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예수

칭찬받은 교회

대구해송 2018. 3. 28. 16:01

칭찬받은 교회

 

 

(계 3:7-13) “7.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 8.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9. 보라 사탄의 회당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아니하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그들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10.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11.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12.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13.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일곱 교회 중 여섯 번째 교회인 빌라델비아라는 말은 형제 사랑이란 뜻이며, 이곳은 제주도같이 화산이 터진 고원지역으로 포도 농사가 유명했다 고합니다. 주님은 이 교회에 다윗의 열쇄를 가지고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열린 문을 두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말씀을 지키며, 배신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교인들에게 유대인들이 대적하고 핍박하였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부정하고,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얻는다고 주장 한 사람들입니다. 주님은 이 사람들을 무릎을 꿇게 만들어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그들 중에서 잘못을 깨닫고 신자가 것을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험의 때에 보호해주시겠다 약속을 하십니다. 그리고 다시 그들에게 권면하십니다. 네 가진 것을 굳게 잡으라, 빼앗기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둥에 주님의 이름을 새기겠다는 것입니다. 이 이름을 새기는 것은 누구도 손을 대지 말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소유라는 말씀입니다.

 

7곱 교회 중에서 칭찬만 받은 교회는 서머나 교회와 빌라델비아 교회입니다. 그리고 책망만 받은 교회는 라오디게아 교회이며 다른 4교회는 칭찬과 책망을 같이 받았습니다. 그러면 오늘 빌라델비아 교회가 칭찬을 받은 이유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1. 작은 능력으로 말씀을 지켰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8절)

 

여기 ‘적다’는 말은 빌라델비아 교회가 실제로 적은 교회였음을 말합니다. 외적인 모양이나, 건물, 교인들 숫자, 그리고 교회 구성원들도 특별한 사람이 없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교회는 “내 말을 지키며” 라고 주님이 인정하셨습니다. 말씀을 지켰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이 교회는 작은 교회지만, 약한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여러분 작다고 무시 할 교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작지만 오히려 주님 보시기에는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에 나오는 다른 교회들보다는 오히려 더 능력 있는 교회로 인정을 받고 칭찬을 받았습니다.

 

사람들이 보는 것은 교인숫자나, 교회건물 그리고 교인들 중에 유명한 사람들이 있나, 또는 교회 프로그램이 좋은가. 편안하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가. 같은 것들 입니다. 그렇다 보니 교회가 건축을 시작한다고 하면, 교인들이 줄어들었다가. 헌당(獻堂)을 하고 나면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말도 있습니다. 이것은 믿는 사람들도 그들의 관심이나, 가치가 얼마나 이기적인가 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전에는 교회 목사님들이 박사학위 공부하는 것이 유행처럼 될 때도 있었습니다. 그래야 교인들이 인정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주님의 인정을 받고 칭찬을 받는 빌라델비아 교회는 다른 특별한 것이 없고 단지 ‘말씀을 지키는 교회’ 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 앞에 칭찬을 받은 중요한 이유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나라에 법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리고 얼마나 많은 법을 만들어 냅니까. 그러나 중요한 것은 법을 아무리 많이 만들고, 잘 알아도 지키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또 대학이 얼마나 많습니까. 대학 진학 율이 세계적으로 제일 높은 나라 1위가 핀란드이고 우리나라가 2위라고 합니다. 그런데 핀란드는 기술을 가르치는 교육기관을 통계에 넣어서 그렇다고 하니,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대학을 제일 많이 나옵니다. 열 명 중에 여덟 명이 대학공부를 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대학공부를 한 사람으로써 사람이 그만큼 훌륭한가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특별한 은혜를 받지 못했다고 실망하지 마세요. 여러분들은 말씀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천국에 갈 사람들입니다. 특별한 일을 못했다고 자책하지 마십시오. 주어지는 말씀 한절, 한절을 마음에 새기고, 순종하며 지키고 사는 것이 어떤 특별한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엄청난 역사를 이루지 못했다고, 자책하고 있을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손에 든 하나님의 말씀, 주일마다 듣는 말씀, 깨달아 지고, 느껴지는 성경 말씀, 그리고 그 감동을 외면하지 않고, 그것에 반응하고 아멘의 믿음으로, 실재로 순종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는 진리를, 가르쳐 주고 있는 성경 말씀입니다. 어떤 사람이 결혼해서 자식을 낳고 살면서, 나의 사랑이 진실이었는가, 하고 의심을 한다면 어리석은 일입니다. 지금 그 사랑 때문에 자신이 있고 가정이 있다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대단한 것도, 많이 배운 것도, 아니지만 아는 것만큼은 순종하고 산다는 것입니다. 하나를 알면 그렇게 산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칭찬을 받은 빌라델비아 교회의 실체입니다. 여러분 아멘입니까.

