 이혼 안 할 정도로 사는 것이 행복한 것이 아니라, 주님이 주시는 행복을 모르면서도 무난하게 살면 행복하다고 말한다.
우리가 은사사역을 할 때에도 보고 배운 적이 없고, 이렇게 사용하라고 보여준 선배가 없었다. 어떻게 축사사역을 하는 지도 본 적이 없고 배운 적도 없다. 누가 보여주면 그대로 따라하면 되는 것이다. 보여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교회에서 치유사역도, 축사사역도, 은사사역도 잘 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보여주어야 한다. 보여주는 이유는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너도 이렇게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본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내가 잘 나서 이렇게 잘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혜를 주셔서 이렇게 잘 살고 있으므로 너도 그렇게 되기를 초청한다”는 뜻이다. “너도 이렇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직접 삶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증인은 목격한 것을 보여주는 사람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행복한 삶에 증인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삶을 보고 전도가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보여주는 용기를 갖고 나의 삶이 다른 이들이 행복하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하는 마중물의 역할을 하기 위해 보여주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행복하기를 원하고 사단은 우리의 인생이 불행해서 망치기를 원한다. 사단은 행복한 자들이 밉고 싫다. 그리고 행복한 가정은 더욱 미워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보고 질투하고 미워하고 망하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사단의 마음인 것이다. 하나님은 세워주고, 격려하고 칭찬하고 함께 기뻐해 주신다.
그러므로 이제 나의 삶의 태도를 바꾸자. 우리는 행복한 자로 만들어졌고, 행복할 권리가 있었지만, 그동안 사단과 더불어 분별하지 못하고, 엉망인 삶을 살아왔다는 것을 인정하자. 나도 나의 삶의 향기로 전도할 수 있다고 생각을 바꾸자. 내 인생이 이렇게 된 것을 남의 탓으로 돌리지 말고 겸손하게 나 자신이었음을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나와 도움을 청하고 지혜를 청해 하나님의 솜씨와 동역하자.
인생의 도화지는 우리가 마음껏, 창조적으로 그려 나갈 수 있고 색칠할 수가 있다. 그 인생을 그려나가는 것은 나와 하나님의 동역이지, 숙명이 아니다.
보여주는 인생, 참으로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목사님의 생활을 좀 숨겨야지 그렇게 다 노출하면 지혜로운 것이 아니잖아요? 라면서 숨기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숨기는 것은 덕을 위해서라고 말하면서 그것을 보는 자들이 실족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 나의 삶이 힘든 삶이었어도 실족하고 행복한 것이어도 실족한다. 그것은 받는 사람들에게 달려있다.
그러나 힘든 인생에서도 연약함 가운데 역사하는 하나님을 만나고, 행복하게 살 때도 하나님이 복 주셨구나 하면서 그렇게 살고 싶다고 소원하면 그것이 자연적으로 임파테이션 된다. 실족하게 되면 자신은 영영 힘든 삶에서 헤어 나올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보여주는 삶을 살아왔다. 본을 보여주고 싶었다. 완벽해서가 아니라 나도 이렇게 넘어지고 무너지고 연약한 면이 있지만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로 다시 일어섰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완전주의는 절대 아니다. 아무리 설교를 잘해도, 그들이 배우는 것은 나의 인격과 생활이지 설교가 아니다. 그들이 부러워하고, 내가 잘났다고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도 그렇게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목사님은 “풍요해서” 풍요한 삶을 누린다고 말한다. 절대 아니다. 미국이 풍요하지 나의 삶이 넉넉한 것은 아니다. 목사님은 “아버지와 남편”을 잘 만나서 “신앙의 명문가정의 금수저로 태어나서” 복을 받았다고 말한다.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훌륭한 아버지 목사 밑에서 개망나니가 된 친구들이 더 많다. 남편이 사랑해주는 것도 사실이지만 적응이 안 되어 수없이 가출을 했고, 이혼을 생각했었다. 남편이 오죽하면 “왜 바울이 가출의 은사를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말할 정도였다. 목사님은 “날 때부터 똑똑하고 재주가 많아서”, 절대 아니다. 길거리에 나가면 나보다 더 똑똑하고 잘나고 재주가 많은 사람들이 지천에 깔려있다. 목사님은 “건강해서”, 절대 아니다. 나는 한 살 때부터 병원으로부터 사망선고를 받았고, 죽음의 계곡을 몇 번이나 넘었다. 나를 나 되게 하신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 한분이시다. 그 어려운 가난도, 고난도, 핍박도, 어려움도, 질병도, 모두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며 통과하게 하셨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겪은 것, 나도 다 겪었다.
