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예수

응답 받는 기도

대구해송 2018. 4. 1. 20:52

응답 받는 기도

 

 

“지성이면 감천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즉 정성이 지극하면 하늘도 감동한다는 말입니다. 제가 어린 시절 무당 굿하는 데를 가면 무당이 뭔가 주문을 외우듯 떠들며 춤을 추다가 멈추고는 “정성이 부족하여~”라며 막대기로 앞에 앉은 사람들 머리를 톡톡 때립니다. 그러면 주섬주섬 주머니에서 돈들을 더 꺼내 또 갖다 바칩니다.

 

우리는 무속신앙에 많이 젖어 있어 이런 샤머니즘에 익숙합니다. 문제는 이런 샤머니즘이 교회 안에 들어와 성경말씀을 많이 오염시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목회자들이 이런 무당과 비슷한 행태로 교회를 이끌어가도 잘 먹혀 들어간다는 사실입니다. 설교자가 성령의 능력, 기적, 물질축복 등에 관해 성경말씀까지 곁들여가며 설교를 잘하면 사람들이 많이 모여듭니다. 신자들의 바램과 설교가 맞아 떨이지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교회 목회자가 무슨 기적이나 병을 고치는 신유은사 등을 행하지 못하면 목회자 취급을 못 받는 분위기 입니다. 또 신자들도 그런 간증을 한 두 개 정도는 해야 신실한 신자로 인정을 받는 분위기 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체험이 없는 신자들은 조금은 의기소침 해 각종 영성 체험 집회에 관심을 가지며 여러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도 하고 또는 유명하다는 기도원이나 신령한 능력이 있다는 사람을 찾아가기도 합니다. 또 이런 분위기를 타고 기독 서점에도 직통 계시, 귀신 축사, 응답 받는 기도의 비결 등에 관한 책들이 범람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책들이 귀신을 부르는 책들이라면 지나친 표현입니까?

 

왜 이런 분위기가 유행처럼 확산되는 것일까요? 말세지 말을 당한 오늘날은 사탄이 최고의 안달과 극성을 부리는 때입니다. 오늘날 성경책이 있고 많은 설교자가 있지만 사실 진리의 말씀이 기갈 된 암흑의 시대입니다. 아모스 선지자가 말한 때보다 더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는 때입니다.(암 8:11) 지금은 알곡과 가라지를 가르는 시기임으로 주님도 침묵을 하시는 때입니다. 바른 성경지식이나 영적 분별력이 없이 내 사욕을 좇을 스승을 찾아다니면 가라지로 판명되어 멸망을 당하는 시험의 때 입니다.(딤후 4:3) 오늘날 거짓 성령 은사가 신자들을 미혹하는 아주 위험한 때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여러 가지 미혹들 중에‘응답 받는 기도’에 대해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기도란 무엇이며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 것일까요? 기도는 대화하듯 아버지께 내 마음을 펴놓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겪는 슬픔과 기쁨을 아버지께 다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또 항상 쉬지 말고 수시로 기도해야 하며(롬 12:12) 감사와 기쁨으로 기도해야 합니다.(골 4:2) 규칙적으로 시간을 정해 기도하는 것이 좋습니다. 하지만 여건이 안 되면 일을 하면서 걸어가면서 운전하면서 심지어 화장실에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에게 무한한 축복과 사랑을 주시려고 모든 것을 다 준비하고 기다리십니다. 우리는 아버지께서 우리의 간구에 응답해 주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나 조건이 있습니다. 첫째는 간절히 간구해야 하는 것이고 나를 도와주실 것이라고 신뢰하여야 합니다. 더불어 의에 주리고 목마른 심령으로 성령의 은혜를 받으려는 마음이 열려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더 좋은 것으로 주시는 분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가 당장 응답되지 않는 것으로 보여도 하나님의 정한 때가 있다는 것을 신뢰하여야 합니다. 또 우리는 마음속에 사랑과 용서의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듯 이웃을 용서하려는 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 기도의 형식이 많이 변질되었습니다. 기도가 하나님과 씨름하는 것으로 하늘 보좌를 흔들어 그 보좌가 땅에 내려오게 만들려고 합니다. 이런 기도는 변질된 것입니다. 우리는 속절없음을 인정하면서 이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 세상적 내 소원을 이루기 위해 금식을 작정하기도 합니다. 오늘날 금식기도가 단지 내 어려운 문제 해결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된 느낌입니다. 내 기도에 응답이 안되면 3일에서 일주일로 그래도 안 되면 열흘로 늘려 갑니다. 소위 “정성이 부족하여~”정성을 더 보이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 중심을 보시지 기도를 며칠 했느냐를 보시는 게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작정한 마지막 날 마지막 시간에 주님의 응답을 받았다는 간증을 합니다. 어쩌면 미혹일 수도 있습니다. 만약의 경우 자신의 기도가 응답되지 않은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네가 일주일 작정을 했는데 하루만 더 했으면 내가 들어줄 것이었는데 참 아쉽다!”하고 내치시겠습니까? 시간 차로 당락이 결정됩니까? 이런 희생적인 기도는 자칫 어린아이가 엄마 팔을 비틀며 보채고 조르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금식 얘기가 나온 김에 제 개인적인 겸연쩍은 경험을 말씀 드립니다. 2002년 8월 29일은 제가 마지막 빛을 다 청산한 날입니다. 당시 국가 경제 정책이 바뀌면서 달러 환율차로 빚을 갚기가 쉬운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때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이해하기 힘든 일들로 인해 돈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채무 전액이 채워진 것은 아니지만 나머지 모자라는 것은 친척들에게 빌려 공증사무소에서 사채 빚을 다 갚았습니다.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리고 그 날을 평생 금식하는 날로 지키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오래 전에 신명기 8장을 읽으면서 얼마나 눈물이 흐르던지 한참을 울고는 주님께서 주신 말씀으로 받고 암송하기 까지 했습니다. 신명기 13-14 절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 버릴까 하노라”하는 말씀과 이어“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또 두렵건대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신 8:16-17) 라는 말씀에 의거해 내가 행여 재물에 부족함이 없게 될지라도 절대로 이 말씀을 잊지 않겠노라 명심하고 근신하기 위해 금식을 결정한 것입니다.