 

요즈음 명랑이라는 영화가 한국 영화사상 최고의 관객 수 1500만 명을 돌파했습니다. 12척의 배로써 울둘 목에서 330척의 왜선을 이긴 것입니다. 이순신장군은 23번 싸워서 23번을 이긴 장군으로 역사에 유래가 없는 장군입니다. 문제는 이길 수 있는 조건이 전혀 아닌데, 이겼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의 특별한 능력과 함께, 하늘이 도우신 것이라고 밖에 말할 수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능력은 작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위대하십니다. 그러므로 작은 능력을 가졌다고 포기하거나, 위축되면 안 됩니다. 비록 작은 능력이지만 주님을 확실하게 붙잡으면 크게 사용하십니다. 다윗과 골리앗을 보세요. 오늘 본문 7절에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다윗이 블레셋 골리앗과 맞부딪쳐 싸울 때, 그에게 있는 무기는 돌멩이 다섯 개였습니다. 그런데 골리앗을 쓰러트립니다. 무엇으로요. 그의 작은 돌멩이 하나를 주님이 사용하시니까. 골리앗이 쓰러지는 강한 도구가 된 것입니다. 아직 다윗에게는 돌멩이 4개가 남았습니다. 성경에는 작은 것을 역사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엘리야가 갈멜산 정산에서 일곱 번 간절히 기도하니까, 동쪽하늘에 손바닥만 한 작은 구름이 떠오릅니다. 기도 계속하니까. 이것이 온 하늘에 퍼지면서 삼년 육 개월 가물던 땅에 비가 내리는 것입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는 어린아이의 점심 도시락입니다. 작은 것입니다. 그러나 오천 명이 배불리 먹고, 부스러기 12광주리가 남았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12명이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그 당시로써 꿈같은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이 꿈이 그들을 통하여 이루어지지 않습니까. 성경에는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적은 사람, 적은 헌신, 적은 이야기가 무수하게 많습니다. 여러분 당신이 내가 이렇게 부족한대 하고 낙심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주님이 주시는 말씀을 순종하면 됩니다. 실천하면 칭찬 받습니다. 작은 불이 온 산을 태운다. 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2. 이름을 배신하지 않았다.

 

중국 후한의 초대황제 광무제(光武帝)가 즉위한 후 서안사람 송홍 이 토목공사를 담당하는 대사공(大司空)의 지위에 올랐습니다. 대사공이란 사도(司徒)와 태위(太尉)와 더불어 삼공(三公)이라고 칭하는 큰 벼슬입니다. 송홍은 도량과 학식이 출중하고 인품이 고상하여서 조정 내에서 소문이 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광무제(光武帝)의 누이 호양공주(湖陽公主)는 일찍이 남편을 여의고 홀로 살고 있었는데 너무 쓸쓸해 보여 왕은 공주를 다시 시집보내기로 생각했습니다. 왕은 누이 호양공주(湖陽公主)에게 물었습니다.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라고 했더니, 송홍(宋弘) 같은 사람이라면 시집을 가겠다는 것입니다. 이에 광무제(光武帝)는 무척 당황했는데 그것은. 송홍(宋弘)은 이미 결혼을 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자신의 누이를 위해서 송홍(宋弘)을 설득하여, 부인과 헤어지도록 만들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그를 불렀습니다. 그때 호양공주(湖陽公主)도 송홍(宋弘) 모르게 병풍 뒤에 숨어있었습니다. 왕 광무제(光武帝)는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하다가 "옛말에 사람은 귀해지면 친구를 바꾸고, 부자가 되면 아내를 바꾼다. 고했는데, 자네의 생각은 어떤가?" 하고 묻자 송홍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신은 어려울 때 사귄 친구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되고, 조강지처(糟糠之妻)는 절대로 버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사람의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조강(糟糠)이란 술을 찌꺼기와 쌀겨를 이르는 말로 조강지처는 이런 음식을 함께 먹으며 어려움을 겪은 부인을 말합니다. 이 말을 들은 광무제(光武帝)는 송홍(宋弘)은 절대 아내를 버리지 않겠구나. 라고 생각하고 그에게 공주에 관해서는 한마디 말도 꺼내지 않았고, 호양공주(湖陽公主) 또한 깨끗이 포기 하고 단념했다. 고합니다. 이에서 유래된 말이 조강지처(糟糠之妻)입니다.