우리가 없어서 못하는 것이 아니다. 그럴 마음이 없어서 못 하는 것이다. 생활태도를 바꾸면 그 행복이 나의 행복이 되는 것이다. 그 행복이 보이면 내가 찾아가며, 만들며, 창조하면 되는 것이다. 새로운 도화지에 새 그림을 그려 가면 된다. 그럴 마음이 없는가? 아니면 그럴 조건이 되지 않아서라고 한탄하는가?
우리의 삶이 다른 이에게 향기로 보여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기독교적인 삶은 경건의 모양은 있지만 능력은 없는 것이리라. 주님은 우리에게 증인이 되라고 하였는데 무엇에 대한 증인인가? 주님을 믿고 주님을 따라 제자가 되면 이런 생활이 된다는 것, 이런 변화가 온다는 것, 성경의 모든 복을 누린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인이 아닌가?
오늘부터 성령님의 동역과 솜씨를 구하면서 가장 복 받은 인생으로 살아가자. 그래서 우리의 생활을 공개하자, 보여주자. 그리고 초청하자. 너도 이렇게 살 수 있다고.....이것이 진정한 예수 초청 잔치, 예수 초청 전도가 될 것이다.
우리 메누하 청지기 마을에서도 대담하게 자신의 생활을 공개하며 다른 이들에게 행복하고 싶은 마음의 격동을 일으키게 했으면 좋겠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는 마음을 불러일으키도록 자신의 생활이 그런 점화점이 되도록 공개하였으면 좋겠다. 그러면 200명의 생활이 나를 200배로 풍성하게 만들 것이다. 나의 생활이 임파테이션 되게 하자. 행복하게 살고 싶은 마음에 활활 타오르게 불심지가 되어 보자.
내가 여기에서 나의 소소한 생활을 다 공개하는 것은 여러분들도 성장하고 행복하고 더 맛있는 삶을 살도록 초청하기 위해서이다. 나는 자랑할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이 모든 것은 주님의 것이고, 주님이 가르치신 길로 걸어가려고 노력했던 삶의 열매일 뿐이다. 이 모든 것은 다 재가 되어 버릴 것들이고, 남은 젊은 인생들이 더 부요하고 풍요하고 행복하고 맛있는 삶이되기를 원해 오늘도 나의 시간과 정성과 수고를 이 카페를 위해 하는 것이다.
7분짜리 동영상을 만들기 위해 내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소요하는지 알고 있는가? 수 천 개의 게시물을 올리기 위해 나는 남아나는 시간에 쓴 글들이었다고 생각하는가? 다 여러분의 성장을 위해 기도하며 살아온 인생이다. 이러한 섬김에 열매가 풍성해지기를 오늘도 기도한다.
지금도 이 짧은 글을 쓰기 위해 새벽 4시부터 앉았는데 7시가 되어야 끝났다. 잠언 목사님이 증인이시다. 나는 아주 쉽게 일을 하는 것처럼 생각하지 말아주었으면 한다. 나는 초인간이 아니고, 여러분보다 더 불편한 몸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 달라. 그리고 여러분을 가르치기 위해 13년 신학을 공부했고 40년을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묵상하며 이 길을 걸어왔다. 복음은 공짜로 나에게 주어졌지만 이러한 삶의 열매는 공짜가 아니고 내가 정성으로 값을 지불한 댓가이다. 복음 이외에 나에게 공짜로 주어진 것은 하나도 없다. 내가 손과 발로 뛰어서 얻은 열매들이다.
2018.05.10
▲윤남옥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