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
석게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
라”(고전 2:14)
현재의 기독교의 문제는 바울에 의해 육신에 속한 자들이라(고전 3:3)고 판정이 된 고린도교회의 전철을 밟는 겁니다. 그건 시기와 분쟁이 있고 파벌이 있어서 그리스도의 몸을 찢어 나누는 어린 짓거리를 하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시대나 인간의 육신의 성향은 동일하다는 뜻입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입니다(요 3:6)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하는 눈에 보이는 육신의 말은 명언이 되어도 육은 육이요 영은 영이라는 말은 사람들에게 별로입니다.
그게 바로 인간은 육신에 속해서 오감이거나 육감을 사용해서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문제에 코를 빠뜨리며 허덕인다는 말입니다. 그리고도 누가 물으면 기독교인라고 떳떳하게 말하는 거지요. 혈과 육은 하늘나라(고전 15:50)하고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과거에 어떤 영적인 체험을 했다고 자신이 신령한 사람이라고 착각하지 마세요.
그건 하나님의 부르심일 뿐 현재의 영성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다만 지금 현재 영과 육의 경계선을 그을 수 있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당연히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이룩하신 그 위대하고 놀라운 십자가의 대속의 은총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죠. 많이 얻어터진 사람은 매가 뭔지 알 듯 환난을 통해 육신대로 사는 것이 지긋지긋해져야 합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 아무런 맛이 없어질 정도가 되어야 비로소 영의 세계가 열리고 성령의 역사를 간절히 사모하며 초청하게 되는 겁니다.
아니 항상 그 자리에 서 있습니다. 내시가 왕의 방 앞에 구부리고 서 있듯...그래서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뿐이라는 겁니다.
육신의 세계에서 영의 세계로 건너와서 죄 사함을 받고 성령의 선물을 받는 것도 주의 십자가의 공로이며 그 십자가로 인해 죽은 자로서 자신을 부인하고 주를 따르게 하는 것도 그 십자가이기 때문입니다.
그 십자가의 효력은 말씀에 의해서 즉시 발동이 되기에 십자가의 말씀, 또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라고 말씀하는 겁니다.
그렇지만 육에 속한 사람들은 한 여름에 핫바지 생각이겠지요. 국적이 다른 겁니다.
천국체질이 아닙니다. 입으로는 다급하게 성령 운운하지만 생각은 딴 곳 곧 자신의 필요를 찾습니다. 영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은혜와 진리를 생각하는 게 아니라 육신의 오감으로만 바깥에 펼쳐진 사물에 정신이 팔리고 맙니다.
나의 육신을 처리하는 일도 쓰레기 치우는 것만큼이나 귀찮은데 이 세상에서 그런 사람들만 보고 사는 일은 참 고단한 일이죠.
김요한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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