 

한마디로 상황이 달라졌다고 배우자를 버리거나, 친구를 배신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이혼하는 이유 중에 가장 많은 것 중에 하나가 배우자의 부정입니다. 이것은 다른 말로 아내나 남편을 두고 다른 이성과 바람을 피웠다는 것인데 이것은 결혼 서약을 어기는 것으로, 상대를 배신하는 것입니다. 오늘 빌라델비아 교회는 주님의 이름을 배신하지 않았다고 칭찬을 받습니다. 그들이 배신하지 않았다는 것은 유혹을 받아서, 세상으로 나가지 않았다는 것이며, 우상에게 절하지 않았다는 것이며, 육신을 따라 살지 않았다는 것이며, 지금도 여전히 말씀을 지키며, 주일마다 예배를 드리며, 그 도시에서 믿음으로 살고 있다는 말입니다.

 

지난 3월에는 자신이 근무하던 회사가 100억 원의 돈을 들여 개발한 신기술을 이직하면서 빼돌린 일당이 붙잡혔습니다. 4월에는 12년간의 긴 연구 끝에 자체 개발한 로봇 청소기 핵심 기술을 중국으로 유출한 국내 유명가전회사의 전 연구원들이 붙잡혔습니다. 이 기술로 중국서 저가 상품이 개발되면 이 회사는 수천억 원에 달하는 피해를 입었습니다.

 

2007년에는 현대차 변속기 생산기술, 포스코 철강재 제조 기술, 2008년엔 LG전자의 PDP패널 생산기술, 2010년엔 삼성·LG전자의 휴대전화 관련 기술이 중국으로 넘어간 일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다 사람이 있고, 돈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배신인데 여기는 하나같이 돈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것이 그 이유입니다. 엄청난 돈과 자리를 약속받고 자신이 몸담았던 회사를 배신하고 기술을 빼돌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앙적인 배신도 돈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 많습니다. 성경에 삼손을 파멸로 몰고 간 드릴라 는 은 1,100 때문인데 이것도 돈입니다. 예수님을 배신한 가롯유다도 은 30이며,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거짓과 배신도 돈이 그 사이에 끼어있습니다. 사람들은 이익과 손해를 따져보고 이익이 있다고 하면, 교회를 옮기기도 하고, 사람을 버리기도 하고, 친구관계를 끊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배신을 하였다, 하면 거기는 이익과 손해의 문제가 있습니다.

 

신자들도 신앙 문제나. 진리문제 때문에 배신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자존심이나, 감정 같은 것 때문에 교회를 떠납니다. 기분이 나쁘다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사는데 왜 나를 무시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은 어떤 교회에도 적응을 할 수 없게 됩니다. 신앙이란 내 자아를 포기하거나, 죽이는 훈련인데 내가 자꾸 살아나서 어디에도 적응을 못하는 사람이 되고, 또 자신에게 맞는 교회를 찾아다니는데 이런 사람에게 만족을 주는 교회는 이 세상에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이 교회 저 교회 돌아다니다가, 아예 자기 집에서 교회를 차려놓고 가족들 끼리 예배를 드리는 이상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것은 다 배신의 한 모습이며, 그 중심에는 죽지 못한 못된 자아가 있거나 예수님을 팔았던 가롯 유다의 은 삼십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사람과 관계를 맺으면 천국까지 같이 가는 것입니다. 인생을 살면서 오래된 친구가 없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교회는 주님의 몸이요, 우리는 몸의 일부요, 지체인데 어떻게 떨어질 수 있습니까. 세상에 불행한 사람이 내 교회가 없는 사람이요, 내 목사가 없는 사람이요, 함께 기뻐해주고 함께 슬퍼 해줄 사람이 없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누가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런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아들딸이나 손자 손녀가 여러분이 앉았던 자리에 앉아서 예배를 드릴 수 있어야 신앙에 성공을 한 것이며, 여러분의 기도가 이루어 진 것입니다. 그래서 3-4대가 함께 예배를 드려야 교회가 반석위에 세워지는 것입니다.