 

매년 그 날을 금식하며 잘 지켜 왔는데 10년 째 되던 해 그만 깜박 잊어버리고 아침 성경을 보는데“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사 58:6-7) 글을 읽으면서 그제서야“아 참! 내가 금년에 금식 일을 잊어 먹었구나!”하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금식은 불쌍한 이웃을 돌보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임을 깨닫고 그 후로는 금식을 하지 않았습니다. 금식이 필요 없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내 신앙 증진을 위해 분명 필요합니다. 성경에도 많은 사람들이 금식했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금식을 하며 주님의 음성을 듣기도 하고, 성경말씀을 받기도 하고, 성령을 받아 거듭나기도 합니다. 단지 어떤 세상적 목적을 이루어 주시기를 작정하고 하는 금식은 주님께 상달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혹자는 기도 응답을 받기 위해 오랫동안 더 깊이 기도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주님 뜻대로 하지 않은 채 깊은 경지에 들어가는 심오한 영적 기도는 흔치는 않지만 때로는 마귀가 응답할 수도 있음을 경계해야 합니다. 사탄 마귀도 은사와 기적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줄 수 있습니다. 이런 능력을 사탄에게서 받은 은사자가 하나님으로부터 성령의 능력을 받은 것으로 착각해 자기기만 속에서 자기 확신이 되어 '응답 받는 기도'에 대해 세미나 등 집회를 인도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거짓 종의 특징은 자신이 희생적인 기도를 많이 한 것을 자랑으로 삼습니다. 나는 당신들 보다 우월하다는 교만과 함께 나는 하나님께 영적 능력을 받은 특별한 종이라는 것은 은근히 과시합니다.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들에게서 인정을 받으려고 합니다. 이런 거짓 종은 성경지식이나 영적 분별력이 없는 양들을 잘못 인도해 결국 멸망으로 이끕니다.

 

거짓 은사자들의 특징은 돈이나 금품을 요구합니다. 은근히 자기를 높이며 자랑합니다. 자신의 은사를 과장하고 광고하고 다닙니다. 이 사람들은 자기가 기만당한 줄 모르고 자기 확신을 갖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영적 분별력이 없는 순진한 양들은 다 넘어갑니다. 진짜 성령의 은사자는 자기를 드러내거나 금품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한 사람의 영혼이라도 구하고 싶은 간절함과 겸손이 깊이 배여 있습니다. 또 먼저 안수 받고 싶어 하는 사람의 상태를 점검합니다. 자칫 하나님께서 연단을 위해 어려움을 주고 있는 사람에게 안수한다면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도 함부로 안수하지 말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꼭 기적과 같은 초자연적인 역사만으로 일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오늘날도 사도행전의 성령의 역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주신 성경말씀들은 어떤 신비하고 초자연적인 것보다 더 큰 힘을 갖고 있습니다. 빛과 진리인 성경말씀에 거하는 사람들은 그런 기적들을 크게 기대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말씀으로 우주만물을 창조한 그 주님의 말씀을 손에 들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성경)이 있어 어두운 데서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벧후 1:19)

