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에 의한 무의식적인 저주
말에 의한 무의식적인 저주
우리들은 무의식적으로 이웃들에게 저주를 거는 경우가 많습니다.
“잘 되나 보자” “어디 가서나 힘들 걸” 하고 좋지 않은 뒷담을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다가 무의식적으로 저주를 거는 경우가 많습니다.
신학대학을 중퇴한 어느 장로님의 이야기입니다. 그 분은 신학을 좀 알고 있다고 해서인지 목사님이 하시는 설교, 목회방법에 대하여 항상 비판을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교회 분란을 일으키며 교회를 너무 힘들게 만드는 장본인이 되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 교회는 다시 일어날 수 없을 정도로 미약해지었고, 담임목사님은 그 장로님이 너무 야속하고 미웠습니다.
그 장로님이 미국 동부에서 그렇게 교회를 어려움에 빠트려 놓고 로스앤젤레스로 이사하였습니다.
저는 그 분과 가까이 지냈고, 대체의학을 하시는 분이라 많은 도움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분들은 이상하게도 아기가 없었습니다. 한번은 제가 질문하니까 “하나님이 뜻대로 하시겠지요.” 라면서 자녀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임신이 안 되어 주님이 주시기를 기다리며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두 부부는 신체적으로는 아무 의학적 이상이 없었다고 합니다.
저는 임신이 안 될 수도 있지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동부에서 교회가 힘들어졌었다는 목사님이 나성에 방문하였습니다.
지금은 그런대로 목회를 안정되게 잘 하고 계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 분은 질문하기를 “그 장로님이 나성에서 교회를 섬기고 있다는데 잘 계시냐?”하고 물어서 나는 “잘 계십니다.
사업도 잘 되어서 수입도 많으시고, 교회전체 예산에 십일조를 담당하시고 계시다고 하네요.”라고 말하면서 “그런데 건강하신 분들이 아직 자녀들이 없어요.”라고 대답해드렸더니 깜짝 놀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동부에서 목회를 할 때에 작은 교회를 개척하였는데 조금 부흥할 까 하는 때에 그 장로님이 교회를 아주 재기가 불가능한 상태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저와 아내는 너무 힘들어 죽고 싶은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신학을 하다가 만 그 장로님은 교묘하고도, 아주 점잖게 교회를 아주 말아먹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기도하며 울부짖다가 지쳐 다시는 목회하고 싶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 장로님이 서부로 이사 가신다고 하여서 뒷모습을 보면서 이렇게 말했지요.
너무 속상하고 마음이 아파서 그들을 축복할 수가 없더라구요. 그래서 다음과 같아 말했어요.”
“너희 부부같이 교회와 목사를 어렵게 한 부부에게 아기가 있는가 보자.”
그 목사님은 그 말이 그 부부에게 저주가 되었는가보다고 놀래셨습니다.
목사님은 너무 힘들어 한마디 한 것인데 그 분이 저주에 걸린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다른 이들한테 고의가 아니지만 단순하게 한 말도 그가 저주를 받을만하면 저주에 걸려듭니다.
그렇다고 다 저주에 걸리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저주를 받을 만하지 않으면 그 저주는 저주를 말한 사람에게 다시 돌아옵니다.
말들은 살아있어서 어디에고 뿌리를 내리고 자라납니다. 그래서 자녀들에게 하는 말도 아주 조심해서 말해야 합니다.
“미친 자식, 빌어먹을 자식, 가출할 자식, 길거리에서 돼져 죽을 놈” 이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합니다.
우리 교회 권사님 한분이 매번 아들에게 “길거리에서 돼져 죽을 놈”이라고 욕을 했는데 정말 사업장에서 돈을 떼어먹고 달아나는 사람들을 차로 쫓아가다가 차가 뒤집어 지면서 전봇대를 부딪쳐 죽게 되었는데, 비참한 것은 전봇대의 일부가 그의 폐를 뚫고 지나가서 그 자리에서 즉사를 하였다는 것입니다.
저도 그 욕을 들을 때마다, 아버지가 그런 말을 하는 것이 너무 마음이 아팠는데 결국 아버지의 말대로 노상 객사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저주하던 그 아버지는 나중에 눈이 멀어 지금 장님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분은 처제에게 욕을 하면서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너를 다시는 안 본다.”라고 말하곤 했는데, 정말, 그 어느 누구도 볼 수 없는 장님이 되어 버렸던 것입니다.
저주는 말에서 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에 가득해야 하고, 입에서 복된 말씀만 나와야 합니다. 아니면 그 저주에 자신이 매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말에는 생명이 있는 씨와 같아서 어디에나 떨어지면 뿌리를 내리고 자라나서 실제가 됩니다.
말은 죽지 않습니다. 우리의 말이 무의식적으로 남에게 저주가 된 것은 없을까요? 아니면 한 마디의 따듯한 말이 남을 살린 적은 없는가요?
2017.10.19
▲윤남옥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