 

누가 나에게 맞는 사람인가. 하고 생각하지 말고 누구에게나 잘 맞추어주는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여러분 좋은 교회를 만드는 것도 여러분들이며, 나뿐 교회를 만들 수 있는 것도 여러분들입니다. 여러분 분명한 것은 인생 한평생을 살면서 들어서는 안 될 말이 배신자란 말입니다.

 

또 신앙의 위기는 편안한 가운데 찾아옵니다. 성공했다, 이제 좀 되었다. 할 때 찾아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편안하거나, 성공하면 좋지 무슨 신앙의 위기가 오는가하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고생을 하고, 열심히 일하고 살던 사람이 그 일에서 손을 놓으면 온 몸이 아픈 것입니다. 병이 찾아옵니다. 그래서 일할 때는 몸이 힘들지만, 은퇴를 하면 마음이 힘 드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살만하면 죽는다는 말을 합니다. 새 집 짓고 삼년, 며느리 들고 삼년이라는 속담도 있습니다. 좋은 것이 있는데 그것을 누리는 시간은 길지 않다는 것입니다. 요즈음 많은 사람들이 한국교회가 위기는 말을 말합니다. 무슨 위기입니까. 한국교회는 핍박이 사라졌습니다. 고난도 없습니다. 의식주(衣食住) 문제는 해결 되었습니다. 살만해 졌습니다.

 

그러다보니 세상을 가까이하고, 교회를 멀리하는 사람들이 많아집니다. 영적인 갈증. 눈물의 기도가 없어졌습니다. 이 사람들이 말씀대로 사는 것이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모두 편하게, 적당히 믿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쉽게, 편하게, 적당히, 인간적으로 신앙을 해서는, 좋은 신자가 되지를 않습니다. 많은 신자들이 시간이 없다, 없다, 하면서도 자기 일에는, 정말로 시간을 많이 솥아 붓고, 바쁘고 바쁘게 살아갑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그들의 모습입니다. 그렇게 살다가 보니까. 저녁예배, 수요예배는 올 수가 없습니다. 아니 시간이 안 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주일 만 지키면 수요일쯤은 안 드려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한국교회가 주일 저녁예배가 없어지고, 수요예배가 사라지고, 예배시간에 자리가 텅텅 빕니다.

 

3. 주님의 선물

 

⑴ 열린 문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가라사대 볼찌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7-8절)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본문 8절에 나와 있는 “열린 문”이라는 단어입니다. “열려진 문”이라 사람이 닫거나 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열어주신 문입니다. 이 문은 구원의 문입니다. 천국으로 향하는 문입니다. 주님이 열어두시고 약속하십니다. 누구도 닫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구원의 문은 내가 열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열어 주셔야 들어가는 문입니다. 온갖 일이 있고. 수많은 문제가 있지만 너희들은 이 문으로 꼭 들어오게 하겠다는 약속입니다. 이것은 당연하지만 또 한편에는 하나님이 그 칭찬받는 교회 주시는 약속이요 확신입니다. 찬송가 545장입니다.

 

1. 하늘가는 밝은 길이 내 앞에 있으니 슬픈 일을 많이 보고 늘 고생하여도 하늘 영광 밝음이 어둔 그늘 헤치니 예수 공로 의지하여 항상 빛을 보도다.