 

사도 베드로는 변화산에서 예수님의 형체가 변하는 것을 본 기적이나“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벧후 1:17) 라고 하늘에서 나는 음성을 들었음에도 그보다 더 확실한 것이 주님의 말씀(성경)이라고 알려 줍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놓여진 시험은 진리의 말씀을 좇느냐 아니면 기적과 은사냐 입니다. 사탄 마귀는 바른 믿음을 변질시키려고 사력을 다합니다.

 

우리가 간절히 기도했는데 응답이 없어 실망하고 좌절하십니까? 응답이 없는 것도 응답이랍니다. 즉각적인 응답이 없어도 내가 주님의 뜻을 행하려 노력하며 주님을 따라 간다면 더 좋은 것으로 응답해 주신다는 믿음이 바른 신앙입니다. 보통 내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 것은 믿음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니 더욱 열심을 내라고 합니다. 거듭난 사람들의 기도는 다 응답 됩니까? 성령으로 거듭나도 주위에 많은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거듭난 자가 가족을 위해 기도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그들 주위에는 다 믿는 자들뿐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습니까? 아직도 믿지 않는 자식들이나 아내나 남편 때문에 마음이 찢어지는 분들도 많습니다. 어떤 경우 가족, 친척들이 더 힘들게 하기도 합니다.

 

우리의 믿음을 감정이나 느낌으로 확신하려는 사람들은 자기기만에 또는 자기 최면에 빠지기 쉽습니다. 어떤 사람들처럼 '믿습니다!'로 자기 긍정적인 확신이 믿음인 줄 아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는 말씀을 믿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믿는 것입니다. 믿음은 자기 확신이 아닙니다. “자기의 마음을 믿는 자는 미련한 자”라고 합니다.(잠 28;26)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께서 지금의 나의 상황이 최선이기 때문에 허락한 것이라고 신뢰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내 기도가 응답이 안 되고 더 어려워지면 '하나님은 나를 버린 것 같아! 하나님은 정말 계신 거야?'라는 절망감에 빠지기도 합니다. 경제적으로 힘드십니까? 가족 때문에 힘드십니까? 또 다른 문제로 앞이 캄캄하십니까? 낙심하며 절망하지 마시고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내가 다 이해하지 못한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내 기도가 응답되지 않아도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라며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이 바른 기도입니다.

 

응답 받는 기도는 어떤 것일까요? 기도는 하나님을 땅으로 내려오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늘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내 뜻을 간청하는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묻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 끝에 '예수이름으로 기도드린다'는 의미는 지금까지 드린 말씀이 예수님의 정신과 마음에 합당한 간구를 했다는 의미입니다. 아울러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들을 구하는 기도는 무조건 응답됩니다. 혹 이런 것들을 구한 것이 아니었다면 그 기도는 응답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축복일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의 신음에도 응답하시고 어린아이의 기도에도 응답해 주십니다. 또한 개인적인 사사로운 문제들도 응답해 주시기도 합니다. 저도 예전에 개인적인 사사로운 어려움에 다급하니까 주님께 매달려 응답을 받은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응답되지 않는다고 너무 서운해 하지 마시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이 잔을 옮길 수 있으면 옮겨 달라고 했지만' 그 기도는 응답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의 기도는 응답되었습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무슨 신비한 체험이나 초자연적인 현상들에 대해 너무 연연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웬만하면 영적 체험을 준다는 기도원이나 집회에 가시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그런 체험을 보고 경험해 굴복하는 것은 주님이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주님께서는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세레 요한을 보십시오. 그는 아무 은사도 없었고 기적도 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여자가 난 자 중에 제일 큰 자라는 소릴 들었습니다. 성령님은 각자의 환경과 입장과 믿음의 정도에 따라 적합하게 역사하십니다. 나에게 아무런 신비한 체험이 없어도 말씀만 꼭 붙잡고 꿋꿋하게 믿음생활 하시는 분들이 더 충성된 성도입니다. 내 눈에 보이지 않고 잡히는 것 없어도 인내하며 작은 일에 충성하며 주님의 뜻을 따라가는 자가 더 신실한 성도요 칭찬 받는 성도요 사랑 받는 성도이기 쉽습니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계 14:12)

 

▲송전서 (초대교회로 돌아가는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