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구영신, 시간의 갱신과 평화 / 김선주 (영동 물한계곡교회 목사)
송구영신, 시간의 갱신과 평화
- 김선주 (영동 물한계곡교회 목사)
▲밤하늘의 별들은 시간과 존재가 갱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송구영신, 시간의 갱신과 평화
불빛과 소음으로부터 멀어진 궁벽한 산촌의 새벽은 인간이 우주에 홀로 하나라는 사실을 알게 한다. 그리고 그 시간은 적막감과 존재의 신비감으로 나를 색칠한다. 그래서 나는 새벽 시간에 동공을 활짝 열고 별과 별 사이를 떠돌아다니기를 좋아한다. 별들이 발자국을 찍으며 지나간 자국마다 시간의 궤적이 뚜렷하다. 어쩌면 사람이 산다는 것은 시간의 궤적 위에 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발 딛고 있는 대지는 근원적으로 안전하지 않다. 가끔 대지가 흔들리고 균열이 생긴다. 이로 인해 정돈된 질서와 세계 구조가 무질서해진다. 최근 포항에서 일어난 지진으로 사람들이 겪고 있는 것은 물리적인 무질서를 넘어선 존재의 불안과 무질서로 나타나고 있다. 이것을 트라우마라고 한다. 안전하다고 믿고 발 딛고 살아온 대지가 흔들리고 균열이 생길 때, 존재의 불안에 떨게 되는 것이다.
이와 유사하게 인간은 시간이라는 존재의 대지가 흔들리는 것을 경험하는데, 그것은 죽음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이다. 시간은 존재하는 모든 것의 대지(大地)이기 때문이다.
에덴동산은 무시간의 공간이었다. 시작과 끝이 없는 무시간성을 우리는 영원이라 부른다. 창세기에 의하면 모든 생명은 소멸의 두려움 없이 영원히 살도록 설계되고 창조되었다. 풀(Pool) 안에 풍성하게 차고 넘치는 시간, 그 시간 안에서 소멸의 두려움 없이 유영하는 존재의 상태를 평화(샬롬)라고 말할 수 있다.
선악과를 먹게 되면 “반드시 죽으리라”는 하나님 말씀은 생물학적으로 즉사(卽死)한다는 뜻이 아니라 에덴동산의 영원한 시간에 균열이 가고 깨어져 너의 존재가 직선적인 시간의 나락으로 떨어진다는 뜻이라고 볼 수 있다. 파열된 시간은 존재의 평화를 깨뜨린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죽음이란 별똥별처럼 내리꽂히는 시간의 종말이며 존재의 파멸이다.
이러한 시간과 존재에 대한 인식 때문에 우리는 시간 위에 작은 금을 그어가며 그것으로 수를 센다. 일 년, 한 달, 일주일, 하루, 한 시간 등으로 시간에 금을 그어가며 세어나간다. 그래서 오늘이 가면 내일이 오고, 올해가 가면 내년이 온다는 식으로 시간을 연장하여 자신의 소멸을 지연시키고 싶어 한다. 시간의 소멸과 생성을 반복하며 죽음과 부활을 간접 경험하는 것이다. 반복되는 시간의 단위 끝에 영원이라는 시간의 풀(Pool)이 있다는 믿음, 그것은 시간의 근원이며 주재이신 하나님을 향한 열망이다. 그 열망이 없는 사람에게 평화가 있을 수 없다.
세상에 평화가 없는 것은 영원한 시간에 대한 향수와 제의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우리의 신앙이 현세의 물리적 지복(至福)을 향해 가까이 갈수록 단편적인 시간에 갇히고 평화를 잃게 된다. 송구영신예배는 영원한 시간을 향한 제의이며 평화를 초청하는 의례다. 이제 송구영신예배의 때가 다가왔다. 한 해 동안 무사안일을 기원하는 저속한 주술을 버리고 존재의 갱신과 평화의 기쁨을 회복하는 예배가 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