 

2. 내가 천성 바라보고 가까이 왔으니 아버지의 영광 집에 가 쉴 맘 있도다. 나는 부족하여도 영접하실 터이니 영광 나라 계신 임금 우리 구주 예수라.

 

이것은 약속을 받은 사람의 고백이고 간증이고, 확신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말씀을 지키고, 배신치 않는다면 여러분이 이 찬양의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앞길을 누가 막을 수 있습니까. 주님이 열어 놓으셨습니다.

 

⑵ 발 앞에 절하게 한다.

 

“보라 사단의 회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저희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9절)

 

이 사람들은 율법을 가지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고 부정하면서 교회를 핍박했습니다. 이들은 스스로 정통 유대인이라 했지만 하나님은 거짓말 하는 자들 이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 중에 몇 명이 빌라델비아 교회에 와서 엎드려서 절을 하고, 굴복을 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이 그 교회를 사랑하는 증거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를 박해하던 유대 율법주의자들 중 일부가 개종하고 신자가 되고 복음을 받아들일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승리입니다. 여러분 성경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 12:19-21절)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대적자, 우리를 괴롭히고 고통을 주던 사람을 우리 앞에 무릎을 꿇게 만드신다는 것입니다. 요셉을 판형들이 요셉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백성을 몰살 시키려던 하만이 에스더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누가 이렇게 합니까.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정도를 가십시오, 하나님이 손을 봐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알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⑶ 시험의 때를 면케 하신다.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10절)

 

시험이 올 때 하나님은 그 시험보다 더 큰 믿음을 주시므로 시험을 이기게 하실 수 있습니다. 마치 바울이 감옥에 있지만, 감옥보다 큰 믿음으로 그 감옥을 사역지로 만들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또 피하게 하심으로 이기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곳에 지진이 나고 화산이 터질 때 하나님은 그 교회를 지켜주십니다. 다니엘이 사자 굴에 던져 졌을 때 하나님이 사자의 입을 봉하셔서 다니엘을 살리신 것 같은 은혜를 약속하고 있습니다.

 

⑷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하신다.

 

이것은 하나님이 중요하게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성전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곳이요, 기도하는 집이요,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는 곳입니다. 여기에 기둥이 된다는 것은 축복 중에 축복입니다. 성경에 이런 고백이 있습니다.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시편 84:10절)

 

기둥은 집을 지탱하고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만큼 중요하게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신앙과 예배와 기도를 지켜주는 교회가 되고 교인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결론

 

어느 대학의 심리학과에서 다음과 같은 실험을 했습니다. 두 개의 물통에 물을 채우고 몸이 비슷한 쥐를 한 마리씩 집어넣었습니다. 이 두 통의 차이점은 하나는 뚜껑이 닫혀 있었고, 다른 하나의 통은 뚜껑이 열려 있었다는 것입니다. 물통에 빠진 두 마리 쥐는 본능적으로 헤엄치기 시작했다. 그런데 뚜껑이 닫혀 있는 물통에 빠진 쥐는 탈출구가 보이지 않자 쉽게 포기했습니다. 헤엄치는 것을 중단하고 4분이 못 되어 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뚜껑이 열려 있는 물통에 빠진 쥐는 36시간이나 버티면서 실험이 끝날 때까지 살아 있었다고 합니다. 절망한 쥐는 곧 죽었고,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쥐는 살았다는 말씀입니다. 희망이 있어야 살 수 있는 것입니다. 하늘이 보이지 않으면 쥐도 사람도 죽는 것입니다.

 

인간은 강해 보이지만 약합니다. 절망을 벗어나려고 하지 않고 그냥 머물러 있으려고 합니다. 인간의 절망은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찾아왔습니다. 태양을 안 본다고 식물이 갑자기 죽지는 않습니다. 서서히 죽어갑니다. 뿌리를 자른 나무가 갑자기 시들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갑자기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서서히 시들어가고 죽어가는 식물처럼 죽음에 이르게 하는 절망에 빠지고 마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은 칭찬을 받고 복을 약속하시는 주님을 만났습니다. 말씀을 따르고 지키십시오. 배신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희망의 문, 천국의 문을 열어 두십니다.

 

▲조영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